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 5회 일부]
오늘의 탐사지: 프랑스
주제: 기요틴 역사
기요틴(영어:guillotine)
기요틴은 목을 자르는 사형도구 단두대의 프랑스 단어이다.
프랑스 파리콩코르드 광장 분수대
콩코르드 광장 분수대 위치가 프랑스 혁명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기요틴(=단두대)에 의해 참수를 당했던 장소이다. 실제로 프랑스 왕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도 기요틴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두대에서 최초로 처형된 사람은 1792년 4월 25일 강도 살인범인 페르체라는 사람이었고 한창 때는 매일 47일 동안 1000명정도가 참수를 당할 만큼 프랑스 혁명 시기(1789년 5월 5일 ~1799년 11월 9일)에는 무더기 처형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이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기요틴에 의해 죽었는데 바로 히틀러가 2만명이 넘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데 사용하였고 그 숫자는 프랑스 혁명때 죽는 사람보다도 많다.
기요틴은 평등 사상에 기초해 만든 사형 기구다. 기요틴이 발명되기 전의 처형 방법은 매우 잔혹했는데 팔다리를 찢어 죽이거나(거열형)
불태워 죽이는 (화형) 형벌이 집행되었다.
목을 자르는 참수형은 귀족들의 특권이었다.
그래서 인도적인 처형을 위해 제안된 기계가 바로 기요틴 박사가 제안한 단두대로 그의 이름을 따서 기요틴이라고 부른다.
기요틴 박사가 단두대 사용을 제안은 했으나 실제로 만든 사람은 앙투안 루이(Antoine Louis)라는 외과의사였다. 기요틴이라 붙인 이유는 기요틴 박사의 제안 이후 단두대 사용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비꼬는 투의 기사와 함께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 시작하였다.
단두대의 칼날은 처음에는 반달형이여서 목뼈가 끼여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하여 단두대의 칼날을 기울어진 일자형으로 만들 것을 루이 16세가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자신의 제안으로 만든 칼날에 죽게된다.
인도적인 차원으로 고안된 사형 기구이기는 하나 목이 잘리고 눈을 깜빡이거나 입을 씰룩거린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 등의 고통 없이 단 시간에 사망에 이르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있어 왔다. 그래도 프랑스는 꽤나 오래 기요틴을 사용했는데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1977년 9월 10일 까지고 1981년 프랑스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
반면 조선시대 고통스러운 형벌이 유지된 이유는 유교적 관습으로 몸을 상하지 않는 사약을 선호했다. 사약은 한번이 죽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는데 고통이 있어도 부모가 주신 육체를 훼손하는 일은 유교적으로 불경스러운 일이었기에 육신은 보존할수 있는 사형제도를 선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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