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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트로이아 전쟁은 역사적 사실인가 신화적 이야기인가?

by 365 ^^ 2021. 3. 29.

 

트로이아 전쟁은 언제 일어났을까? 기원전 12세기~13세기경인 약 3000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트로리아 전쟁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음유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문학작품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세계 다수 대학의 권장 도서이기도 한 문학작품이다. 두작품은 서양 문학 최초의 완성된 작품이다.

 

호메로스 

서양문학사 전체에서 유명한 문필가 중에 호메로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는 없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신곡>을 집필한 중세를 대표하는 작가 단테, <파우스트>를 집필한 독일의 문호 괴테, 세계 4대 시성으로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호메로스의 영향이 곳곳에 드러난다. 

 

 

일리아스 내용

전설적인 영웅 아킬레우스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일리아스이고 약 10년 동안 펼쳐진 트로이아 전쟁 중 약 10년째 되는 해 며칠 동안의 사건은 담은 이야기이다. 알렉산드로스 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습 교재로 사용했던 <일리아스> 를 알렉산드로스가 계속 읽으면서 아킬레우스 같은 위대한 전사를 꿈꿨고 전술, 전략을 익힌 책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오디세이아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이다.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

트로이 전쟁은 서양 문명사에서 계속 상징적인 의미로 남는다. 근대에 제기 된 주장은 <일리아스>는 모두 거짓이다 라는 실증성을 부정한 사람들이 있기도 했지만 반대로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사업가 겸 고고학자는 일리아스 작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리아스 이야기의 트로이아 전쟁을 진실이라고 믿고 트로이이아 유적을 확인하기 위해 트로이아로 추정되는 현재 터키의 히살리크 언덕으로 향한다.

 

 

이곳은 이미 흙으로 덮여 트로이아 유적을 확인 할수 없던 것을 3년동안 발굴해서 이곳에 도성이 있었던 유적의 일부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발굴한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트로이아 전쟁보다 약 1420년 앞선 시기의  유물이었다. 

 

 

슐리만은 트로이아에 대한 열정은 넘쳤지만 고고학 아마추어였다. 그는 크게 2가지를 실수하는데 트로이아는 불에 타서 사라졌기 때문에 불에 탄 흔적만 찾았고 불에 타지 않고 원형을 간직한 유물을 멋대로 훼손했다. 또한 그는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유물을 반출해서 일부는 아테네, 일부는 베를린까지 팔아버린다. 이 사실이 밝혀진 후 슐리만을 보물 사냥꾼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그 이후 고고학자들의 계속된 연구에 의해 새롭게 밝혀진 진실은 10개 층의 트로이아 유적의 역사적 흔적을 발견했다.  청동기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의 유적을 발견되었다. 히살리크 언덕의 유적은 오랜 세월 층층이 쌓여 온 인류 역사의 소중한 복합 유적지로 7번층이 트로이아 유적층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다시 46개 층으로 나누기도 했다. 

 

터키의 아슬란 교수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유적 발굴이 중단되었다가 1988년 독일의 호프만 교수에 의해 터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당시 호프만 교수의 제자로 발굴에 참여했던 터키의 아슬란 교수가 현재에도 계속해서 발굴을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자료와 유물들이 트로이아 전쟁이 허구가 아닌 사실을 근거로 한것이다 라고 입증하고 있다. 전설과 신화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인류의 역사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서양 고전학자 김헌 교수님] 알렉산더가 태어나기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로 알려진 신화, 신화가 된 역사,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불멸의 전쟁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가 있고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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