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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타지마할 이야기 (뜻 /누가 왜 만들었나? )

by 365 ^^ 2022. 7. 22.

인도 빈민가 출신 소년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하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분 수상 및 전세계 88개 영화상을 휩쓴 작품 속 등장하는 타지마할은 인도의 자랑이다.

 

타지마할 IN 인도 

인도 타지마할
인도 타지마할

 

누가 타지마할을 지었나?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전 끝이 보이지 않는 영토와 진귀한 보석들을 거머쥔 한 남자 샤자한 (인도 무굴제국 제 5대 황제) 이 있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17년 동안 13명의 아이를 낳으며 행복한 생활을 보냈으나 정복 전쟁에  황제를 따라나선 황비는 전장에서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 타지마할이 완성된다. 1631년~1648년 약 20여 년간 걸친 대공사 끝에 "최고의 궁전" 이란 뜻의 타지마할이 완성되었다. 

 

샤자한 (인도 무굴제국 제 5대 황제)
샤자한 (인도 무굴제국 제 5대 황제)



당시 인도는 전쟁이 일상이었다. 샤자한 황제는 황비를 데리고 데칸이라는 곳을 갔다.  데칸은 인도 중남부의 험준한 고원 지대로 6월과 10월엔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만큼 무더운 지역이다. 16세기 수도 델리를 중심으로 북인도에 자리 잡았던 무굴제국이 차차 세력을 넓혀서 인도의 남쪽으로 200년 동안 세력을 확장했고 원정 기간은 짧으면 1~2, 보통은 3~4년 이상이었기 때문에 황비를 데려갔던 것이다. 17년동안 14명을 낳은 것이 가능한가? 우리 역사에도 30년 동안 8남 2녀 10명의 자식을 둔 세종대왕이 있다.

 

샤자한의 가계도
샤자한의 가계도



샤자한과 왕비의 만남
어느날 궁정 여자들이 자주 가는 시장을 방문한 샤자한 왕자는 같은 곳으로 물건을 사러 갔던 뭄타즈 마할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래서 샤자한 왕자는 돌아가 아버지에게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고 선언을 하게 되고 약혼 5년이 지나 결혼을 한다. 약혼 5년의 기간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긴 기간으로 그 사이에 샤자한 왕자는 다른 여자와 정략 결혼도 한번 했고 뭄타즈 마할을 제외한 다른 여인과 결혼도 많이 했으나 모두 정략결혼이었다. 


뭄타즈 마할의 매력은? 
그녀는 지성적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황제의 말 상대이자 정치적 조언자였으나 정치적 야심은 없었던 최고의 상대였다. 사료에는 무결점의 그녀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나 무굴제국은 이슬람제국이기 때문에 왕위계승 서열이 없다. 적자와 서자의 구분도 없고 무조건 가장 강한 아들이 왕위를 잇는 적자생존의 왕위계승이었다.

 

카즈위니 <빠드샤 나마> 중
카즈위니 <빠드샤 나마> 중


황제가 바뀔때 마다 피바람이 부는 상황이 되고 적수가 될만한 형제들은 전부 제거하고 오르는 황제의 자리였다. 이런 팽팽한 긴장 속에 샤자한 황제의 유일한 휴식처는 뭄타즈 마할이었다. 이런 뭄타즈 마할이 죽자 샤자한은 하루만에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등이 굽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인들에게 마지마할이란? 
1993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타지마할은 코로나 이전에는 연간 약 700만 명 이상이 찾았던 관광지이다.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 뿐만 아니라 인도의 큰 수입원이 되는 타지마할이다.  이 건축물은 워낙 화려해 궁으로 생각할수 있으나 궁전이 아닌 무덤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외관 덕분에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웨딩 촬영도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만화영화 알라딘 속 궁전이 타지마할 궁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타지마할
전세계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타지마할



타지마할의 실제크기는 17HA 로 약 5만평=16만 5천 제곱미터로 축구장 20개의 크기이다. 타지마할은 본건물+정원+시장,부속 정원 모두이다.

 

타지마할 크기
타지마할 크기



타지마할 무엇으로 만들었나? 
타지마할 입구는 빨간색으로 당시 북인도 지역에서 가장 구하기 쉬었던 돌 적사암(red sandstand)으로 만들어 졌고 본 건물은 적사암과 잡석을 섞어 골조를 만든 후 겉은 흰색 대리석을 붙여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흰색의 대리석이라 실제로 해 위치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타지마할이다. 여러 모습 중 최고로 꼽히는 보름달 아래 타지마할이라 보름달이 뜬 밤에는 야간개장을 한다.

 

타지마할 입구
타지마할 입구
타지마할 입구에서 본 모습타지마할 입구에서 본 모습
타지마할 입구에서 본 모습
시간별로 다른 색깔을 내는 타지마할
시간별로 다른 색깔을 내는 타지마할

 

타지마할에 동원된 인력
타지마할을 만드는데 동원된 인원은 당대 선진국 페르시아에서 초빙된 건축가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호리와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전문 기술자들을 초빙되었고 가장 많은 수가 석공으로 연간 2만명 이상의 석공이 일을 했다고 한다. 문 밖으로 석공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며 대대손손 타지마할을 축조했다. 

