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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전두환은 왜 백담사로 갔나? (역사 속 불교 역할과 탄압)

by 365 ^^ 2022. 5. 23.

 

역사 속 불교역할

호국불교 
불교계의 사상은 호국불교로 불교 신앙으로 난리와 외세를 진압하고 나라와 백성을 지킨다는 불교 사상이었다. 
-고려 시대 몽골 군대를 막기 위해 만든 팔만대장경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승병
-일제강점기 민족대표 33인의 불교 대표가 한용운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 불교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진관사

 

진관사 태극기 이야기

 

 

 

 

정권별 불교 탄압

이승만 정권 (대처승 문제)

역사적으로 항상 나라가 어려울때 불교는 호국을 위해 앞장섰던 종교계였으나 광복이후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불교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종교는 기독교였기 때문에 이해, 호감이 부족한 이승만은 불교계의 문제점을 제기했던 것이 바로 대처승(결혼해 가정을 꾸린 승려)문제였다. 1950년대 당시에는 불교계에 대처승이 꽤 많았다. 이 문제는 종교 교단 내에서 알아서 할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지적한것으로 불교 신자 대통령이 개신교단에 목사의 결혼을 지적한 격이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종교 문제 제기는 위헌 소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당시 불교계 내부적으로 비구(출가한 남자승려)vs 대처 논쟁이 진행되던 상황이었는데 불교계 내부 논쟁에 정치권력이 개입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이승만 정권을 지나 박정희 정권 시절 불교 내 선풍=참선(세속에서 벗어나 선을 추구하고 각자의 수행에 집중) 바람이 분다. 세속에서 벗어나다 보니 현실과의 괴리감이 생겼는데 1970년대 후반 유신 체제때 불교계는 억압받는 민중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신군부(전두환)가 이미 낌새를 느꼈고 승려들이 주도해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불미스러운 작태로 변모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기존의 민주화 세력과 합세해 불교계가 확고한 사회저항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 

그리고 1980년 당시 참선하는 절에 깡패들이 서식한다며 종단의 분규를 비난하며 정화를 요구한 전두환이었다. 10.27 법난에 연루된 승려와 관계자는 무혐의 무죄로 풀려났으나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신군부의 압력은 계속되었다. 결국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내려놓게 된 월주 스님과 조계종 중앙종회도 해산되었다. 불교계 자체 징계라는 명목으로 승려 13명 체탈도첩( 출가 승려로서 큰 죄를 지은 자에게 자격을 박탈하고 절에서 내쫓는 제도) 이 이루어졌고 흥국사에서 두 달간 강제 연금 상태로 강요된 참선과 반성 등 24명이 일명 순화교육을 했다.

 

 

백담사로 향한 전두환
이는 법난 사건의 전후 과정을 알고 있었던 전두환인데 8년 뒤 1988년 12월 31일 5공 비리 청문회장에서 전두환은 법난 수사에 대해 바뻐서 몰랐다고 진술한다. 사과없는 전두환의 태도에 피해자를 분노하게 만드는 태도였다. 그리고 같은 해 1988년 11월 23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대국민 사죄와 함께 모든 재산을 헌납하기로하고 전두환은 백담사로 향한다. 불교 법난의 주역이 사찰로 향한 것이다.

 

 

 

전두환은 왜 백담사로 갔나?

전두환의 종교가 불교였나? 전두환의 종교는 애매한 상황으로 전두환은 세례명 베드로가 있다. 천주교 신자였으나 후에 불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두환의 둘째 아들 전재용은 개신교 목사이다. 장례식도 기독교+불교식으로 치러졌다. 원래는 퇴임후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고향 합천으로 내려갈 수 없었고 은둔 장소를 찾다가 결국 선택한 곳이 강원도 백담사였다.

 

 

백담사는 워낙 오지여서 이전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사찰로 전두환 부부가 2년간 머물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백담사를 방문하게 되고 대부분은 전두환의 지지자들이었다.

 

 

기독교 신자들도 많아서 절에서 기독교 집회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 수도했던 민족의 성지인 백담사에 전두환이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시위도 있었다. 

 

 

전두환의 10.27 불교 법난 = 불교 정화 사건

 

10.27 불교 법난 = 불교 정화 사건

[359 회 ] 10.27 불교 법난과 전두환 1980년 10월 27일 전국 곳곳의 사찰에 있던 승려 153명과 관계자들이 강제 연행된다. 사흘 뒤인 10월 30일에는 규모가 더욱 늘어나 군경합동 병력 삼만이천여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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