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이슈 픽 50회 ]
현재 중국의 원칙은 '오직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중국과 수교를 맺게 되면 대만과는 수교를 맺지 못하게 된다. 중국은 대만을 하나의 정식 국가가 아닌 중국에 속해있는 나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대만 대사관이 아닌 '대만 대표부'로 호칭이 되어 있고 대만은 UN가입 불가, WHO (세계 보건기구) 가입 불가이다. 또한 올림픽에서도 자신의 국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1981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합의한 ‘차이니스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기’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대만은 왜 국제사회에서 아직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까?
중국과 대만은 어떻게 분리되었나?
중일전쟁 직후(1937년 7월 7일 – 1945년 9월 9일) 중국내 국공내전으로 국민당을 이끈 장제스와 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마오쩌둥이 있었다.
그 이후에 1927~1950년 중국재건을 둘러싸고 기나긴 내전이 벌어지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중국 대륙을 차지한다. 패배한 장제스 국민당은 대만 섬으로 후퇴한다.
1949년 10월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언을 한 후 대만을 수복하려던 찰나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한국전쟁 바로 전 1950년 1월 당시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선언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은 제외시키면서 5개월 후 한국전쟁 발발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에 미국은 중국이 대만도 공격할 가능성을 알아보고 한국전쟁에 즉각 미군을 파병하고 대만 해협에 미 제7함대를 배치해서 중국의 대만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대만은 한국 전쟁으로 뜻밖의 수혜국이 된 것이다.
대만 유엔 탈퇴 과정
UN에서 중국을 대표했던 장제스 국민당
대만은 자신의 나라 이름을 Republic of China 로 부르길 원했지만 중국은 대만 이름을 Chinese Taipei로 부르길 원한다. 대만이 중국에 패배하고 나서도 1971년까지 (미국이 주도권으로 갖기 위해) 대만이 안보리 상임이사로 있었다. (UN 창립 회원국)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던 중화민국(대만)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깨지게 된다. 이전까지 중국을 대표해온 장제스 국민당이었으나 1971년 10월 UN 총회에서 대만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에 찬성하게 된다.
중국 대표가 바뀐 이유
중국 대표의 국력 차이로 실리 외교를 택한 서방국가들로 인해 미국이 중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1971년 4월 탁구 경기를 매개로 교류의 물꼬를 튼 미국과 중국(핑퐁외교)은 중국의 대표를 바꿔 놓은 것이다.
대만 UN탈퇴
이때 대만의 반응은 이를 미리 예상했었고 UN에서 자진 탈퇴를 선언해 버린다. 이것은 대만 외교 역사상 최악의 실수로 중국에게 자리를 비켜준 셈이 된 것이다.
대만과 단교한 국제사회
이후에 대만과 일본(1972), 미국(1979), 한국(1992)은 단교를 하게 된다. 지금은 중국이 거부권을 갖고 있어서 대만은 UN에 가입할 수 없는 상태이다.
대만과 단교 직후 미국은 '대만 관계법'을 제정한다. 이는 미국-대만의 비공식적으로 준군사동맹 수준의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 코앞의 전략적 요충지이므로 상당히 중요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대만 자유시보 2021년 3월 대만인 74.9%는 ‘하나의 중국’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막강한 힘으로 대만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있는 중국이다.
대만 역대 총통들의 정책에 따른 중국과의 관계
역대 대만 총통들을 보면 처음에는 대륙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국민당(통일 중국 주장) , 민주진보당(대만 독립 주장) 사이에서 항상 총통이 바뀌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만과 중국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대만 '하와이 굴욕사건'
1994년 5월 중남미 순방 도중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린 리덩후이 전 총통을 클린터 정부는 대만 총통은 비행기에서 내리지 말고 연료만 채우고 떠나도록 한다. 공식적으로 대만 총통을 만나게 되면 국가대 국가의 외교로 비칠 것을 우려한 미국의 조치였던 것이다. 일명 ‘ 하와이 굴욕 사건’ 으로 미국 또한 중국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2000년대 민주진보당이 첫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대만 독립 강경파 천수이볜이 총통이 되고 대만 독립을 정당의 목표로 삼았다. 이에 양안 관계는 당연히 나빠졌다. 2008년 국민당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다시 정권 교체한 마잉주 때는 양안 관계가 회복되었다가 2016년 민주진보당이 정권을 탈환하며 대만 독립 강경파 차이잉원이 등장하면서 양안관계(대만-중국 관계)는 최악이 되었다.
현재 차이잉원의 외교정책
2016년 당선된 차이잉원 총통은 달랐다. 수십 년 동안 대만 독립 움직임이 번번이 중국에 막혔는데 미중 갈등구조를 이용해 대만 독립을 국제 이슈로 부상시켰다.
미중 갈등의 핵심은 경제이익이다. 대만 외교의 핵심 무기는 반도체(TSMC)이다. 대만의 생존과 독립을 위해서 미중 줄타기 외교가 필요한 입장이고 현재 대만은 경제 강국으로 미중 갈등 사이에서 경제적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대만과 비슷한 입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대만은 냉전의 잔재로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공유 국가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40배 이상의 성장으로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긴 상태이지만 대만은 중국의 압도적 국력에 밀려 지금은 미중 사이 갈등을 이용해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대만 문제는 과거의 우리나라와 같이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며 동아시아와 세계 질서를 흔드는 난제인 것이다. 미중 사이에 평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완충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냉전 미. 중 관계 역사 (중국 대만 전쟁 2027년 침공설)
신냉전 미.중 관계 역사 (중국 대만 전쟁 2027년 침공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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