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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영국 헨리 8세의 여인들

by 365 ^^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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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스캔들을 남긴 튜더왕조 헨리 8세는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고 그의 이미지는 심한 여성편력이 있는 포악한 바람둥이로 6번이나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491~1547) 

 

헨리 8세는 큰 키의 거구였다고 한다.  

 

 

첫번째 부인 캐서린

헨리 8세의 첫번째 아내는 아라곤의 공주 캐서린이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 원래 캐서린은 형 아서의 아내, 헨리8세의 형수였다. 왕세자 아서가 15세에 열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자 스페인과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캐서린과 헨리 8세를 헨리 7세가 정략결혼 시킨다. 

 

결혼을 하기 위해  교황에 특별허가를 받았고 헨리 8세의 형과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캐서린이 증언을 하면서 결혼이 성사될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메리가 태어난다. 헨리 8세는 왕위 계승을 위해 아들을 원했지만 잦은 유산과 사산을 하면서 24년의 결혼생활을 이어나갔고 결국 아들이 태어나지 못하자 초조해졌다. 

 

 

 

 

 

두번째 부인 앤 불린

이때쯤 눈에 들어온 여왕의 시녀 앤불린과 사랑에 빠졌고 정식으로 결혼을 원했던 헨리 8세였지만 법적으로는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교황청이 이혼을 반대한 이유는  캐서린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이였던 카를5세의 이모였기 때문에 이를 허락하면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기에 절대 허락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헨리 8세는 결혼하기 위해 교황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교황청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1534년 헨리 8세는 종교를 바꿔버린다. 당시 영국은 가톨릭 국가였다. 가톨릭은 교리상 이혼이 불가했고 그래서 교황청과 결별하고 자신만의 영국교회(성공회)를 만들고 자신이 수장이 되어 캐서린과 이혼한다. 헨리 8세가 종교 개혁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수도원을 해산하고 그 토지와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

 

앤 불린

 

그리고 헨리 8세는 앤 불린이 당연히 아들을 임신했을 거라 믿었는데 딸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난 것이다. 그 후에도 앤 불린은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면서도 아들은 얻지 못했다.  그렇게 그렇게 아들을  얻지못한 헨리 8세는 앤 불린아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와 근친상간, 간통죄 등 온갖 누명을 뒤집어 씌운 후 처형한다.

(참고로 두번째 부인과 헨리8세의 이야기는 가장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세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

앤 불린이 사형당한 후 11일 만에 앤 불린의 시녀 제인 시모어와 결혼한다. 세번째 결혼에서 원하던 애드워드 6세를 낳게 된다. 그러나 아들을 낳은 제인 시모어는 얼마 뒤 출산 휴유증으로 죽게 된다.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6명의 아내 중 유일하게 왕과 같이 묻힌다.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 6세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모델이기도 하다. 아버지 사망후 9살에 즉위하지만 재위 7년만에 사망

 

네번째 부인 클레페의 앤

그녀의 죽음으로 헨리 8세의 여성편력은 더욱 심해진다. 이후 4번째 부인은 독일의 조그만 나라 클레페 공국의 공주 클레페의 앤과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레페의 앤 4번째 부인은 이혼은 했으나 연금을 받고 잘 살았고 계속 영국에 머물며 왕의 친구로 지내고 헨리8세 사망 이후 10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이들은 6개월 만에 이혼을 한다. 앤은 신하들이 잔뜩 칭찬했던 초상화 속 그 모습이 실물과 너무 달랐고 그녀는 프랑스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헨리8세와 대화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헨리8세는 앤과 합의 이혼을 한다. 

 

 

 

 

다섯번째 부인 캐서린 하워드

5번째 부인는 자신이 처형했던 앤 불린의 사촌이었다. 그녀의 삼촌은 앤 불린때 얻었던 권력을 다시 되찾기 위해 조카를 왕비의 시녀로 보냈고 18세 캐서린 하워드는 왕을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헨리8세와 결혼을 한다. 이들은 32살의 나이차이가 있었고 캐서린 하워드는 밀고로 결혼 전 바람이 들통나 그녀의 남자와 그녀 또한 19세에 처형을 당하고 만다.

 

 

 

마지막 부인 캐서린 파

그리고 캐서린 하워드를 참수하고 1년 만에 마지막 왕비를 들인다. 헨리8세가 낙마 사고 이후 몸도 불편했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원했기 때문에 이미 2차례나 결혼 후 남편과 사별한 바 있는 캐서린 파를 왕비로 들인다. 그녀는 이해심이 많고 인내심도 강했고 헨리 8세의 자식들을 잘 보살폈다. 

 

6번째 부인 캐서린 파

 

또한 캐서린 파는 두 딸 메리, 엘리자베스 1세와 헨리 8세의 화해를 주선했는데 그녀의 조언으로 헨리8세는 아들인 에드워드 다음으로 왕위 계승권자로 인정하는 법을 제정한다. 캐서린 파와 결혼한 지 4년이 지나고 건강 악하로 헨리 8세는 1547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렇게 헨리8세의 죽음으로 왕위는 그의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 6세가 계승하게 된다. 케서린 파는 왕이 죽고나서 옛 애인과 재혼했고 아이를 출산하던 중 3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헨리 8세의 자식들은 순차적으로 모두 왕위에 올랐다.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 6세가 제일 먼저 즉위했으나 단명했고 이어서 장녀인 메리 1세가 영국 최초의 여왕으로 4개월간 통치 후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를 이어받으며 영국은 대영제국의 초석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헨리8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드라마 추천

드라마<the tudors 튜더스> by 마이클 허스트 /영화<천일의 스캔들>(2008)

 

[17회 중]

 

영국 역사 간략 요약 정리

 

영국 역사 간략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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