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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익산 무왕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 및 선화공주 이야기)

by 365 ^^ 2021. 1. 25.

[선녀들 리턴즈 9회]

익산

 

백제가 익산을 중요시 여긴 이유는? 

백제 무왕의 비전과 의지를 볼 수 있는 곳이 익산이다. 

익산에서 다시 한번 백제의 부흥을 이끌고자 한 무왕

무왕 때 수도를 부여-> 사비-> 익산으로 옮기려 했다는 설이 있다.  

  • 강과 평야로 이루어진 곡창 지대-군량미 지급이 용이
  • 부여보다 남쪽이므로 신라를 견제하기에도 용이
  • 무왕(의자왕의 아버지)의 세력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백제 남방으로 진출 원함.

 

무왕(의자왕의 아버지), 서동과 선화공주 

무왕의 어릴적 이름은 서동이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이쁘다는 소문을 들은 서동(백제 무왕)은 신라로 내려온다. 기록마다 달라 서동의 신분(무왕의 어릴 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이 캔 마를 가져온 서동은 신라 장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공짜로 마를 나눠주며 자신이 지은 노래(서동요)를 퍼뜨리게 한다. 

 

결국 신라 궁까지 퍼진 노래는  진평왕은 화가나서 결국 선화공주를 궁에서 쫓아낸다. 그 이후에 둘은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된다. 

적국으로 시집 와 다시는 신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선화 공주가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바로 익산의 미륵사라는 절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미륵사지인데 그곳에 딱 한나 남아있는 것이 탑 세 개 중에 한쪽만 남아있고 미륵사 창건을 발원한 사람이 선화 공주라는 말이 삼국유사 원문 내용에 있다. 

기록이 남아 있었으니 의심치 않았던 내용이 2009년도에 미륵사지에서 새롭운 진실이 밝혀진다. 

 

 

 

국립익산박물관

 

예전 미륵사를 재현해놨다. 한눈에 보이는 미륵사지 가람배치 형식 일반적인 1 탑 1 금당식  가람배치와 다른 3 탑 3 금당식의 독특한 형식이다. 현재는 서쪽에 있는 탑의 일부만 남아 있다.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915년 일제강점기에 더 이상의 무너짐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덧발라 응급보수를 한 그림이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가장 쉽고 빠르고 저렴한 보수공사였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보존만 했던 석탑이다. 1997년 이후 보수 정비를 시작해 현재는 새로운 보수된 탑을 관람할 수 있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 

 

 

2001년부터 해체한 결과 2009년 석탑의 1층 내부 통로 안에 탑(심주석)의 중심 돌을 들어 올리니 약 1,400년간 잠들어 있던 백제의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출토된 금제 사리 봉영기

미륵사는 선화공주가 신라를 생각하며 지은 절로 알려졌지만 금제 사리 봉영 기를 해석해 보니 

세게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음 

 

이 내용이 확인이 되면서 선화공주의 이야기의 사실 여부 ~ 가 불투명해졌다.   

 

 

 

미륵사지 석탑 살리기 

1998년부터 시작된 미륵사지 석탑 살리기 때어낸 콘크리트 양만 185톤이다.

 

 

그렇게 약 20년이 지나고 현재의 미륵사지 모습을 갖췄다. 

 

 

2019년 4월에 보수 정비를 마침 쳤다. 현재 모습으로 그대로 보수 정비된 이유는 

6층으로 보수한 것은 후대인에게 추정해서 복원할 시 탑을 잘못 파악할 소지가 있어 향후에 탑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나올 시 언제라도 탑을 복원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상태의 밑 준비를 끝낸 복원이다. 돌 하나하나 3D 스캐닝을 해서 언제라도 어떤 돌을 빼고 바로 다른 돌을 사용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상태다. 

 

미륵사지 석탑이 유명한 이유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목탑->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석탑이다.

목탑의 양식이 이용된 미륵사지 석탑/석탑의 입구 바닥 돌을 보면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의 목재의 결합방식을 보는 듯한 구조이다.

 

무왕 릉 -익산쌍릉 

2018년 최근 100년 만에 실시된 재 발굴을 통해 관에서 발견된 유골함과 뼈 조각이 무왕과 맞아떨어진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둘러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둘러보다

미륵사지를 방문했던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워낙 부지가 넓고 잘 꾸며 놓아서 찾는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넓은 부지에 비해 이름에도 알수 있듯이 절터만 있는 곳이라 

janga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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