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 리뷰909 장제스 제 2차 국공합작 그리고 국공내전 (중화민국 탄생 역사) 120-2 쑨원 -위안스카이 그리고 제1차 국공합작 120-1 1925년 쑨원의 죽음이후 장제스가 국민당의 1인자이자 군의 총사령관이 된다. 장제스는 쑨원의 뜻을 이어 분열되었던 중국을 통일하는 북벌작전을 제개한다. 장제스는 북벌에 나서자마자 연전연승을 거두며 힘과 능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광저우에서 북벌을 시작 난징에 정부를 수립한다. 그리고 1927년 12월 중국의 명문가 쑹자스의 막내딸 쑹 메이링과 장제스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1928년 장제스는 베이징까지 점령하며 마침내 북벌을 완성한다. 그리고 국민당의 주석이자 중화민국의 통치자가 된다. 장제스의 공산당 토벌작전 (상하이 쿠데타) 장제스는 1927년 4월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국민당 좌파와 공산당을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토벌하는 작전을 벌였고 이때 수백.. 2023. 11. 15. 쑨원 -위안스카이 그리고 제1차 국공합작 120-1 쑹자수는 중국 하이난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으로 미국에 있는 먼 친척에게 입양이되었다. 미국식 교육을 받던 쑹자수는 1885년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돌아와 자리잡은 곳이 상하이였다. 쑹자수는 출판사, 무역등의 사업이 성공하면서 손꼽히는 부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부로 자신의 자녀들을 유학을 보냈다. 여자도 예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쑹자수의 딸들은 중국 여성 최초로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첫째 아이링은 1904년에 가장 먼저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1907년 둘째 칭링, 셋째 메이링이 함께 미국에서 유학을 하게 되었다. 둘째 칭링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세 자매가 유학을 하던 시절 중국은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쑨원 당시 청나라는 서태후가 다스리던.. 2023. 11. 15. 부산 해운대와 동백섬 최치원 이야기 동백섬 이야기 동백섬은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토사가 쌓여 해운대로 바로 이어졌다. 동백섬은 동백꽃이 많아서 동백섬이라고 이름지은 곳이다. 외국 방문객들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곳이 동백섬의 경치는 어디에도 없다. 최치원 유적지 동백섬 꼭대기는 최치원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곳이다. 최치원은 (857~?) 신라 시대의 유학자로 하늘이 내렸다는 글솜씨로 유명하다. 당나라에서 12세에 유학을 가서 과거시험에 급제한 유학파로 우리나라 유학파의 원조라고 할수 있는 인물이다. 6두품이란 신분 한계와 통일신라 말 혼란한 정세에 휘말려 뜻을 펴지 못하고 전국을 유람하다 생을 마쳤다. 최치원이 이곳의 자연에 매료되어 본인의 자를 딴 를 바위에 새겼다 하여 지금의 해운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실각하.. 2023. 10. 11. 로버트 무가베 : 짐바브웨를 어떻게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만들었나? 로버트 무가베 김일성을 롤모델로 삼다. 사상 최악의 독재자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는 한때 국가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영웅이었으나 이후 최악의 학살을 자행한 인물로 37년간 장기집권을 했고 그가 롤모델로 삼은 나라가 북한이다. 무가베는 총리가 된 이후 그의 정치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 김일성을 만나게 된다. 무가베는 공산권 국가 중 중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중국에 단독 군사지원을 요청할 경우 서방의 지원이 끊어질 위기였다. 당시 아프리카에 군사원조를 했던 나라가 북한이었고 북한은 무가베에게도 군사를 제공 제의하면서 김일성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1980년 10월 김일성과 무가베는 수교를 체결했고 북한과 짐바브웨는 우호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구쿠라훈디 학살 사건 이때 무가베는 북.. 2023. 10. 5.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2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