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이야기 (의빈 성씨/ 금등지사/ 삼해주 정조의 주사는?)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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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정조 이야기 (의빈 성씨/ 금등지사/ 삼해주 정조의 주사는?) -역사저널 그날

by 365 ^^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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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누구?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임금이 정조이다. 미치광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14년만에 정조는 왕좌에 오른다. 정조는 24년의 재위를 했고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 2~3시간만 잠을 잤다고 할만큼 일을 많이 했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임금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성군이되어야만 했고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위에 오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죽은 효장세자(큰 아버지)의 아들로 입적한다. 이 때문에 정조는 다시한번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게 된다. 

 

정조 어진


왕이 되어서도 정조를  수차례 살해 위협을 느꼈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에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 정조 암살 미수 사건은 궁녀 호위무관까지 가담한 조직적 시도였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정조가 가장 사랑한 여인 의빈 성씨

암살 위험이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지키기 위해 무예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와중에 정조를 숨을 쉬게 해는 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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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등지사란? 

금등은 국가의 비밀문서를 넣어 쇠줄로 봉한 상자로 금등지사는 금등에 들어있는 글을 말한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견뎌가던 정조는 화성천도를 놓고 신하들과 대립하게 된다. 금등지사는 당시 도승지 채제공에게 맡겨 정성왕후 신주 밑에 숨긴 금등지사였고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금등지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실제 금등지사는 어떤 내용? 
영조가 사도세자의 일을 후회한다는 뜻을 담은 시를 말한다. 영조가 정성왕후의 상을 치르는 상주 사도세자를 묘사한 글이 있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피 묻은 적삼, 오동나무 지팡이= 정성왕후의 삼년상을 지킨 사도세자를 상징
금장와 천추는 모함에 빠진 태자의 억울함을 밝힌 당나라와 한나라 충신
귀래망사대는  한무제가 모함으로 죽은 태자를 그리워하며 태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을 담아 지은 건물이다.  -> 귀래망사대를 그리워한다의 뜻은 죽은 사도세자를 영조가 그리워한다는 뜻

 

그러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채제공의 상소가 올라와 다시 한번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그때 정조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용서했다는 내용이 담긴 금등지사를 공개한다. 1793년으로 정조는 17년간 기다린 후 이를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이를 신하를 제거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복권시키고 명예를 회복하고 화성천도를 단행한다. 

 

화성천도
그리고 정조의 물류이동의 교통로이자 군사이동의 요충지 화성(수원) 천도를 단행한다. 도시 조성에 필수였던 농업을 위해 저수지를 많들기 위해 힘을 썼고 수원에 농사를 많이 짓기 위해 소를 많이 풀어놨던 수원은 아직도 소갈비가 유명하다.

 

수원화성

 

정조가 능행을 많이 했던 이유 
정조의 재위기간 24년 중 왕릉 능행의 총 66회로 본다. 목적은 백성의 소리를 듣기 위한 행차였다. 글을 모르는 백성이 꽹과리를 쳐서 임금에게 직접 민원을 고하는 격쟁이 약 1300건 글로써 임금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상언이 약 3000건의 기록이 남아있다. 왕의 행차가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조의 능행에 백성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애주가 정조가 사랑한 술 삼해주

정조는 조선의 역대 왕들 중에 최고의 애주가이기도 했다. 53년간이어졌던 영조의 금주령을 해제한 사람이 바로 정조였다. 문인들과 정조가 즐겨 마셨던 술 삼해주(석삼, 돼지 해)는 발효는 세번 하는 술로 돼지날(음력 정월)에 세번 덧술(발효)하여 만드는 술의 의미이다. 총 108일 걸쳐 만들어지는 술이다. 

 

삼해주 주조과정

 조선왕조 실록에도 언급된 삼해주이고 10월쯤 익은 것으로 증류를 한것으로 보여 삼해소주를 의미한다.   

 

소주를 만드는 소주고리(국립고궁박물관에 있음)
은솥에 끓이면

 

정조의 주사

정조 18년 신하가 가뭄이 들어 금주령을 건의 했으나 삼해주가 이미 다 익었는데 이미 빚어놓은 술을 버릴수 없다 하였고 신하들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는 것을 즐겨했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사발에 술을 따라 사발주를 내리고 총애하는 정약용에게 정약용의 필통에 소주를 가득부어 한번에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정약용의 옥 필통 재현


창덕궁 부용지에서 신하들에게 시 짓기를 시켜  맘에 안들면 그 신하를 가운데 섬에 세워놓고 조롱을 하는 술 장난을 했다고 한다. 

 


불취무귀-> 취하기 전까지는 집에 못들어 간다.  취해서 하는 실수는 이해하고 넘어갔던 정조였다. 기록화도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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