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알아보려면 소련의 역사를 살펴봐야한다.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의 줄임말이자만 정식 명칭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하나로 모여 이룬 연방이라는 의미이다.
미국의 United States와 소련(Soviet Union) Union의 차이
미국의 주는 지역별로 구분이 되어 있으나 소비에트 연방은 민족별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여러민족이 공화국을 결성해 소련에 편입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간략 역사
우크라이나 민족 구성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슬라브인이었고 슬라브인의 연원은 유목민족 스키타이에서 기원했다. 기원전 6세기~3세기 경 남부 러시아 초원지대에서 활약한 최초의 기마 유목민족으로 강력한 기마문화를 바탕으로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누볐던 스키타이족이다.
스키타이의 먼 후예 슬라브인이 882년 최초 국가를 형성했고 그 이름이 키이우(키예프) 루스(882~1240년) 현재 키이우(키예프)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국가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기원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말기로 그때에 비로소 국가단위로 만들어진 것이다.
11C 키이우 루스
11세기 무역을 통해 최전성기를 누리던 키이우 루스는 볼가강을 통한 중계무역을 통해 전성기를 맞고 12세기부터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로 옮겨지면서 무역의 쇠퇴와 내부 분열로 국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1240년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몽골 왕조 킵차크 한국은 비옥한 키예프(=키이우) 일대를 직접 지배하고 열악한 환경의 모스크바는 간접 지배를 했다. 그 과정 속에 모스크바도 성장을 하면서 점점 중심지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후에는 키이우와 모스크바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키예프-키이우로 표기 변화했다.
우크라이나 국기 의미
우크라이나 국기는 노란색, 푸른색인데 노란색은 황금빛 농토를 의미, 파란색은 푸른 하늘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세계 곡물시장의 약 10%를 차지하는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몽골제국의 주요 목표였고 독소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릴 정도로 비옥한 농토를 보유하고 우크라이나다.
14C 우크라이나
14세기 중반 이후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엽합의 지배를 받게 된다.
17~18C
17세기 중반부터는 드니프로(드네프로)강을 중심으로 좌 폴란드, 우 러시아가 지배를 하게 된다. 참고로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의 서쪽은 유럽 영향권, 동쪽은 러시아 영향권이다. 점점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러시아는 18세기 말에는 서쪽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이때는 러시아가 대제국으로 성장해 전 세계 지표면의 1/6를 차지하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 편입 및 독립
그후 1917년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었지만 독립이 되지는 못하고 1922년 소비에트 연방으로 편입된후 1991년 마침내 독립하게 된다.
당시의 러시아 상황은 봉건제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사회적 빈부의 격차가 심했고 19세기 말 유럽 곳곳에 민주주의가 퍼지면서 일반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분위기였으나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황제 독재 전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전제정을 무너뜨리자는 목소리를 황제는 극단적으로 탄압하면서 빈부격차+정치적 불만이 쌓여갔고 러시아 제국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레닌주의
이 당시 유럽의 마르크스 사회주의론이라는 이념이 러시아에 도입되면서 러시아 내 사회 불만과 결합 혁명을 촉발하게 된다. 이때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레닌이다. 공산주의를 마르크스 레닌주의라고 부르는데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이론을 만들고 20세기 레닌이 보완했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탄생
1917년 10월 공산당 볼셰비키를 지지한 시민들의 혁명이 성공한다. 마르크스 사상에 입각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혁명으로 그 중심에 평화, 땅, 빵을 외치며 시민들을 이끈 혁명가 레닌이 있었다. 세계최초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1917년 10월 혁명으로 러시아의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황제 , 귀족이 없어지고 따바리쉬=동무 로 통일된다.
레닌은 혁명하고 나서 2년만에 사망한다. 권력 말기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 죽어서 신비감이 남아있어 러시아 사람들에게 레닌은 아직도 존경의 대상이다. 현재도 레닌을 미라로 보존 중이다. 참고로 고고학적으로 러시아가 미라 연구로 유명한데 러시아 생물구조과학 연구소에서 레닌, 스탈린, 호찌민 등 공산정권 지도자들을 미라로 연구보존 처리했다.
소련의 탄생
1917년 10월 혁명 성공 5년 뒤 1922년 소련이 탄생한다. 제정 러시아가 해체 후 주변 민족들은 1918년 독립을 한다. 이때 혁명정부에 대항하는 반사회주의 반혁명세력이 등장하게 되고 1917~1921년 4년간 이들의 극심한 내전이 진행되었다.
사회주의 확산을 우려 자본주의 열강이 반혁명세력을 지원해 프랑스, 미국, 일본등의 군대가 러시아 땅이 들어오게 되고 엄청한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1921년 결국 혁명세력이 승리하게 되면서 흩어진 민족 국가들을 공화국 형태로 결집시켜 만들 국가가 소비에트 연방으로 1922년 12월 30일에 성립되었다.
푸틴이 레닌을 비판하는 이유
이 연방에 중심을 이룬 나라가 러시아이고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여러 공화국이 가입하게 된다. 소련에 1등으로 합류한 나라는 우크라이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러시아 제국 통치자들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한 적도 없고 우크라이나가 별개의 민족이란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 푸틴이 우크라이를 침공한 이유에 대해 푸틴은 레닌에 대한 불만을 말했다.
이런 우크라이나에게 처음으로 민족적, 국가적 독립성을 부여한 사람이 바로 레닌이었다. 그러므로써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독립적인 국가, 민족의 위상을 주장하는 건 레닌 때문이라는 것을 푸틴이 집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스탈린 등장
1924년 레닌 사망 후 소련의 새 지도자 스탈린은 소련을 이전보다 더 강력한 사회주의 소련으로 만들기를 원했고 무려 29년 소련 최장기 권력자이다. 그러나 현재 푸틴이 법을 바뀌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지면서 푸틴이 임기를 마친다면 집권 37년 최장기가 푸틴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게 고통을 준 스탈린
스탈린은 한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러시아 민족의 그 사람의 성으로 민족 계통을 짐작할수 있다.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의 소수민족 출신이여서 러시아식 이름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스탈린이다. 이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인물이다.
레닌 사망 후 1928년 내전으로 무너진 소련 경계를 되살리기 위해 경제 계획을 단행한다. 혁명 후에도 러시아는 아직 농업위주 사회였고 경제개발을 통한 근현대화를 위해 5년단위 계획을 수립하고 산업 발전에 집중 투자 경제 성장률을 올렸다.
소련 곳곳에 대규모 공업단지 콤비나트를 1500여개를 조성하고 전기 공급을 위한 초대형 수력 발전소를 건설해서 연 성장률 10%로 5년도 안돼서 목표달성을 하게 된다.
스탈린의 정책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저금리로 외국에서 차관을 도입해 공업 생산력을 높였으나 당시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고립된 국가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국내에 있는 재원을 끌어들여야 했고 국민들의 소비를 극단적으로 절감,저축 유도, 농업 생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가족 위주 소규모 농장을 국유화(집단농장) 시켰다.
또한 당시 굴라크Gulag(1930~1955)소련의 강제 수용소, 소수민족, 전쟁포로, 정치범 등을 강제노동에 동원시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제성장은 목숨과 바꾼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스탈린을 통해 본 소련 역사 ~ 피의 대숙청 [벌거벗은 세계사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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