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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CIA 칠레 퓨벨트 작전-> 아옌데 대통령 사망-> 피노체트 정부 수립 3

by 365 ^^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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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나라가 등장한다. 그곳은 바로 칠레이다. 1970년대 초까지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민주주의 전통을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해 온 나라였다. 특히 1930년대 초부터 약 40년간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또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1970년 미국 정부의 주요 인물들이 칠레의 공산화 가능성을 우려해 당시 칠레의 대통령 선거에서 칠레 정치인 아옌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칠레 사회당의 수장이며 약 40년간 활동해온 칠레의 정치인이었다.

 

 

 

 

CIA 칠레 대통령 선거 개입

아옌데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해서 미국과 충돌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cia는 1964년 칠레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친미 성향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비밀 선거 공작을 펼쳤다. 1970년 CIA 칠레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 아옌데의 당선을 막으려 했다. 이때 CIA가 지원한 호르헤 알레산드리라는 우파 성향의 국민당 후보이자 cia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칠레의 대통령으로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되고 아옌데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대사건이었다.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뽑힌 것이다.

 

칠레 대통령 선거 결과
칠레 대통령 선거 결과

 

아옌데 정책 

아옌데의 당선은 미국에 큰 위협이 되었고 사회주의자 아옌데의 정책 노선은 명확했다.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의대를 다니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많이 보게 되고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의지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칠레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아옌데는 칠레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게 되고 이는 칠레의 산업에 투자한 미국인들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요소였다. 현재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약 1/3을 점유하고 있는 구리 수출국이다. 당시 1970년대는 칠레 수출의 80%를 차지했다고 볼수 있다.   

 

CIA 퓨벨트 작전 

이에 미국 정부는 아옌데의 전복을 추진하게 되고 작전명은 퓨벨트였다. 경제적 압박을 통해 아옌데 정부를 약화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퓨벨트 작전 내용
퓨벨트 작전 내용


칠레의 경제적 고립이 주요 목적이었다. 이때 cia는 칠레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비밀 공작을 준비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인 칠레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운송수단이 발전했는데 트럭운전 술을 매수해 파업을 강행하고 해서 경제에 치명타를 주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칠레 트럭 노조 파업 사건
칠레 트럭 노조 파업 사건

 

CIA는 약 800만 달러 약 100억 원이상을 투입해 칠레의 파업 상황을 악화시켰다. CIA의 트럭 노조 매수 작전은 칠레 경제를 마비시켰다. CIA는 칠레 신문을 매수해서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거짓 기사를 발행해서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고 최대 160%까지 물가가 치솟았던 칠레 경제였다.  

 

경제 악화에 대한 칠레 신문 내용
경제 악화에 대한 칠레 신문 내용



  

CIA 지원 받은 칠레 군부 쿠데타 
CIA 비밀공작으로 인해 칠레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아옌데 정부의 반대 세력도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아옌데는 칠레 육군 참모총장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임명한다. 그런데 이 인물이 바로 CIA의 지원을 받아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 되었다.

 

아옌데 대통령 사망 

1973년 9월 11일 아침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라디오 방송에 연이어 송출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는 쿠데타군의 작전 개시 암호명으로 곧이어 하늘에 공군 전투기가 보였고 대통령이 있는 모네다 궁에 폭격이 시작됐다. 수차례 계속된 폭격으로 대통령궁과 겁에 질린 시민들로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반군의 총구는 민간인에게도 겨눠졌다.  

 

불타고 있는 대통령궁
불타고 있는 대통령궁



이때 아옌데 대통령은 집무실에 있었고 그는 그 자리를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쿠데타군에게 점령되지 않은 국영 라디오 방송으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다. 이 비장한 연설 후 아옌데는 싸늘한 주검이 돼서 군인들에게 옮겨지고 아옌데의 죽음과 함께 칠레의 첫 사회주의 정부는 3년 만에 막을 내린다.   

 

주검이 된 대통령
주검이 된 대통령



 피노체트 정부 수립

아옌데의 죽음이후 피노체트는 1973년부터 17년간 철권통치를 하며 독재자로 군림하게 된다. 피노체트가 칠레를 점령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쿠데타 이후 약 두달 동안 국립 경기장에 시만 2만여 명을 잡아들이고 그 안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고문당하고 반대파로 지목돼서 살해당했다.

 

디나 국가정보국 

이런 작전을 시행했으며 이때 악명을 떨친 기구가 바로 디나(DINA) 칠레 국가정보국 기구였다. 히틀러에게 게슈타포라는 비밀경찰과 견줄 정도로 악명 높았던 피노체트의 디나였다. 당시 정권의 반대파,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를 색출했고 전국 각지 강제수용소를 운영하면서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던 디나였다.   

 또한 '디나'라는 기구는 죽음의 순례자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어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고 살해했고 그 시신을 헬기에 실어 이곳저곳에 버리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추문
그러나 이 시기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추문에 휩싸여 추락하고 있었다.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1972년 6월에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선거 본부에 침입해 불법 도청을 지시한 것이 밝혀진 사건으로 이 사건에 동원된 사람들이 FBI나 CIA 요원 출신과 자파타 작전의 가담자들이었다. 이에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직은 사임한 미국 최초의 인물이 된다.   

 

CIA 활동 위축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cia 활동도 상당히 위축이 되었다. 그리고 1981년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취임하면서 cia는 다시 힘을 얻게 된다. 레이건 대통령은 철저한 보수주의자이자 반공주의 성향이 짙었던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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