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이황순
1970년대 당시 마약제조 및 밀매로 검거된 마약 사범들이 많았는데 국내유통, 수출까지 하다 검거된 마약왕 이황순이 있었다.
이황순은 국내 최대 마약 업자로 활동했고 초반에는 금괴, 시계등을 밀수하던 밀수업자였다. 밀수를 하다 징역 4년의 선고를 받고 1년 후 형 집행정지로 나온 후 거주지 제안을 두었드나 행방불명이된다.
1969년과 1975년 결혼을 했으나 파혼을 했고 교모하게 도주한 이황순은 부산 별장서 수출용 필로폰을 불법 제조했고 당시 필로폰 제조의 일인자로 홍콩에서 원료를 가져와 한국에서 제조 그것을 다시 일본으로 수출하는 마약 유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
1970년대 이황순은 자택에서 약 6평정도의 마약 제조공간을 마련, 필로폰 70kg을 제조 당시 70억 원 규모의 마약을 판매했고 체포 당시 재고였던 필포폰 가치만 3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황순의 마약제조 장소
이황순이 필로폰을 제조했던 별장은 철옹성으로 200평의 호화주택 집으로 장미정원을 크게 가꾸고 외부인 접근 차단을 위해 대형 경비견을 길렀으며 cctv뿐만아니라 고성능 음파탐지기까지 있어서 외부인이 집 주위 2m까지 접근시 집안에서 발자국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대량 마약제조때 나는 냄새는 인근 목재공장의 악취라 생각했고 이황순의 하수인들은 밤에만 출입 낮에는 수도검침원 행세를 했다고 한다.
위조 신분증을 들고 다니며 신분을 숨겼고 가짜 면혀증을 사용하며 경찰을 피해다녔다. 1980년 3월 18일 이황순은 체포가 된다. 무장 경찰 검찰은 이황순의 집을 포위했다. 친형까지 들어가 자수를 권유,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닥 어깨에 총을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었고 그렇게 결국 검거된다.
1981년 4월 28일 징역 15년 형, 추징금 3억 4600만원 선고받았다.
출소 후 행적
이황순은 검거 당시 마약 중독자로 하루 6차례 필로폰 투약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출소후 행적은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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