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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남북 역사상 최대규모)

by 짱신나^^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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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가 남한으로 침투한다.  무장공비의 인원은 남북 역사상 최대 규모인 무려 120명이 남한으로 침투한 사건이다. 북한 원산에서 울진 고포리까지 고무 보트를 타고 남파했고 120명은 한꺼번에 내려오지 않고 10월 30일, 11월 1일, 11월 2일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역으로 15명을 1개조로 편성해 8개조가 30명, 30명, 마지막날은 60명이 침투를 했다.

 

3일동안 남파된 무장공비 수
3일동안 남파된 무장공비 수

 

10월 30일 30명의 무장공비가 경북 울진의 고포리에 침투한다. 그리고 다다음 날까지 120명 전원 침투에 성공하고 그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울진 고수동의 화전민 마을로 7가구에 19명이 거주하는 마을 규모가 크지 않은 마을이었다.

 

무장공비 침투 경로
무장공비 침투 경로

 

침투 목적 

124부대가 내려온 목적은 남한의 각종 정보 수집 및 남한의 민간인을 전향시켜 민중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권을 뒤엎으려던 계획이었다.

 

무장공비 목표 민간인
무장공비 목표 민간인

 

그들을 마을주변에서 3일간 관찰을 한다. 그리고 세련된 말투와 말끔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마을 사람들을 그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인 오씨 아저씨의 마당에 모이라고 한 후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준다며 신상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신상정보를 기록한 후 무장공비들은 총을 들고 자신들은 북에서 내려온 유격 대원이고 북한 조선노동당 입당원서를 준비해 강의하면서 반강제로 마을사람들을 위협하고 결국 입당지원서를 주민들은 작성했다.

 

주민 회유책
또한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만원 상당의 주민들에게 지폐를 나눠줬다. 당시 라면 한 개가 10원, 짜장면 한그릇 20원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만원은 상당한 돈이였다. 그러나 이것은 판화와 일부를 붓글씨로 그린 위조 지폐(counterfeit note)였다.

 

당시 무장공비가 나눠졌던 위조지폐
당시 무장공비가 나눠졌던 위조지폐

 

마을 주민 잔인하게 살해
마을 주민들이 신고할 것 같은 낌새가 보이자 무장공비들을 보여주기식으로 한명을 죽이기로 한다. 당시 마을에는 9명의 청년이 있었는데 산기슭에 올라간 무장공비와 9명의 청년 중 32살의 전병두씨를 고른다. 전병두씨는 타지에서 살다가 벌초(Beolcho)때문에 아내의 고향에 들렸던 사람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전병두씨에게 군대를 다녀왔는지 물었고 해병대를 제대했다고 말하니 대검을 뽑아서 전병두씨 가슴을 찔렀고 쓰러진 전병두씨 얼굴을 잔인하게 돌로 찍어 죽였다. 이렇게 잔인한 방법을 택한 이유는 공포심을 조장해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전병두 (당시 32세)
전병두 (당시 32세)

 

무장공비 소탕작전

 

당시 중앙 정보부에서는 150명의 무장공비가 내려온 것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국민들이 동요를 염려해 30명정도로  축소발표한다. 그리고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진행했다.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헬리콥터를 사용했다. 후에 체포된 무장공비의 말을 들어보면 대한민국에서 헬기가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이 헬리콥터에 당시 사살한 무장공비의 시체를 매달아 다니며 북한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이 헬리콥터에 당시 사살한 무장공비의 시체를 매달아 다니며 북한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
이 헬리콥터에 당시 사살한 무장공비의 시체를 매달아 다니며 북한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 또한 이를 통해 산속에 숨은 무장공비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함이었다.

 

공비 2명 생포
1968년 11월 16일 무장공비 2명이 생포가 되고 무장공비 소탕 작전 13일만에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소식이다.북 124부대 고등운 중위와 정동춘 소위는 생포 5일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용서를 구했다. 

 

생포된 무장공비 2명 북 124부대 고등운 중위/ 정동춘 소위
생포된 무장공비 2명 북 124부대 고등운 중위/ 정동춘 소위 First lieutenant 중위 /Second lieutenant 소위


이들은 강원도 삼척의 민가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있던 가족들이 신고해서 삼척의 향토예비군이 출동해 생포했다고 한다. 두 명의 생포한 무장 공비의 활짝 웃는 모습을 찍어서 다른 무장공비가 보도록 전단을 뿌렸고 이후에 3명이 추가로 생포되고 심지어 자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살포된 전단지
당시 살포된 전단지

 

울진,삼척 무장공비에 의한 사상자 수 

무장공비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도 23명이나 되었다. 작전중 전사한 군경 38명,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농민들로 일가족이 몰살되거나 화전을 하던 가난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북한은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생포된 공비 두 명이 자필로 국민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무장공비가 사살한 민간인들무장공비에 사살된 민간인무장공비가 죽은 민간인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들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서 가장 경악했던 북한의 만행은 바로 이승복 어린이 살해사건이었다. 

[출처 이만갑 5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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