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6회 중 ]
오늘의 탐사지: 여의도 공원 , 여의도 벙커
여의도 공원의 역사
일제 강점기-비행장
여의도 공원 시작은 일제강점기부터다. 1916년 중국 침략의 교두보로 사용하기 위해 제2경성 비행장을 만들었다.
광복 후
1945년 귀국 비행장이 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때
5.16 광장으로 5.16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다. 국군의 날 행사, 반공대회 등이 개최되었던 곳이다.
전두환 정권 때
광장 전체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관제 예술 행사인 국풍 81이 있었고
김영삼 정권때
여의도 공원으로 변경된다.
여의도 비밀 벙커
여의도 환승센터 버스 정류장 아래에 벙커가 있다.
약 200평 정도의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는 벙커 안.
지하벙커는 어떻게 발견되었나?
이 벙커는 2005년 5월 여의도 환승센터 건립 도중에 발견이 된 벙커이다.
여의도 한복판에 벙커가 있는 이유?
군 비밀시설이 아니냐는 추측은 있었지만 아니었다. 발견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국토교통부에 관련 자료를 문의했으나 벙커와 관련된 기록은 없었다.
그렇게 벙커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여러 정황상
1970년대 5.16 광장(현 여의도 공원)에서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릴 때 당시의 사열대와 벙커의 위치가 일치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사시 요인 대피용 방공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SeMA 벙커 위치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사용 중인 SeMA 벙커 위치는 여의도 환승센터 옆에 도로에 위치해 있다.
일반인은 안전상의 이유로 방송에 나온 버스 정류장 밑을 통해 내려오지는 못하지만 위의 도로쪽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면 관람이 가능하다.
운영시간: 10am-6pm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관람료: 무료
벙커를 만든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 최측근인 차지철이 벙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암살당할 뻔하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발생한 7일 뒤에 2대 대통령 경호실 박종규가 책임을 지고 해임되고 3대 경호실장 차지철을 경호실장으로 임명하고 차지철 주도하에 경호는 더욱 삼엄해졌다. 그때 벙커 공사를 주도했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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