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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러일 전쟁 이야기 [벌거벗은 세계사 10회 ]

by 짱신나^^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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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 첫 번째 이야기] 

 

19세기(1801년 ~1900년) 상황은 열강들의 게임판이었다. 영국에 의해 바다쪽 세력 확장이 막혀 있었던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세력권 확대를 꾀하였다.

 

시베리아 횡당 철도 길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당 철도 건설 이유

 

시베리아 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철도의 길이는 약 9000km 가 넘는 길이로 지구 둘레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철도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부동항 확보를 통해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러시아 발트해는 10월부터 눈이 내려 바다가 얼기 시작한다.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 물자와 군사 이동이 힘들었던 러시아는 부동항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래서 얼지 않는 항구 부동항을 확보하려 했다.

 

겨울에 바다가 어는 러시아

 

 

 

러시아에 위협을 느낀 일본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의 군사적 요충지 뤼순을 확보한 상태였고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진출 준비를 하려던  일본과 러시아의 이권이 충돌하게 된다. 러시아는 당시 강대국으로 일본과 러시아의 군력 차이는 엄청났다. 

 

 

 

 

 

오쓰 사건(1891년 5월 11일)

 

1891년 시베리아 철도 기공식 참석 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는 여러 척의 함대를 이끌로 일본을 방문한다. 

 

코리예츠 러시아 함대

그 함대 이름 중에는 만주호와 코리예츠라는 한국을 의미하는 배 이름의 함대도 있던 것으로 봐도 러시아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알수 있었다. 

 

그런데 황태자 니콜라이를 경호하던 시가현 오쓰시의 일본 순사가 칼을 뽑아 들고 황태자 니콜라이에게 테러를 가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에 놀란 일본은 러시아의 보복이 두려워 일왕까지 나서서 사과를 한다.

 

테러에 사용되었던 증거품들

이 사건으로 일본 순사의 집안은 아버지는 목숨을 끊고 범인은 감옥에서 사망하는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다. 

 

삼국간섭(1895년 5월 5일)

 

청일 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고 조약의 핵심 내용은 청나라의 랴오둥반도(요동)을 가져 간다는 것이었다. 이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은 랴오둥반도를 청나라에게 반환할 것을 주장한다.  그 이전부터 러시아는 요동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삼국간섭으로 일본은 다시 랴오둥반도(요동)를 청나라에 돌려주게 된다.

 

 

 

 

 

삼국간섭의 대가로 독일은 칭다오, 러시아는 랴오둥 반도, 프랑스는 광저우를 차지하게 된다. 랴오둥 반도(요동)를 돌려주면서 대신 일본은 배상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돈을 빌려주는 댓가로 요동반도를 차지하며 뤼순항을 장악한 것이다. 이렇게 서구 열강은 세계를 땅따먹기 게임하듯 국제적 조폭 사회 분위기였다. 

 

을미사변( 1895년 10월 8일 )

 

일본은 청일 전쟁 이후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지고 있던 청나라를 이기고 경복궁까지 점령했다. 일본은 조선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고종은 일본 견제를 위해 친러파를 대거 등용하여 내각을 구성한다. 또한 명성황후도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국정을 상담하며 조선 내에서 점차 강해지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보고 있던 일본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을미사변이다.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의 충격적 진실!!! (배경 결과 정리)

경복궁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건청궁이 있다.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곳이다. 한국사의 가슴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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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1896년 2월 11일)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일본군의 감시 속에 생활해야 했고 독살의 두려움에 시달린 나머지 음식도 열쇠를 채운 통에 들어 있는 봉인된 음식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종은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하게  된다. 

 

 

 

아관파천 1등 공신은 누구? (아관파천 배경 원인과 이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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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삼국간섭 이후, 아관파천까지 5차례에 걸쳐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던 고종이다. 

