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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차이나는 클라스

수양대군 왕이 되기까지 이야기 262 -1 회

by 365 ^^ 2023.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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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 <관상>  이정재 배우가 분했던 세조의 역할일 것이다. 그럼 이런 세조의 모습이 역사속 세조의 모습과 일치했을까? 

 

 

세조의 취미는 사냥이었고 사냥을 잘하는 모습은 같다고 할수 있다. 세조의 특징 중에 하나는 과시욕이 강한 인물이었다. 용맹함을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늙고 둔한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말이 힘이 없어서 쓰러질 때마다 말에서 멋있게 착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이런 세조의 기질을 알았기 때문에 수양에게 품이 큰 옷을 입어서 성격도 옷에 맞춰서 큰 성품을 가질수 있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세조의 외모는 2016년 드러났다. 폭군 이미지와 달리 부드럽고 순한 인상의 세조 모습이다. 그러나 세조의 온화한 얼굴 뒤에 권력욕과 비정함이 숨어 있었다. 

 

세조의 어진: 세조의 실제 외모

수양대군은 언제부터 왕이 될 꿈을 꾸었을까? 세조는 처음에 왕이 되겠다는 야욕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수양대군은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에게는 적장자라는 정통성을 가진 문종이 있었고 아버지 밑에서 세자생활만 30 년을 했던 문종이다. 준비된 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종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연이은 국상으로 식음을 전폐한 문종은 제 2년 만에 사망한다. 그리고 문종의 뒤를 잇는 적장자 단종이 1452년 조선의 6대 왕이 되고 그때 나이가 12살이었다. 단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단종을 도와 국정 운영을 할 왕실의 어른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문종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였을 것이다.  문종도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때부터 문종과 함께 국정을 운영했던 믿을 만한 신하들에게 단종 부탁했던 문종이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종서 장군이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뺏기 위해 세운 계획은? 

첫 번째 계획은 김종서의 무리를 역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제거한다.  

 

김종서를 쓰러트린 직후 수양대군은 단종을 찾아가 자신이 역적 김종서를 처리했으니 나머지 무리들을 자신이 처리할 것이니 왕께서 명패(왕의 명)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던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이미 살생부를 만들어 놨던 상태로 하나하나 실해에 들어간다. 이때의 비극이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난이다. 

 

서울 북촌 재동의 유래 

계유정란때 죽은 사람들이 흘린 피 때문에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자 시신을 재로 덮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네 이름이 잿골로 불리다기 지금은 재동으로 변경되었다. 북촌의 헌법재판소 자리가 바로 재동이다. 

 

수양대군의 살생부를 같이 작성한 책사가 바로 한명회이다. 

 

 

압구정 유래 뜻, 한명회 죽음이 끝이 아니였다.

오늘날 강남의 가장 핫한 장소 압구정이 있다. 이 압구정은 조선시대에도 가장 핫한 장소였던 곳이다. 바로 이곳에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한명회가 살았기 때문이다. 한명회의 권력 조선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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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와 수양대군은 서로의 권력욕을 간파했고 수양대군은 지위가 낮은 한명회를 경계하지 않았다. 이 둘의 만남이 조선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계유정란 이후 

이 사건 이후 수양대군은 실권을 확실히 갖게 된다. 다양한 직책을 동시에 맡게 된다. 2년 후에 수양대군은 왕이 될때까지 3정승의 직책을 맡는다. 그 2년 동안 수양대군은 왕이 될 명분을 찾았던 것이다. 

 

 

단종의 측근을 모두 제거하는 수양대군을 보며 단종은 왕의 자리를 내려놓으려 결심한다. 그래고 단종이 옥새를 단종에게 내릴때 수양대군은 극구 사양한다. 이때 성산문이 옥새를 전달하면서 통곡을 했고 옥새를 전달했던 장소가 경회루이다. 이렇게 단종은 왕위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자 세조는 결심한다. 

 

▽ 단종복위 운동 :사육신 생육신 이야기 (뜻, 성삼문,박팽년, 묘)

 

사육신 생육신 이야기 (뜻, 성삼문,박팽년, 묘)

창절사 강원도 영월 창절사는 10개의 위패들 (사육신 6명+엄흥도, 박심문 포함 8명)과 정조 15년 생육신인 김시습 남효온까지 10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육신과 생육신 (죽을)사(여섯)육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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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을 포함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된 인물만 70여명을 잔인하게 죽이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을 시킨 것도 모자라 유배를 보내버렸다. 유배지에서 단종은 짧은 생을 마친다. 수양대군의 친동생 금성대군마저 단종복위운동에 나서자 살아 있는 단종에게 정치적 부담감을 느낀 세조는 단종을 죽인다. 

 

▽계유정난 단종 이야기(황표정사)영월 단종 유배지 (청령포,장릉)

 

계유정난 단종 이야기(황표정사)영월 단종 유배지 (청령포,장릉)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15회 후반,16회] 오늘의 탐사지: 영월, 단종 유배지 주제: 단종의 생애 출연자: 정유미 선녀들 영월 여행지 순서 1.선돌 2.청령포-청령포 안 유배지터 2달 머뭄-관음송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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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왕조 실록에는 단종 스스로 자결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료의 기록들을 종합해 볼때 세조에 의해 계획된 죽음임은 확실하다. 

 

[다음 이야기 ]세조 업적 , 왕이 된후 이야기 262 -2 회

 

세조 업적 , 왕이 된후 이야기 262 -2 회

→ 수양대군 왕이 되기까지 이야기 262 -1 회 수양대군이 왕이 된 후 세조의 가장 큰 목표는 강력한 왕권이었다. 6조직계제 세조가 단종의 측근 김종서 등을 제거한 이유도 어린왕을 이용해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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