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 5회 중 일부]
오늘의 탐사지: 파리 카페 르 프로코프
주제: 프랑스 카페문화
※ 참고자료
18세기의 맛: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BY 이용철
유튜브 프랑스 최초의 커피하우스와 프랑스혁명에 불을 붙인 커피의 각성효과 BY 라온올제
카페 르 프로코프
1686년 문을 연(founded in 1686) 을 열었고 지식인들의 교류의 장이었던 카페이다.
나폴레옹도 단골이었던 카페이자 나폴레옹(1769년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카페로 입구에 들어서면 나폴레옹의 모자가 전시되어 있는데 나폴레옹이 초급 장교 시절 커피값이 없어 대신에 본인이 쓰고 온 모자를 주고 왔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커피사랑은 그가 황제가 된 이후에 기독교 국가로는 처음으로 군대에 커피를 보급품으로 정했을 정도였다.
또한 카페 르 프로코프는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주역들의 만남의 장소였고 혁명을 논의 했던 곳이기도 하다.
<볼테르의 방>
카페 르 프로코프 맞은편에는 극장이 있었고 볼테르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연극의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 라고 볼테르는 말했고 커피를 하루에 12잔 이상 마시는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주치의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84살까지 장수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비운의 커플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의 마지막 글이 카페에 장식되어 있다.
1793년 1월 20일 사형집행 전날 집행 위원회에 보낸
루이 16세 편지
이 요청은 거부 되었고
루이 16세의 유서가 됐다.
처형 당일 새벽 마리아투아네트의 글
파리의 카페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서로 '생각의 교환'을 통해서 자신의 실수를 보완하고 즐거움을 느끼며 세련된 감정을 갖출수 있고 또한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의 철학자들이 혼자만의 고독을 통해 성찰을 찾았다면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런 타인과의 생각의 교환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과였고 그들이 즐겨 만났던 장소가 바로 카폐였다.
17세기 초에 커피는 유럽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아랍인들의 즐겨 마시는 '악마의 음료' 라고 비난도 받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 많은 철학자 볼테르, 몽테스키외,루소, 빅토르 위고 등의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이미 파리에는 2000개가 넘는 카페가 생겼다.
프랑스 카페는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어 낸 중요한 장소였다. 영국의 카페와 달리 프랑스의 카페는 지식인들 뿐만아니라 평민과 노동자 남녀의 출입이 자유로워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던 혁명 주역들의 아지트였고 또한 그들의 연설을 듣고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시민들과의 공감의 장으로 역할을하며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고 그렇게 프랑스 카페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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