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년 전 조선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한다. 스페인 독감은 3.1 운동 직전이었던 1918년 봄 시작~1919년 여름에 발생한 역병으로 1년 반 동안 전 세계 인구의 1/3이 감염된 감기 바이러스이다.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역병이 스페인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의 정식 명칭은 1918 인플루엔자로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였다. 전쟁 중에 스페인 독감이 퍼져나가 전 세계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스페인 독감 사망자 수
이 감기 바이러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퍼진 바이러스이다. 당시 세계 인구의 약 18억 명 중 5억명이 감염되어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약 1억 명으로 추정한다.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인 역병이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 대전을 어리버리 종결시켜 버린 것이 이 스페인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의 최초 사례
1918년 2월 미국의 캔자스주 해스켈에서 갑자기 마을 청년들이 실신하며 사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침, 열, 두통, 몸살의 증상이 너무 심했다. 당시 최초로 스페인 독감을 기록한 의사의 보고서가 있다.
스페인 독감 증상
스페인 독감의 특징적 증상은 청색증이다. 피부가 푸르스름하게 바뀌는 증상으로 인간의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인 폐안이 염증 물질로 가득차서 호흡이 불가능해지면서 헬리오트로프 청색증이 발병한다.
헬리오트로프는 청색과 보라색의 중간쯤 되는 꽃인데 당시 스페인 독감에 걸린 환자들의 얼굴이 꽃의 색과 같이 변하면서 죽는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스페인 독감에 걸리면 초기 증상은 독감과 비슷하고 폐 속에 피 거품이 차면서 폐렴으로 발전하고 몸에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사망에 이른다.
또 다른 증상은 폐의 일부분이 염증으로 터져서 가슴 피부 밑에 공기주머니가 생성되는 일도 발생, 눈,입,귀,코에서 출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스페인 독감이 확산된 원인은?
스페인 독감이 전쟁에서 확산된 원인은 참호전 때문이었다. 당시 참호는 비좁고 습도가 높아 불결한 공간이었고 전쟁중이라 영양부족으로 면역력 또한 약해진 사람에게 스페인 독감이 전파되기 쉬운 환경이었다. 또한 이렇게 전 세계에서 온 군인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스페인 독감을 퍼트리면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제28대 미국 윌슨 대통령도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었고 <키스>로 유명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절규>를 그린 화가 뭉크도 걸렸다. 뭉크의 스페인 독감 걸리기 전 자화상 그림과 스페인 독감 걸린 이후 자화상이 유명하다.
사이토카인 스톰이란?
독감 사망자의 대부분이 65세 이하였고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였다. 그 이유는 사이토카인 스톰(Cytokine Storm) 증상 때문으로 면역세포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지원군을 부르며 수단으로 65세 이상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낮아 면역 반응이 약하게 나온다. 그러나 젊은 층은 면역력이 좋아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강렬하게 반응을 한다. 이렇게 젊은이의 면역 반응이 강해서 폐에서 과도한 염증이 발생하면서 결국 몸 전체를 손상시켜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라 부르는 이유
'스페인 독감' 이름에 숨겨진 비밀 : 스페인 독감의 시작은 스페인이 아니다. 이 병이 처음 시작된 곳은 미국이었다. 1918년 초 제 1차 세계대전 중 미국 캠프 펀스톤 군부대에서 퍼졌고 대서양을 건너 서부전선 국가들로 이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 중요한 포인트인 적국의 사기를 꺾는 광고 마케팅으로 독감의 발원지가 미국인 것이 적국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했고 적국에서도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은 중립국으로 전쟁 보도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독감 보도를 하게 된다. 스페인에서 계속 방송을 하게 되니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알고 보면 스페인과는 무관한 스페인 독감이다.
어떤 동물에게서 전파되었나? (스페인 독감의 원인)
2005년에 알래스카에서 묻혀있던 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검사해보니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 시체의 폐 조직에 있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연구한 결과 우리가 아는 바이러스였다. 그것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다. (=조류독감) 소멸되었다고 생각했던 스페인 독감은 2009년도에 부활했다. 최대 57만여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신종플루의 등장이었고 돼지가 원인이었다. 다행히 치사율은 0.05 %로 낮았다. 신종플루는 스페인 독감의 친척쯤 된다.
스페인 독감 백신
스페인 독감은 급속도로 전파되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그러나 아직 소멸한 원인은 명확히 밝히지 못했으나 집단면역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조류독감은 닭과 오리등 조류에 의해 생기는 바이러스로 최근에는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어 차단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의학기술이 발달되어 있고 스페인 독감 백신이 있지만 그때는 수많은 희생을 남긴 독감이었다. 또한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도 매년 맞아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고자 유니버설 백신을 개발 중이다.
조선을 덮친 역병 스페인 독감
이 독감은 조선과 일본으로까지 전파되었다. 1918년 일제 치하 아래 있던 조선에 닥친 스페인 독감을 1918년 무오년에 왔다고 해서 '무오년 독감'이라 불리기도 하고 서반아 감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반아는 스페인을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당시 조선 인구가 약 1,700 만이었는데 감염자가 약 750만 명이었고 사망자는 약 14만 명에 이르게 된다. 100명 중 1명 꼴로 죽은 셈이다.
김구 선생은 살면서 딱 두 번 병원에 갔는데 한 번은 혹을 떼러 가고 다른 한 번이 이 스페인 독감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방역법
그 당시는 일제강점기 때 당시 위생 수준이 좋지 않았던 조선에 일제가 독감 방역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국권 피탈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일제의 방역법은 위생 시설을 만들기보다는 감염 차단과 감시에만 몰두했다.
일본군이 모든 집마다 방문하여 감염 호구 조사를 다녔다. 일제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청결하지 못하다면 다짜고짜 끌려가 매질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일본의 계속된 일제의 만행에 분노한 조선인은 결국 3.1 운동이 터진다. 스페인 독감이 3.1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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