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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세 제도의 폐단
조선 시대 병역 의무자가 군역 대신 내는 베(천)로 납부하는 군포가 있는데 군포를 걷기 위해서 군적에 이름을 올렸는데 16~60세까지의 성인 남자만 징수, 아이,노인,여자는 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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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짜리 아들과 아버지 30살, 할아버지 70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기준대로라면 납부해야 하는 군포는 1필인데 4살짜리 아이를 군적에 올리는 이정(오늘날 이장)이었다. 이것을 황구첨정이라고 한다.
▷황구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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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린 아이들을 첨정(군정에 첨가)한다는 뜻으로 황구첨정이 그 당시에는 제도화되어 있었다.
▷강년채
아이에게도 성인 남자에게도 군포를 징수하고 기준을 넘은 노인에게도 부과하던 강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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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징포
죽은 사람에 세금을 부과하던 백골 징포(백골에 세금을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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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어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것이 조선시대 조세제도였다.
조선후기 백성들의
참혹상에 대한 시
애절양
백성에게 아이, 노인에게도 군포를 물리다 못해 노인이 죽어도 걷어가던 군포였고 돈이 없다고 하니 이정(오늘날의 이장)은 그 집의 소를 가져가 버리고 이에 둘째 아이들 낳으면 또 걷어갈 것이란 두려움과 억울함에 자해까지 하게 된 농민은 둘째를 가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양(성기)를 절단해버리는데 그것을 본 아내는 충격을 받고 남편의 양을 손에 쥐고 정신이 나간채로 관가로 뛰어간다. 그리고는 남편의 양을 내밀며 소를 다시 되돌려 달라고 애절하게 하소연 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 흘리던 정약용이 지은 시가 애절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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