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회 ]
아일랜드 독립 역사
아일랜드 유럽의 마지막 식민지
1914년 유럽을 초토화 시킨 제1 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동시에 유럽은 폐허로 변했고 4년간의 전쟁으로 사망자 약 2천만명이 발생했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때 투쟁에 나선 한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무려 750년간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아일랜드였다. 오랫동안 독립의 불씨를 키워 온 아일랜드는 1차 세계대전에 여파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리고 1922년 마침내 자유국을 선포하는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는 1970년대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1171년 영국 헨리 2세의 침략으로부터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은 올드 잉글리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아일랜드로 건너가 아일랜드 사람들처럼 현지화되어 버린다. 그 이후 영국의 튜터 왕조 시기에 아일랜드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이주를 했는데 이들은 종교가 달랐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교였고, 영국인들은 개신교였다. 또한 잉글랜드 민족은 앵글로색슨족, 아일랜드 민족은 켈트족으로 민족구성도 달랐다. 당시 주변국 아일랜드와 프랑스, 스페인이 가톨릭교로서 손을 잡을 영국을 압박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영국이었다.
영국 크롬웰의 아일랜드 민간인 대학살
아일랜드 역사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영국의 크롬웰이다.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청교도 혁명의 중심에 섰던 개혁가로 영국인에게 너무나 위대한 인물이고 영국 웨스트민스터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도 세워져 있는 동상이 크롬웰이다. 시민의 자유, 의회의 권리의 상징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아일랜드인에게는 최악의 인물로 꼽힌다.
크롬웰은 1649년 찰스 1세를 죽이고 공화국을 만들고 호국경이라는 새로운 잉글랜드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크롬웰의 1차 목표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정리였다. 1641년 아일랜드가 반란을 일으켰을때 이 반란으로 인해 잉글랜드인들이 대거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져 군대를 보내 아일랜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크롬웰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일랜드 민간인을 대학살한다. 무차별 학살로도 모자라 땅까지 몰수해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지경을 만들었던 것이다.
크롬웰 정권 당시 아일랜드인이 50만 명이 사망했다.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크롬웰 정권시기이다. 당시 크로웰은 아일랜드인을 미워하고 경멸하기까지 했는데 크롬웰의 시선에서 당시 부족 국가 형태로 족장들이 다스리고 있는 아일랜드인은 미개하고 문명화를 시키려면 개신교도들을 새로운 지배층으로 교체를 해야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 대부분 아일랜드계 출신 이유
아일랜드 대기근 감자역병
당시 영국인들이 아일랜드를 침략해 감자를 제외한 모든 작물을 가져갔다. 감자는 감자 자체를 심어야 싹이나는 작물이라 낫설어 가져가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 기르기 쉽고 수확량도 많은 감자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주식이 된다.
그러나 1843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감자 역병 전염병으로 아일랜드에 또 다른 위기가 닥친다. 흰곰팡이 전염으로 감자 잎부터 씨감자까지 죽게 만드는 병해였고 감자가 주식이었던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5년간 이어진 감자역병으로 전체 인구 800만 명 중 약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명이 이민을 갔다.
대기근이 있던 상황에도 영국인들은 곡물의 수출을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다른 나라의 지원을 대신 거절하기도 했다. 영국 여왕이 2천파운드를 기부했기 때문에 오스만투르크가 약 1만 파운드를 기부하려고 하자 영국정부는 영국여왕보다 작은 금액의 1파운드만 기부하라고 했던 것이다. 역사상 대기근의 문제는 정치적 이념 문제가 연루된 결과이다.
아일랜드인의 이주
이런 대기근으로 살수가 없던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전세계로 이민들 갔으나 그 중에서도 미국 뉴욕과 보스턴 지역으로 이주를 많이 했었다. 1850년대 뉴욕 인구의 26%가 아일랜드 인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인구보다 뉴욕 거주 아일랜드인이 더 많을 정도로 그만큼 이주를 많이 갔다.
아일랜드 이주역사를 담은 영화 타이타닉...
성공한 아일랜드인은 누구?
그러나 이미들어온 이미자들에 의한 텃새로 좋은 일자리나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조센징이라고 불린것 처럼 더러운 아일랜드인이라는 의미의 Dirty Micks -> 더러운 아일랜드인라고 불렀었다. 아일랜드 인들은 사람들이 꺼리는 위험한 소방관, 경찰, 군인등에 많이 진출했고 조금씩 성공을 해서 아이들 교육에 힘을 쏟아 주류사회로 진출하게 된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20명 이상이 아일랜드계이다. 대표적인 아일랜드 가문이 존F 케네디 가문이다. 보스턴으로 이민 후 금주령 시기에 밀주 사업을 시작 (미국 금주법 시대 알코올 중독이나 술로 인한 범죄를 줄이기 위해 1920~1933년 동안 금주법을 시행) 아들을 외교관으로 손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가문이다.
패스트푸드 대표브랜드 맥도널드의 창시자 맥도널드 형제도 아일랜드인이다. 맥도널드의 해쉬포테이토가 유명한다. 또한 월트 디즈니, 비틀즈의 존레논도 아일랜드 출신이다. 조바이든 역시 아일랜드계이고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다.
아일랜드 축제
아일랜드는 해마다 매년 3월 17일이면 조국을 떠난 아일랜드인이 한마음으로 모이는 날 아일랜드 수호 성인 세인트페트릭스 데이는 페트릭 성인이 세상을 떠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패트릭 성인은 가톨릭을 아일랜드에 소개해준 선교사이다. 이 아일랜드인들의 축제를 미국에서도 개최한다. 하지만 2022년에는 개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3월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조바이든은 미국인구의 12%를 차지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신경 써야했기때문에 이 와중에도 축제를 개최했다.
아일랜드에서 일어나는 독립운동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지원을 많이 했고 아일랜드 독립운동 지부들이 미국에서도 만들어졌다. 1922년 자유국 선포까지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는 중요한 세력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