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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녀들

나폴레옹 이야기 ( 레미제라블 뜻과 역사배경)

by 짱신나^^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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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들 5회 중 일부] 

 

 

오늘의 탐사지: 프랑스 

주제: 프랑스혁명 그후 

 

* 참고 자료 :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네이버 지식백과/위키피디..

 

 

 

 

프랑스 혁명 그 후 이야기 

좌파 우파의 탄생 배경 
루이 16세가 처형(1793년 1월 21일) 당하고 프랑스는 안밖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단두에서 처형당하는 루이 16세
단두에서 처형당하는 루이 16세

 

안으로는 당파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보수 성향의 왕당파는 왕과 국민 대표가 공존하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하고 있었고 진보 성향의 급진파는 대통령이 있는 민주공화정을 주장했다. 의회에서 왼쪽에는 급진파(공화정) 오른쪽에는 왕당파(보수)가 있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좌파 우파의 탄생이 된다. 

 

좌파 우파 기원
좌파 우파 기원

 

 

  밖으로는 외침

 

나폴레옹의 등장 

 

유럽의 대부분의 왕족들은 다른 유럽 왕족들과 친척관계인데 루이 16세의 처형이 되니 프랑스의 민주주의 혁명이 유럽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한 각 유럽의 왕실들이 연합을 해서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때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원한 강력한 군사 지도자가 나타난다. 바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다.

 

 

 

프랑스 '코르시카'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프랑스 육군에 포병으로 입대하고 군대에서 승승장구하여 장군이 된다.  그 후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공격하는 유럽 군대를 제압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유럽에 전파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유럽을 공격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회권
당시 프랑스는 5명의 프랑스 총재 정부가 국민 대표로 집권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나폴레옹을 질투해 이집트 공격을 명령하지만 지원을 해주지 않자 이집트로 가는 길에 다시 프랑스로 회군하여 쿠테타를 통해 1799년 3인에 의한 통령정부의 제 1 통령으로 자신이 대통령에 오른다. 그 이후에 1804년 그는 스스로 프랑스 제 1 제정의 황제를 선포한다. 

 

 

 

 

베토벤 '영웅' 교향곡 탄생 배경
유럽의 민중들은 힘든 삶을 바꿔줄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로 나폴레옹을 은근히 지지하고 있었고 유럽 국민들의 영웅인 그를 독일인 베토벤도 좋아했다. 베토벤은 프랑스 대혁명을 동경했고 그 혁명을 없애려는 주변국을 막아낸 나폴레옹을 존경하여 교향곡 3번 보나파르트를 작곡해 헌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황제에 등극한 나폴레옹에 실망한 베토벤은 제 3번 교향곡의 '보나파르트' 헌정을 취소하고 이름을 바꿔 '영웅' 교향곡이 된다. 

 

 

 

나폴레옹의 최후
당시 유럽 연합이 동맹을 맺고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워털루 전투(1815.6.18)에서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군은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 패배하게 되고 나폴레옹 황제에서 죄인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약 1,900km 떨어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나폴레옹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나폴레옹

 

 

나폴레옹 키에 대해...
 
나폴레옹 컴플렉스가 있다. 흔히 키 작은 사람들이 키에 대한 열등감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억누르려고 하는 성향이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나폴레옹은 155cm 로 작은 키와 못생긴 얼굴로 유명한데 사실 그는 그렇게 작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키는 168cm였고 당시 유럽 귀족들의 평균키는 173~6cm정도 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작은키였던 것이지 실제로 155cm는 아니였다. 

 

 
나폴레옹 키
그림에서도 그렇게 작아 보이거나 못생긴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로 알려진 그의 조카는 150cm의 작은 키로 그의 키가 회자 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적국의 사람들이 나폴레옹이 좋게 보일리 없어 퍼트린 소문일 수도 있다는 여러 가설들이 존재한다. 
 
 
 
나폴레옹 1세가 세운 
개선문
 
나폴레옹 개선문
나폴레옹 개선문

 

프랑스 파리의 또 하나의 랜드마크인 개선문은 1806년에 공사를 시작했으나 1836년 완공되었다. 

 

나폴레옹의 연전연승을 기념하기 위해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 후 세운 개선문인데 개선문 완공 전에 그는 실각(1814년) 을 당하고 유배를 가게 된다.
 

 

결국 유배지(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시신이 되어서 개선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죽음 이후 
나폴레옹의 죽음 이후 주변 유럽 국가들은 프랑스를 다시 압박하게 되고 프랑스의 왕정 복고가 다시 이루어지면서 루이16세의 동생들인 왕족들이 차례로 등극하게 된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이렇게 부르봉 왕가 (루이 16세의 일가)로 돌아왔기 때문에 완벽하게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민중들은 이미 자유의 맛을 보고 투표도 해봤기 때문에 참정권을 요구하며 그 이후로 계속 1815~1848년 사이에 끊임없이 민중 봉기가 일어난다. 

 

 

외젠 들라크루아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The 28th July:Liberty Leading the People]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 봉기도 1815~1848년 사이에 일어난 봉기 중 하나이다. 그렇게 공화정과 왕정이 혼란스럽게 반복이 되다가 결국 민주주의가 자리잡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1860년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대하 소설이다. 방대한 양의 소설이라 주로 뮤지컬이나 영화로 더 유명하다. 소설 속 레미제라블 이야기(1832년)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1789년~) 민중들은 여전히 살기 힘들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봉기하던 시기를 특히 1832년의 내용을 소설화 한 내용이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뜻 (의미)  
 
La misere ->가난에서 오는 고통 
Un meserable -> 가난에서 오는 고통을 겪는 사람
Les Miserables(복수형)-> 끔찍한 가난에서 오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 
 

 

 

 

 

▼나폴레옹 이전 이야기 

 

☞프랑스 혁명 원인과 전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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