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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뉴딜 정책 루즈벨트 대통령 경제 대공항 어떻게 극복했나? 3.

by 365 ^^ 2021. 8. 11.

미국 경제 대공황 (1929~1939) 전후 대통령들 

 

→30대 대통령 존 캘빈 쿨리지 (임기: 1923.8.2.~1929.3.4.)

→31대 대통령 허버트 클라크 후버 (임기: 1929.3.4.~ 1933. 3.4)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 (임기: 1933.3.4~1945.4.12)   

 

* 참고로 이름이 같은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임기: 1901.9.14~1909.3.4) 이분의 딸래미 앨리스 루즈벨트가 고종 황제 초대로 방문해서 난장치고 갔던 일화가 있음.  ->일화 보기

 

경제 대공항의 한가운데 있던 시절 루즈벨트는 당선이 된다. 1932년 말 공화당을 꺽고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기존의 자유방임주의(국가가 경제활동 간섭X) 와는 다르게 국가 주도의 정책을 계획했는데 그것이 바로 뉴딜 정책이다.

 

프랭클링   D . 루스벨트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으로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1933년 취임사에서 연설문에 뉴딜 정책의 핵심을 강조하는 말이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 취임사 : "So, first of all, let me assert my firm belief that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 무엇보다 본인의 확고한 믿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일 뿐입니다. 

 

 

루즈벨트 뉴딜 정책 

 

루즈벨즈의 이 말은 필요한 건 잃어버린 시장 경제의 신뢰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여러가지 뉴딜 정책을 펼친다. 

 

▷은행 개혁법

1차 뉴딜 정책은 바로 은행 개혁법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 전지역 은행  폐쇄(휴일)를 선포하며 은행 개혁을 시작했다. 일정기간 은행의 문을 닫게 하고 불안에 빠진 사람들의 마구잡이식 출금을 막기 위함으로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미국의 모든 은행이 업무를 정지시켰다.

 

뱅크런 (bank run) :은행의 안정성을 불신한 고객들이 대규모로 자금을 인출하는 사태가 지속되자 이같은 정책을 내렸다.

 

▷테네시강 개발 공사(TVA) 

루즈벨트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수많은 공공 사업들 뉴딜 정책을 실시하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테네시강 개발 공사(TVA) 이다. 테네시강을 중심으로  7개 주의 지역에 걸쳐 26개의 댐을 건설하게 된다. 댐 건설의 효과는 댐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고 수력발전소+농업증대+건설일자리까지 기역의 경기를 부양시켰던 개발 사업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후버댐 탄생 배경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카지노는 대공황 때문에 만들어졌다. 대공항 초기 1931년 후버 대통령은 총괄적 갬블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다. 카지노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부족한 세금 확보를 위해 그렇게 한것이다.

후버댐 1931년 착공 ~1936년 완공

또한 1931년 후보 대통령 시기부터건설을 시작한 후버댐은 세계 최대의 댐 중 하나로 노동자들만 2만명 이상이었고 후버댐 노동자들이 인근 라스베거스로 가서 카지로를 하게 되니 개발 정책이 주변 산업도 키운 좋은 예시였다.

 

▷CCC: 민간자원보존단 

또 다은 뉴딜 정책중 하나가 바로 CCC: 민간자원보존단 으로 미국의 미혼 남성 18 세~25세 대상으로 국토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일자리 제공으로 투입된 예산만 30억 달러였고 9년간 심은 나무가 약 30억 그루였다. 각종 공공 투자로 미국 국립 공원의 토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국립공원들이 대부분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역점을 두었던 분야이다. 

 

대공황 당시 가장 어렵고 소외되었던 계층은 바로 청년층으로 부족한 일자리로 거리를 방황하던 청년들을 구제해주는 의미가 있었고 숙식 제공에 당시엔 월급이 30달러로 (당시로는 큰 돈이었다)  이들은 급여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 사용했다.  CCC사업의 목적은 국가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청년들이 자부심을 얻을 수 있었던 뜻도 있었다.

 

▷문화 예술계 지원

공공사업중에는 음악인+연극인+미술인이 정부 지원금을 받고 활동을 함으로써 문화 예술계도 활성화되었다.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고 거리에선 악사들이 연주를 했으며 당시 뉴욕에서 열림 특별한 연극<맥베스>에는 100% 흑인들로만 캐스팅을 해서 공연을 진행했다.  1936년도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시기에 펼쳐진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뉴딜 정책의 지향점은 소외된 계층에도 용기를 준 정책들을 펼침으로써 나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전쟁이 만든 풍요

그러나 뉴딜 정책만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니었던가?!  통계 수치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대공항은 회복되어 갔다. 1941년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참전을 선언한 미국은 이후 미국 경제는 순식간에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군수 산업이 육성되면서 무기, 보급품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투자와 생산으로 인해 전쟁이 만든 풍요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뉴딜 정책은 좌절이 아닌 자부심이라는 정신적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루즈벨트 히틀러 공통점

대공황을 극복하려 했던 또 하나의 인물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루즈벨트와 히틀러 두 사람이 등장한 시기는 경제 대공항 시기로 독일에도 닥친 대공항으로 인해 위기를 극복할 리더를 원했던 독인인들은 취임 후 각종 개발 사업에 몰두했다. 아우토반 건설(1933) 전장 17,000km의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을 본격적을 시행했고 1936년에는 10만 명 규모의 경기장, 선수촌 등 건설하며 주요 경기들을 텔레비젼으로 생중계하며 베를린 올림픽을 치러내며 일정 기간 히틀러의 초기 과감한 정책들은 효과를 보기도 했다.

 

 

루즈벨트와 히틀러의 차이점

그러나 루즈벨트와 히틀러의 차이점은 과거를 바라 보는 자세에 있었다. 히틀러는 이전 정권 바이마르 정권이 1차 세계대전 패전에 책임이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모든 독일에 문제 저변에는 바로 유대인이 있다고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자극 하며 그렇게 유대인 말살 정책들을 시작했다 이와 달리 루즈벨트는 미국 자본주의나 전통, 이전 정부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대공항 시작점인 후버 정부의 실책을 감싸면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과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은 구세주, 다른 지도자는 희대의 악마로 극명하게 갈린 두 지도자의 결말이 후대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취임사 초반 부에 이런 말을 한다. “ 미국은 아직도 감사할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 we have still much to be thankful for.

 

 

대공황 극복 의의 

 

대공황을 겪었던 그 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말 중에  “Good Old Days” 라고 표현을 한다. “좋았던 그때 그 시절” 이라는 뜻이다. 미국 사상 최악으로 어렵고 가난한 순간이었지만 그때가 좋았다고 기억하는 것은 가족이 뭉치고 이웃이 하나되고 어려웠지만 함께 나누며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고난을 극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대공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인 것이다.  코로나 시대인 지금 우리도 Stick Together ! 함께 뭉칩시다.

 

[23-3 전남대 사학과 김봉중 교수 강의]

 

미국 자유방임주의, 독점 자본주의 탄생 (대공항 이전 상황) 1.

검은 목요일 주가 폭락 원인, 대공황 속 미국 사회 모습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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