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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부산 해운대와 동백섬 최치원 이야기

by 365 ^^ 2023. 10. 11.

동백섬 이야기 

동백섬은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토사가 쌓여 해운대로 바로 이어졌다. 동백섬은 동백꽃이 많아서 동백섬이라고 이름지은 곳이다. 외국 방문객들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곳이 

 

동백섬의 경치는 어디에도 없다. 

 

최치원 유적지  

동백섬 꼭대기는 최치원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곳이다. 최치원은 (857~?) 신라 시대의 유학자로 하늘이 내렸다는 글솜씨로 유명하다. 당나라에서 12세에 유학을 가서 과거시험에 급제한 유학파로 우리나라 유학파의 원조라고 할수 있는 인물이다. 

 

6두품이란 신분 한계와 통일신라 말 혼란한 정세에 휘말려 뜻을 펴지 못하고 전국을 유람하다 생을 마쳤다. 최치원이 이곳의 자연에 매료되어  본인의 자를 딴 <해운대>를 바위에 새겼다 하여 지금의 해운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실각하고 떠돌아다녔는데 바다의 구름들을 보고 새겼다. 사람들이 최치원과 해운(바다의 구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해운대가 유명해진 이유 

해운대는 송도 해수욕장으로 유명해졌다. 국내 최초의 해수욕장은 부산 원도심 쪽 송도해수욕장이었는데 1913년 개장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해수욕장이었다. 그때까지 해운대는 그저 황무지였다. 해운대가 개발된 것은 1934년 동해 남부선 개통 이후 해운대가 개발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송도에 밀려 지지부진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이 주둔을 하면서 해운대를 포함 동백섬 주변이 민간인 통제구역이 된다.  그래서 미군만 이용했던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다가 1964년 해운대에  큰 거북이가 발견되었다. 무게가 약100kg 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보는 큰 거북이었다. 이 큰 거북은 영물로 용궁에서 왔다며 다시 돌려보내는 행사로 거북이 용궁 환송회를 하게 되었고 이일대 주민 3만명이 운집하며 거북이를 보냈고 세상이 잘 되려는 길조라고 기뻐들했다. 그것때문인지 알수 없으나 해운대는 그 후로 승승장구하며 송도를 누르고 최고의 해수욕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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