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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가 인기있던 이유
조선의 이념은 청렴, 결백이 선비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청자보다는 순백의 백자가 끌렸던 것이다.
조선 시대 백자를 유독 좋아했던 왕이 있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그 당시 명나라에서 청화백자가 유행하고 있었고 명나라는 세종에게 청화백자와 백자를 보냈다. 이를 본 세종은 청화백자에 매료되어 백자를 임금의 그릇으로 선택하고 청화백자를 직접만들기 위한 연구를 통해 고품질의 백자를 생산하게 된 조선이다.
백자가 사치품이 된 이유
세종, 세조때 국가에서 관리하는 관요를 만들어 국가에서 관리 생산하게 되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운 백자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백자는 사치품이 되었다.
청화백자에 사용되는 파란색 안료는 코발트라는 광석에서 뽑아내야 했고 이 코발트는 당시 금보다도 비쌌던 재료이다. 코발트 안료의 주생산지 중동에서 직수입이 불가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을 거쳐 이중무역을 거쳐 조선에 들어오게 되고 이로 인해 재료가 비쌌던 것이다. 전쟁이 나면서 도공이 잡혀하고 가마터가 파괴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 달항아리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변화한 우리의 도자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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