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정복지 세계 곳곳에 수많은 목욕탕을 남겼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오늘날과 같이 가정에 목욕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목욕탕에 들려 목욕을 하고 귀가하는 것이 흔한 일상이었다고 한다.
카라칼라 욕장이 그 모습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두꺼운 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 시대 공중 목욕장은 황제가 정치를 잘해서 로마시민이 생활은 데 문제없다는 증거로 목욕장을 지었던 것으로 황제들은 서민들에게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미지 연출을 위해 목욕탕을 지었으며 새로 만든 목욕탕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목욕탕의 크기와 면적도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더 화려하고 크게 지었다.
카라칼라 목욕탕은 누가 왜 만들었나?
로마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공중 목욕탕으로 212~216년에 만들어진 카라칼라 테빈 로마의 공중 목욕장이 있다. 카라칼라 욕장은 로마 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동생을 죽이고 심지어 아내, 장인까지 제거하며 권력을 차지했던 로마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황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카라칼라 황제가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서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로마 남쪽에 9000여 명의 노동자를 투입해 5년 만에 카라칼라 욕장을 지었다. 이곳은 신분의 차이 없이 귀족과 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다.
카라칼라 대욕장은 우리나라의 찜질방과 같이 로마인들의 목욕탕으로써 사교 활동과 친목을 도모하는 공간이였고 로마인들은 하루의 반나절을 목욕탕에서 보내며 문명화된 로마 시민에 대한 소속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줬을 것이다. 공중목욕탕은 황제가 시민들에게 건강을 장려하는 도구였고 또한 정치적이고 포퓰리즘(인기 영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었다.
카라칼라 면적
카라칼라 목욕탕의 면적은 대략 가로 350M 세로 330M 정도로 좌우 대칭구조이다. 축구장 4개를 합쳐 놓은 엄청남 규모로 한번에 2000명 이상이 입장 가능할 만큼 크기가 넓었고 카라칼라 전용 수로(안토니니 아나 수로)를 만들어 매일 수만 리터의 물을 끌어왔고 8만 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가 있었다. 내부는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도서관, 강연장, 체육관, 종교시설까지 있는 스포츠 복합시설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목욕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대로 목욕을 할수 있도록 시설을 만들고 싶었던 로마인의 욕구가 정교한 수로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2500km 나 떨어진 산에서 맑은 물을 끌어오는 경지에 까지 수로를 발전시켰다. 그 옛날 고대 로마에서 사용했던 물의 양이 현재의 로마시에서 사용하는 양과 거의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카라칼라 구조
목욕탕 시설도 체계적이었다. 처음 목욕탕을 들어오면 넓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즐긴 후
온탕인 칼다리움에서 운동으로 피곤한 몸을 풀고
테피다리움의 미온탕에서 때를 벗겨내고 마사지도 했으며
프리지타리움인 냉탕에서는 몸을 식히며 수다와 담소를 나눴다.
로마시대부터 냉온탕을 왔다 갔다 번갈아서 이용하며 목욕을 했던 것이 로마 목욕 문화의 특징이다.
537년까지 목욕탕이 운영되다가 동고트족의 침입으로 수로가 끊기면서 목욕장은 이용할 수 없게 되고 그 이후에 다른 고대 로마 건축물과 같이 중세 로마시대에 목욕탕을 구성하던 석재들을 이용해 다른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카라칼라 대욕장은 현재 남아있는 목욕장 중에 그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건축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출처 EBS 다큐 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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