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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reads (정치문화역사)

기생 이야기 : 기생 유래, 역사 (교방, 권번 )/ 기생 의미 변천사 ..

by 짱신나^^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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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언제 생겼나? 

 

 

 

고려사 절요에 따르면 기생은 백제 양수척에서 나왔다. 양수척은 백제가 멸망하면서 생긴 유민, 떠돌이 들이었다. 이들 중 버드나무 그릇을 만드는 이들을 기생으로 삼았다. 

 

 

그래서 초창기 기생은 여자 노비였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기생의 사회적 역할이 달라졌다. 

 

중요국가 연회등에서 참석자들의 흥을 노래와 춤 및 풍류로 돋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를 일컫게 되었다. 관청 소속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관기를 여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많은 궁중 공연을 위해 국가에서 관리하는 관기가 필요했다. 이 관기들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조선 시대에는 기생이라 불리며 활발하게 양성되었다. 

 

교방 

기생들에게 춤과 노래 등을 가르쳤던 교육기관을 교방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기생하면 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다. 또한 교방을 백화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진주교방
관아와 객사 사이에 위치했던 교방

 

조선 시대 각 지방 관아에는 30명 안팎의 관기들이 근무했는데 이들 관기들이 공식 연회에서 춤과 노래 악기를 다룰 수 있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 여류 문학과 예술의 발전 계승자가 기생이였기에 여성을 중심으로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 

 

 

관아와 객사 사이의 교방은 기생들의 세계이며 그녀들의 감옥이기도 했던 곳이다. 어엿한 궁중연회 악사였으나 고관대작이오면 접대도 해야 했다. 그러나 관기는 법적으로 몸을 파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관기는 공물이라는 남자들의 생각이 관행이던 조선이었다. 그래서 춘향전에 춘향이가 수청을 거부하다 곤욕을 치르는 이야기도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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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판관 최직지가 관기 명화에게 수청을 명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매를 때려 3일만에 죽게 했다. 엄연히 법적으로 금지였음에도 관기를 때려 죽인 판관의 처벌은 고작 파직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받은 처벌이 파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만큼 당시 조선은 관기들은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의기 논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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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실질적으로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1907년 관기제도가 폐지된다. 그리고 이듬해  1908sus 기생 및 창기 단속령이 발효된다. 

 

 

모든 기생은 조합을 설치하고 경시청 인가를 얻어야 영업을 할수 있었다. 몸을 파는 창기와 같은 그룹으로 규제를 한 것이다. 관기였던 기생이든 창기 든 모두 조합에 가입해야만 활동이 가능한 것은 기생이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워 진것이다. 

 

권번/권번터 

 

일제강점기 진주 교방을 대신해 진주 기생 조직이 진주권번이었다. 관기제 폐지로 교방이 해체되자 교방의 기생들을 중심으로 조직, 직업 기생을 교육하고 길어낸 곳이 기생조합이다 

진주 권번터 

권번은 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으로 당시 기생의 직업은 조선총독부 허가제로 모든 기생은 권번에 등록해야 활동할수 있었다. 

진주 권번 사진 

 

50~60명 정도의 기생들이 3년정도 공부를 했다. 3년 공부 후 '배반' 이라는 졸업시험에 합격해야 기예증을 발급받고 정식 기생활동이 가능했다. 

 

동편제의 대가인 소리선생으로 이선유, 유성준

 

평양 권번의 수업 시간표

 

기생문화 발전 

이들이 우리 문화를 지키던 노력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주검무가 있다. 진주지방에 전승되는 여성 검무, 검기무, 또는 칼춤이라고도 하는데 대궐 안 잔치 때 행하던 춤의 하나인데 이 또한 권번 기생들의 노력으로 지켜진 것이다. 

 

진주 검무 1967년 
진주포구락무

 

조선 시대까지 기생은 예인이 관기의 이미지가 컸다면 일제 강점기 관기제가 폐지되고 기생 및 창기 단속령 등으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가 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후대에 올수록 기생이 아닌 사람들이 기생이라고 스스로 창칭하면서 매춘하는 사람인데도 기생이라고 스스로 칭하며 기생 파티, 기생 관광등 후대에 왜곡된 기생에 대한 인식이 오역되어 왔던 것이다.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나 기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으나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문학과 예술의 전수자였다. 

 

명월관, 태화관 최초의 유흥 음식점 

 

명월관 

1909년 경성에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구한말 조정에서 궁중요리를 하던 안순환이 차린 최초의 유흥 음식점이다.  이곳에서 궁중에서 하던 공연도 선보이면서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다 1918년 5월 24일 명월관이 불타버리고 안순환은 명월관 간판을 친구에게 넘기고 자신은 태화관을 개점 영업한다. 

 

 

 

태화관 

태화관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 발표한 자리이다.      

 

 

 

 

기생 독립운동단.

삼일 운동때 기생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만세를 외쳤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진주 기생들은 경남도청에서 촉석루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벌였다.  이 태극기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지면서 전국의 기생조합이 총궐기를 벌인다. 

 

수원조합 기생들이 자혜의원에서 경찰서 앞까지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고 통영 기생들은 기생 33인 기생단을 조직하고 금비녀, 금반지를 팔아 광목을 사들여 만든 태극기, 소복 차림으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통영 기생 이소선과 정막래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수원기생 김향화 역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고 2009년 4월 대통령 표창과 함께 독립 유공자로 인정이 되었다.  그런데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수운 증서 수원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1차 세계대전 후 급격한 체제 변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1920년대는 참정권 요구 등 여성 지위가 향상된다. 기생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모한다. 

 

기생-> 연예인 변모

1933년 평양 권번 소속 기생 왕수복이 가수로 데뷔한다.  왕수복의 음반은 12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1935년 그녀는 조선 10대 가수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후 많은 기생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되었다. 기생 이난향, 아이돌 가수 셜리 닮은꼴로 더 유명해졌다. 

 

기생 신일선, 이난향 

 

일제강점기 기생엽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기생들을 궁중예술을 선보이는 종합예술인이 아닌 미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관광상품으로 소비시킨 것이다. 

 

 

 

길상사 자야/백석이야기 

서울 성북동에 있는 절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실천하던 곳이다. 길상사 여기저기 법정스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길상사는 절이 되기 전 법정 스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이 절을 내 준인물 김영한은 이전에 대원각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했었다. 사람들은 그 한식집을 기생,요정집이라고 불렀다.  김영한씨 또한 일제강점기 기생이다. 16세의 나이에 기적에 올랐던 김영한의 기생시절 이름은 진향이었다. 

 

길상화 보살 

 

 

그러나 그녀를 진향이 아닌 자야로 부른이가 시인 백석이다. 

 

 

길상사와 법정스님 /김영한과 백석 이야기

길상사 극락전 길상사의 본당으로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이 가운데 좌-지장보살/우-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공덕비 하나를 보게 된다. 공덕비에는 '시주 길상화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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