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러시아 공사권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 한다. 그 후 1년 9개월 만에 덕수궁으로 돌아와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신은 황제로 등극하며서 황제 즉위식을 올린 곳이 바로 환구단(=원구단)이다.
▣ 환구단(=원구단) 건립
대한 제국의 선포를 위해 황제 즉위식을 해야 하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황제만의 권리이기에 황제가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제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환구단을 만든다. 현재 조선 호텔이 있던 자리가 환구단(=원구단)이 있던 곳이다.
환구단(=원구단):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
황궁우: 태조 이성계와 선조들의 신위를 모시는 곳. 일종의 신전 천지 신과 조상신의 위패가 있다.
환구단(=원구단)이 있던 자리는 원래 중국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고 숙박하던 곳인 남별궁이 있었다. 그 자리에 환구단(=원구단)을 만든 것은 사대 정신을 멀리하고 자주 국가를 향한 고종의 염원과 의지가 담긴 것으로 상징성이 있는 자리이다.
그렇다면 환구단(=원구단)은 왜 사라졌을까?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긴 후 1915년 개최된 조선물산 공진회 식민통치 업적을 자랑하고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열었던 박람회로 강제병합 이후 발전 과시를 만천하에 알리고 강제병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개최하려 했다.
박람회에 맞춰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숙박시설이 필요했기에 1913년 환구단(=원구단)을 철거하고 일본 총독부 직영의 조선철도호텔을 세워 식민지 업적을 과시했다.
현재는 신위를 모셨던 황궁우와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황궁우 내부 모습 |
중국 황제의 용은 발톱이 5개인 오조룡인데 (황제를 상징)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용은 네 개의 발톱을 가졌었다. 그래서 이후에 세종 때부터 오조룡을 사용하기 시작 점점 발톱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그 후 고종때 발톱이 8개인 용을 볼 수 있게 된다.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백성을 위한 태평성대를 만들고자 한 상징이 환구단(=원구단)이다.
광복 이후 19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관광사업 육성정책이 추진되면서 일본의 호텔을 다 허물고 1970년 지금의 조선 호텔로 신축한다.
▣ 고종 황제의 즉위식
1897년 고종은 광무황제로 등극하며 황제 즉위식을 환구단(=원구단)에서 한 후 개혁의 시작을 알린다. 중국에서 하는 전통적인 황제 즉위식은 신들이 밤에 다닌다 여겨 새벽에 시작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고종은 많은 백성들이 볼 수 있게 즉위식 전날에도 대낮에 성대한 어가행렬과 함께 환구단(=원구단)을 참관하려 왔다.
당시 어가행렬은 압도적 스케일로 진행이 되었고 황제의 상징인 황룡포를 입고 등장한다.
또한 임금이 타던 어가 역시 황금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제국 선포(1897년)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휘날리며 황제 즉위식 전날 온 백성들의 축하 아래 어가행렬을 마치고 다음날 새벽 황제 즉위식을 거행 후 고종은 황제가 되고 국호가 '대한' 임을 선포한다.
'대한'의 유래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내려가 한 왕이 됐다는 전설에 바탕을 두고 조선을 중흥시키는 것이 한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이에 큰 한 이라는 뜻의 '대한'의 황제가 되었으니 왕국이 아닌 '제국'이 된다. 그래서 대한제국이 된 것이다.
대한제국 선포의 의미는 만국공법(=현대 사회의 국제법)의 국제질서를 선택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과 대응한 관계의 자주독립국가임을 인정받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선언한 것이다.
고종은 독살 되었다! ? (고종 황제 죽음에 대한 독살 의심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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