 

 

영일 동맹 체결(1902년 1월 30일)

 

그렇게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자 백성들의 일본에 대한 분노는 대단했고 일본의 노력 또한 허사로 돌아갈 때쯤에 일본과 영국이 군사동맹을 맺게 된다. 영국은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를 동아시아에서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은 것이다.

 

  

당시의 국제관계를 표현한 카툰

 

1902년 체결된 영일동맹의 핵심 내용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영일 동맹 핵심 내용

이것은 영국은 청국의 이권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이권을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의화단 사건(1899년 11월 2일~ 1901년 9월 7일)

 

러일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 중의 하나는 1900년 중국에서 발생한 의화단 사건이 있다. 청일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막대한 배상금을 떠안게 되고 이 틈을 타서 서구 열강이 몰려들어 그들에게 돈을 빌리고(차관) 열강은 이권을 빼앗아 갔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청나라 국민들은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해 일어난 사건이 1899년 톈진부터 1900년 베이징(북경)까지 쳐들어간 의화단들이 외국 공사관들을 습격하고 철도와 전신선 등 핵심 시설들을 파괴하면서 했던 저항운동이다. 이에 8개국의 연합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쳐들어간다. 

 

북경으로 쳐들어간 연합군들  

 

이때 러시아도 파병을 했는데 러시아는 북경으로 가지 않고 만주 일대를 군사점령한 후 의화단 사건 이후에도 군대를 철수하지 않는다. 이에 연합국들은 화가 났고 이것이 영일동맹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니 일본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당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길 원했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의 국력차이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일본은 국가예산의 약 40%를 국방비로 사용하면 이를 목표로 철저히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의 늘 그랫듯  선전포고 없이 뤼순과 인천을 선제 공격 결정한다. 인천 제물포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이었다. 일본은 인천 상륙 후에야 선전포고를 한다. 

 

제물포 앞바다 전투 장면
1904년 인천 통해 들어온 일본군 행렬

 

한일 의정서(1904년 2월 23일)

 

이렇게 인천으로 상륙해 들어온 일본군은 고종을 직접 찾아가 군사적 힘으로 압박해 한일 의정서를 체결한다. 조선에 일본군 주둔을 허용하는 내용인것이다. 

 

한일 의정서 핵심 내용

 

용산기지 시초

 

인천으로 상륙한 일본군 이름은 '임시 한국 주차대'로 이 군대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명령은 인천 상륙 후 빠르게 경성(서울)에 진입하여 그 땅을 점령하고 영구히 주둔할 태세를 갖춰라는 명령을 받고 영구 주둔지를 확보하기 위해 용산에 있는 300만평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 기지를 세운것이 현재 용산 기지의 출발점이 된다.

 

일본군이 조성한 용산기지

일본군이 러일 전쟁때 일본군 주둔지로 용산미군기지의 자리의 땅을 빼앗았고 그것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 식민지화의 시작이 된 것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 공사가 미완성인 상황에서 일본의 기습공격에 당황하며 너무 다급해진 나머지 얼어붙은 호수위에 철로를 깔아 이동하려다 실패하고 , 호수 위에 레일을 설치 후 화차를 말로 이동 하는 등 상당히 당황했다. 

 

당황한 러시아군의 다급한 행동들

 

인천으로 들어온 일본 육군은 북진으로 하며 본격적으로 러시아군과 전쟁을 치른다.  러시아군을 압록강 주변까지 퇴각시키고 압록강 인근의 구련성과 봉황성까지 함락시키며 일본은 드디어 주력군 러시아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두 나라 모두 군수 물자 조달을 위해 조선인을 동원했다. 

러시아, 일본의 군수물자를 나르는 조선인

 

 

 

러일 전쟁 2부 계속 보기 <벌거벗은 세계사 11회>

 

러일 전쟁 흐름 (피의 일요일-쓰시마해전-독도편입-포츠머스 강화조약)

 

러일 전쟁 흐름 (피의 일요일-쓰시마해전-독도편입-포츠머스 강화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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