[이전글] 사르후 전투 (누르하치의 팔기군, 팔기제도)
후금과 명나라의 전투 사르후 전투에서 놀랍게도 후금이 승리하면서 심양과 요녕일대를 후금이 차지하는 인물은 이후 후금을 통일시키고 전성기를 이끌 토대를 만든 누르하치였다.
산해관
후금의 다음 목표는 수도 북경이었는데 후금은 더 넓은 중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했던 산해관이 있었다. 산해관은 만리장성 가장 동쪽 끝에 있는 관문으로 산과 바다에 있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천하제일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를 자랑했다. 산해관 서쪽에는 높은 산맥이 있고 그 주변에 만리장성이 있었기 때문에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산해관을 통과해야 했다. 산해관이 뚫리면 북경까지 최단 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장소였다.
원숭환 장군은 누구?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 전략을 짜놓은 인물이 명나라 원숭환 장군이다. 송나라때 악비장군과 더불어 한족의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원숭환 장군은 문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법이나 전략에 뛰어난 사람이었고 보기와는 달리 담대한 원칙주의자 관료였다.
영원성 축조
원숭환은 산해관 200리 밖 영원성을 축조했다. 방어선을 앞당겨 놓은 것이다. 영원성은 성벽 높이가 10m로 엄청난 규모의 영원성이었다. 성벽 두께가 무려 6m에 달하는 성벽이 있고 11개의 홍이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홍이포 운용을 위한 병사 교육도 실시했다. 후금이 사르후 전투 후 기세가 커져있는 상태였다. 이후 1626년 1월 23일 후금군은 영원성에 도착했다. 당시 원숭환을 제외한 나머지 명나라 군사는 모두 산해관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명 조정에서는 병력이 흩어지면 각개격파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곳에 모여 산해관을 지키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홍이포 대포 -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를 굴복시킨 무기..
영원성 전투
그런데 원숭환이 이를 반대하면서 영원성을 지키겠다고 남아있었던 것이다. 1월 24일 후금은 영원성을 향해 대공세를 시작했으나 영원성에서 쏟아지는 포탄에 후금군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위력의 홍이포 덕분이었다. 결과는 누르하치의 패배로 끝이 났다. 결국 나흘 만에 영원성에서 퇴각하며 폐배를 선사한다. 이 전투는 후금을 상태로 한 명의 첫 승리이며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중심에는 명나라 장수 원숭환이 있었다.
누르하치 사망
홍이포의 위력을 처음 당해보는 후금은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또한 후금은 영원성 전투 이후 누르하치가 사망한다. 이 소식은 조선에도 전해졌다. 누르하치의 사망 원인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영원성 전투에서 파편에 맞아 죽었다는 썰, 전투 패배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썰등이 있었다. 누르하치는 원숭환때문에 태어나서 첫 패배를 맛본 것이다. 명나라 원숭환은 공로를 인정받아 요서 지방을 방어하는 총책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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