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마카오 포루투갈 영향을 받은 문화들: 마카오 음식, 건축물.. 180- 2
마카오의 쇠퇴
17세기 마카오의 운명을 바꿀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다. 1644년 명 왕조 멸망, 청 왕조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에 포루투갈은 청 왕조에도 임대료와 뇌물을 바치며 마카오에서 정착을 유지한다. 그러나 1684년에 청나라를 최고의 번영기로 이끈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가 등극하면서 명나라 이후 폐쇄적이던 해상 무역을 활발히 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한다.
마카오와 근접한 광저우항에 공식 무역항을 개방하면서 마카오가 아닌 광저우로 질 좋은 무역품들이 향하게 되고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등은 광저우로 향하게 되었다. 1800년대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포르투갈의 기세마저 약화되면서 마카오의 활력은 잃어가게 된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마카오의 어둠의 경로를 통해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카오를 포기할 수 없었다. 포루투갈은 아편을 몰래 팔아왔던 것이다. 포루투갈 상인들은 식민지 인도에서 아편을 들여와서 마카오를 통해 청나라로 유통시키고 있었다. 18세기 초 매년 200 상자씩 들여올 정도로 대량의 아편을 유입시키고 있었다. 포르투갈에 이어 영국까지 청나라에 아편 밀수 무역을 벌인 결과 40년간 중국에서 흘러 나간 은이 약 3조정도 였고 이로 인해 아편전쟁까지 벌어지게 된다.이 전쟁은 청나라의 완전한 패배로 끝이 나게 되고 그 결과 1842년 난징조약을 통해 청나라는 홍콩섬을 영국에 햘양하게 된다
마카오 도박의 성지되다.
이를 지켜본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총독을 파견, 법령을 마음대로 바꾸고 마카오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된다. 법뿐만 아니라 토지권, 행정권 등의 주권까지 빼앗게 된다. 청나라와 협상 없이 무력으로 마카오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마카오를 차지한 포르투갈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유럽에서 도박 합법화 열풍이 불고 있었고 1849년 포르투갈에서 온 마카오의 총독 호세 페가도는 도박을 합법화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마카오를 세계적인 도박의 성지로 만든 시초가 되었고 1860년 마카오에 200개가 넘는 도박장이 생겨났다.
마카오의 도박세 (1882년~1886년) 정부 총 재정 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했는데 당시 유럽 왕정에서는 카지노장에서 나오는 세금을 국가 재원 충당하는데 사용했고 포르투갈 또한 마카오에 도박 합법화를 추진했고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의 영향력을 점점 커져갔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탄생
1887년 포르투갈은 청과 우호통상조약을 맺고 마카오를 법적으로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게 된다. 이때부터 청나라의 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마카오의 분위기는 본토와 달리 자유분방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아편 거래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마카오 아편 및 도박 사업가 가오커닝은 1914년 마카오에 아편 사업권을 독점한다.
이후 카오커닝은 1937년 마카오의 카지노 사업권까지 독점하게 된다. 또한 19세기 마카오에서는 배 위에 선상 매춘이 유행했다. 19세기초 20세기초 포르투갈령 마카오는 쾌락의 도시로 전락하게 된다. 이때 중국은 중일 전쟁이 발발, 1938년 일본은 광저우를 점령하고 중국의 여러 해안 도시를 장악한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포르투갈이 중립국 선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카오는 이의 영향으로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게 되자 많은 중국인들이 마카오로 몰리게 되었다.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되었고 마카오에 대한 포르투갈의 영유권에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에 마카오는 제 3의 지대로써 포르투갈이 식민통치지로 이어간다.
카지노 황제 스탠리 호 등장
1921년 홍콩의 명망가 출신인 금수저 스탠리 호는 막대한 부를 쌓은 유대인 영국인 증조할아버지가 있었으나 13살 되던 해 아버지의 주식 투자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게 되었다. 그런 스탠리 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곳이 마카오였다.
스탠리 호는 중일전쟁 당시 마카오의 한 무역회사에 취직을 한 후 단 2년만에 공동 경영자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을 한다. 무역회사에서 번 돈으로 건설 사업을 시작 중일전쟁 이후 전후 복구 사업으로 떼돈을 벌기 시작한 스탠리 호는 20여년 후엔 100억대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이후에 가오커닝 마카오 카지노 독점권이 25년 기간으로 만료가 되자 입찰을 시도 마침내 40년간의 카지노 독점권을 따내게 된다.
스탠리 호 카니노 운영권 획득
스탠리 호는 1961년 경쟁 입찰을 통해 카지노 운영권을 따냈다. 처음부터 카지노 수익금의 90% 전부 기부와 후원에 쓰고 10% 의 수익금만 가져가겠다고 해서 정부에서 입찰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스텐리 호가 가장 먼저 마카오에 현대식 카지로 리조트를 최초로 열게 된다.
1950년까지 4층 이상의 호텔이 없던 마카오였고 1962년 에스토릴 호텔을 오픈한 후 1970년 리스보아 호텔을 차례로 오픈한다. 리스보아 호텔은 657개의 객실을 소유한 초대형 호텔로 화제가되었다. 이 호텔은 로비에 화려함을 더하는 샹들리에가 포인트였고 당시 슬롯머신만 100대를 들어놓을 정도로 마카오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만들었다.
이곳을 개장하자마자 아시아의 슈퍼리치들이 돈을 쓰기 위해 찾아왔고 스텐리 호는 큰손을 끌어들이기 위해 카지노 vip 룸 임대제도를 제공했으며 이것이 성공하면서 마카오 카지노 업계는 번성한다. 이후 마카오 호텔, 백화점, 은행, 부동산, 택시, 페리, 항공사등을 독점하면서 마카오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된다. 2018년 은퇴당시 그의 재산은 무려 한화 8조원에 달했다.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은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제체제가 무너지면서 식민지를 일괄 독립시키게 된다. 이로 인해 마카오 또한 포르투갈에서 독립하게 되면서 마카오는 중국으로 반환된다.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 : 비폭력 민주주의 상징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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