 

타지마할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타지마할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완벽한 대칭미에 있다.  사진으로 접어보면 완벽한 대칭이다. 완벽한 대칭미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꼽히기도 했다. 인도 델리 지방은 지진이 많이 나는 곳이므로 기둥이 무너져도 밖으로 넘어질 수 있게 바깥쪽으로 약 2도 기울여서 설계를 했다고 한다.

 

정원을 따라 심은 대칭구조 나무들
정원을 따라 심은 대칭구조 나무들



뭄타즈 마할 관의 위치는? 
타지마할로 들어가면 실내 공간에 관을 둘러싼 8각형의 아름다운 울타리가 있다.  1층에서 볼수 있는 두 개의묘석은 가묘이고 지하로 내려가면 똑같은 모양의 관이 있다. 그리고 관의 위치가 타지마할에서 대칭이 맞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다. 건축 당시 오직 뭄타즈 마할만을 위한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에 관이 가운데 있었으나 샤자한 왕이 죽자 아들이 아버지를 위한 무덤을 만들지 않고 어머니 옆에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8각형 울타리 타지마할 무덤 속 관8각형 울타리 타지마할 무덤 속 관
8각형 울타리 타지마할 무덤 속 관

 

인도의 힌두교식 장례 풍습은 화장이나 중앙아시아에서 파생된 이슬람 왕조였던 무굴제국은 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주로 매장을 하던 이슬람교이다.  무굴제국의 지배층은 대부분 이슬람교도 피지배층은 대부분 힌두교도였다. 이때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유연하게 공존했던 무굴제국 시기이다. 

 

타지마할 장식
타지마할은 야무나강 바로 옆에 지어 물이 흐르는 정원을 만들었다.  '차하르 박' 이라고 불리는 바둑판 모양의 정원은 코란에서 '천국' 을 상징한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타지마할의 장식은 아라베스크 문양과 코란 경전 문구로 장식되어 있다.  심판의 날과 천국에 대한 약속 의미가 있는 코란 문구, 내부를 장식한 생생한 꽃도 천국을 상징하는데 타지마할은 지상에 구현한 이슬람의 천국인 것이다.

 

타지마할 차하르 박 정원
타지마할 차하르 박 정원

 

타지마할은 배치와 장식에 의미가 가득한 건물이다. 우상숭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이기에 인물과 동식물을 벽에 새기지 않았으나 타지마할 벽에는 아름다운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대리석을 깍아서 색깔이 있는 보석을 넣은 것이다. 빨간색 보석은 가넷, 루비, 녹색 보석은 옥 등 전 세계에서 수입된 화려한 보석들이다. 안에 금도 많이 사용되어 500KG 정도가 들었으나 도굴군이 많이 가져갔다고 한다. 그래서 경비가 삼엄하다. 

 

타지마할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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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보석은 가넷, 루비, 녹색 보석은 옥 등 전 세계에서 수입된 화려한 보석들

 

무굴제국의 부 
당시 무굴제국의 인구는 1억 5천만이었다.  16세기 인구가 20만 명만 넘어도 대도시였는데  당시 무굴제국은 인구 20만 명 이상의 대도시가 9개 이상이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은 무굴제국과는 비교할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세계 최대 부국이었다.  무굴제국은 넓은 영토를 바탕으로 막대한 세금이 발생했다.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왕좌
자신을 '신의 그림자' 라고 하며 샤자한이 직접 앉았던 공작 왕좌는 루비,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등의 230KG 의 보석이 촘촘히 박혀있고 왕좌를 만드는데 1톤 이상의 금까지 들었고 제작 기간은 무려 7년으로 샤자한이 황제가 되자마자 만들기 시작했다.  

 

전세계 각지에서 수입해 꾸민 왕좌
전세계 각지에서 수입해 꾸민 왕좌

 

이 왕좌는 타지마할을 만드는 비용의 2배가 들었다고 한다.  이 왕조 제일 위에 장식된 다이아몬드는 페르시아어로 '빛의 산'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로  186캐롯의 무게로  무굴제국의 초대 황제 마부르가 인도에 가서 황제에 오르자마자 얻게 된 보석으로 이후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진 보석이다.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왕좌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왕좌


그러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에는 저주가 있다. 그러나 이 저주는 신과 여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19세기 무굴제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 다이아몬드는 영국 여왕의 왕관에 박히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준 선물이었다.  현재는 105.6캐롯만 남아있는데 광채를 위해 추가 세공 작업 후 왕관 십자가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지금도 코아누르로 만든 왕관은 영국 공식 행사 때만 착용 평소에는 런던탑에 보관되어 있다. 17세기는 우리날 인조때로 전쟁 후 신음하고 있던 때였다. 

 

영국 여왕들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장식
영국 여왕들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장식



샤자한의 권력욕은 건축광이라는 별명을 통해서도 알수 있듯이 건축을 통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로 유명한 왕이었다. 타지마할을 지은 후 델리에 붉은 성과 새로운 수도(샤자하나바드)를 건설했다. 샤자한이 죽은 후 무굴제국은 세번째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왕위에 오르고 50여년 정도 재위를 했으나 그가 무굴제국의 마지막 왕이 된다. 샤자한 시기 국고를 낭비해 무굴제국이 멸망에 들어섰다는 설이 있다. 

 

델리 붉은 성
델리 붉은 성

[역사저널 365]

 

▶코이누르 , 다이아몬드 저주의 시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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