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한반도 6회 중]
오늘의 탐사지: 철원 화살머리고지
주제: 남북 유해발굴 작업
출연자: 설민석 ,문근영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의해 시범적 남북공동 유해발굴지로 선정되었다.
지뢰 제거 작업
2018년 10월 1일 유해발굴을 위한 기본 작업인 지뢰제거를 위해 공병,수색대,폭발물 처리반 유해발굴감식단이 투입되었다.
공동 유해 발굴을 위해 사전 여건 조성으로
3개월 간 진행된 지뢰제거 및 도로를 조성 후
지뢰의 양
전국에 매설된 지뢰의 양은 82만8천여 발 정도가 있고
민통선~군사분계선까지 77만여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국군이 제거한 지뢰는 6만 5천여발로 약 8%정도이다.
지뢰제거 방법
지뢰 방호복 전체를 착용하면 23kg 정도를 입고
지뢰 탐지기 까지 들게 되면 쌀포대보다 무거운 보호장구의 무게지만 지뢰 제거를 위해 절대 벗을수 없는 보호장비이다.
지뢰 탐지기는 지면에서 10CM 이하의 쇠붙이와 지뢰를 탐색할 수 있다.
지뢰 방호벽은 전체 착용시 23kg 정도된다. 이렇게 지뢰의심지역이 확인되면 80kg 방탄,방호벽을 설치 후 공압기를 이용해 강한 바람으로 낙엽과 흙을 거둬내고 주변을 정리 후
eod반 폭발물 처리반이 투입되어 제거한다.
하루에 8m도 정도도 나아가기 힘든 작업이다. DMZ 남쪽 지뢰지대는 여의도 면적의 40배의 크기로 현재의 방식대로 진행하면 200년이 넘게 걸리는 작업이다.
지뢰와 불발탄이 산재한 위험지역이고 어떠한 위험요소가 있는 지역인지 알수가 없으므로 원활한 유해발굴을 위해 세밀한 점검과 확인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고 철저히 지뢰제거를 했다.
첫번째 유해발굴박재권 이등 중사
2018년 10월 화살머리 고지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 작업이 시작되고
이곳 화살머리 고지의 유해발굴을 위해 두 달 동안 지뢰제거를 하는 그 순간에도 13개체의 유해가 발견이 되었고 그중에 1구의 신원확인이 되었다.
그 1구의 시신은 육군 2사단 소속 박재권 이등 중사(당시 22살)로 밝혀졌다. 적의 포탄에 의해 산화가 되서 뼈가 그대로 있지 않고 흩어지고....
1953년 7월 10일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날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동생 2명의 유전자 DNA 대조를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안장식은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었다.
6.25 전쟁 국군 전사자는 16만여 명에 추정한다. 전쟁 직후 현충원에 안장된 전사자만 약 3만이고 아직 찾지 못한 못한 유해는 13만여명, 북한에 약 3만여명, DMZ 에 약 1만, 한국에 약 9만여명으로 추정되며 한국에서 1만여구의 유해를 발굴한 상태이다. 북한과 DMZ 지역에 남북 공동 유해 발굴이 절실하다.
그 중에서 수습된 유해는 1만 여명정도 되고
12만 여명의 미수습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해 식별,신원확인
그 분들을 찾아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신원 확인이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사자와 유가족의 DNA를 비교하는 일이지만 매칭할 유가족 DNA가 3만 4천여개로 28%에 불과하다. 12만의 미수습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이다.
DNA 시료 채취는 면봉으로 구강 내 점막, 타액을 채취하면 끝이고 DNA 등록방법은 친가와 외가, 8촌 이내의 가족과 자손이면 누구나 가능하고 DNA 일치로 신원 확인이 되면 포상급 지급 법안도 예정되어 있다.
문의 전화: 1577-5625(오!6.25)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미국과 한국 전 세계 두 곳밖에 없는 기관으로 2007년도에 대한민국이 창설되었다.
10녀년의 노하우를 통해 전세계 각지에 시스템과 기술을 전파하고 있고 세계 각나라를 방문해 또 다른 노하우를 배우기위한 노력에도 힘쓰고 있다.
선녀들 한반도 6회 계속▼
☞광복 후 한국이 38선 남북으로 분단 된 이유 /6.25 전쟁은 왜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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