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선언으로 미얀마의 거리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다.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거침없이 실탄을 발포하는 군부대는 흡사 우리의 4.19 민주화 운동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너무도 많이 닮은 듯한다. 2021년 2월 19일 미얀마 시위대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시위 현장에서 2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야 테 카인의 죽음으로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은 전국적 규모로 확대됐다.
※ 군부가 미얀마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
21세기를 역행하는 쿠테타가 일어난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미얀마의 쿠데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53년간 군부 독재체제를 유지해오다가 2015년에 이르러서 첫 민주 총선이 실시되었다.
민주주의 측 민족 동맹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의석수가 390석으로 59.4%를 차지하고 군부의 의석수가 166석 25.2%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는 독특하게 전체 주 의회 의석의 25%를 현혁 군부에 할당하고 있다. 국방뿐만 아니라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이다.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승리하면서 아웅산 수 치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그리고 다시 작년에 2020년 미얀마 총선이 있었고 그 결과 2015년도 군부와 가깝게 있던 통합 단결 발전당의 의석수가 2020년 총선 결과 9석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의석후의 감소로 선거 이후 군부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군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다. 전체 3800만 건 중 1050만 건이 부정 표라는 군부의 주장으로 결국 총선 결과에 불복하며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부정선거를 빌미로 감행된 쿠데타는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미얀마의 쿠데타 역사는 1962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다. 2015년 이후 미얀마의 민주화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있던 군부였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강조되었던 민주진영의 정치력이었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군부와 NLD의 여러 차례 비밀 회담이 있었으나 LND 민주 진영의 협상 거부 이후 결국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였다.
군부의 쿠데타 목적
▷군부의 기득권 유지
미얀마 군대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반적인 군대와는 달리 거대한 이익집단이기도 하다. 호텔, 대형마트, 병원 등 수익성 큰 분야의 기업은 군부가 직접 운영을 하고 있다.
군부는 가족에게 사업을 맡겨 오랜 세월 부를 축적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얀마는 1850년대부터 원유를 생산했던 국가였고 또한 최고의 루비, 옥의 보석 자원까지 보유, 미얀마를 황금의 나라로 부를 만큼 금도 풍부하다. 이렇게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일찍이 산업화의 저력을 갖고 있던 나라였지만 천연자원, 보석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모두 군부가 독점하고 있다.
통신사, 은행, 방송사 또한 운영하고 있는 군부로 이번 쿠데타 선포도 군부가 운영하는 군영방송을 통해 이루어졌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라는 국가 속에 또 다른 국가로 불릴 정도이다.
▷군사령관 개인의 탐욕과 출구전략
미얀마의 군사령관은 60세가 되면 은퇴를 해야 된다. 그래서 이 사람은 2016년에 은퇴를 했어야 하는데 군부와 NLD의 합의하에 그의 임기는 5년이 연장된다. 그리고 약속된 은퇴 시기가 2021년도이다.
민 아웅 흘라잉 자녀들은 다방면으로 많은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데 군부 소유 기업 미얀마 경제지주회화(MEHL)과 미얀마경제공사(MEC)를 놓고 싶지 않은 탐욕 때문이다. 퇴역 시 가족 사업에 타격이 올 것을 염려해 안정적인 출구전략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길 원했으나 이번 총선의 결과가 좋지 못한 상황으로 나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거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어 군부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국민은 결국 총, 칼 앞에 무력할 것이라고 군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위가 계속되고 시민들이 희생되는 순간에도 군부 가족들은 호화 파티를 즐겨고 있다.
※ 미얀마 시위 참상
미얀마 군부는 현재 물러날 곳이 없는 군부이다. 누적 시민 사망자 714명으로 비명과 눈물로 가득한 미얀마의 상황이다. (2021. 4.13 기준) 결국 군부와 대항을 위해 시민들이 무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내전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얀마 군부에서는 미국 CNN기자단을 초청해 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지역을 보여 주며 당시 cnn 기자와 인터뷰한 시민들을 군부는 납치해 갔다고 한다.
미얀마 시위는 어린이 사망자만 48명에 달하고 있다.
미얀마 현지의 통신 상황은?
통신마저 불안정한 상태이다. 미얀마 군부가 통신 연결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 전달이 힘든 상태이다. 군과 경찰은 미얀마의 독립 언론사들을 찾아가 사무실을 다 폐쇄시키고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구금시켰다. 그 수조차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쿠데타 발생 116일
사망자 800여 명 기록
미얀마 사태의 전망
군부의 기득권을 보장한 채 쿠데타 이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 장기적으로는 군부가 1년 동안 선거 부정을 조사하고 사회가 안정화되면 1년 후 재선거를 통해 권력을 이양한다. 고 발표했으나 이 또한 가능성이 없다. 민주진영의 인사들이 출마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2010년 총선 당시 대부분의 민주진영 의원들을 구금 후 총선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단기나 장기가 암담한 미얀마의 현실이다. 지금의 미얀마 MZ 세대는 군부 독재 경험이 없고 자유 민주주의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들은 결코 돌아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CRPH 임시정부 출범 선언
안타까운 것은 쿠데타 선포와 동시에 아웅 산 수 치를 포함 NLD 국회의원 약 400명이 구금된 상황이라 현재 미얀마 시위대는 SNS를 통해 규합할 뿐 구심점이 없는 상태이다. 현재 군부와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CRPH(연방정부 대표위원회)로 긴급 체포를 피해 간 NLD 국회의원 17명이 설립한 단체이고 4월 1일 임시 정부 출범을 선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단체의 대부분이 소수민족 출신이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이다.
미얀마는 다민족이기는 하나 버마족을 중심으로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NLD는 CRPH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 CRPH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합해서 연방 군부와 맞서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소수민족 무장 단체는 군인이 약 3만 명 정도로 미얀마 군부 약 40만 명에 비해 군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소수민족의 무장투쟁 목적은 그들만의 땅, 경제권 이익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만약에 성공을 한다고 해도 지분을 요구할 수 있고 이는 곧 제2의 미얀마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돌고 도는 내분의 가능성이 있다.
구금되어 있는 NLD의 중역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러나 NLD의 평당원들 기성세대의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할 때이다.
미얀마 시위와 주변국 관계
미얀마와 중국
쿠데타 발생 15일 전 중국 외교부장 왕이 는 미얀마를 방문했다. 그래서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중국에서 사주했다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 반중 정서가 고조되며 미얀마 시민들은 심지어 중국 공장을 불태우기까지 한다.
경제적 협력으로 얽혀있는 미얀마 군부와 중국이지만 아웅산 수치의 NLD정부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 무리하게 한쪽을 택해 손잡을 이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중국의 신 성장 정책으로 일대일로 전략이 있는데 현대판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것으로 그 해상 실크로드의 시작점이 미얀마가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웅산 수치와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배후설은 있으나 설득력이 약한 주장이다.
미얀마와 미국
미국은 기본적으로 동맹국과 힘을 합쳐서 자주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외교전략이므로 미얀마 사태를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나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이다. 왜 나면 미얀마와 중국은 너무 가까운 상태가 돼버렸기 때문이고 지리적으로도 미얀마는 너무 떨어져 있어 미얀마와의 경제적 교류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미얀마에 대한 군부를 압박할 수단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군대의 개입은 바이든 정권은 선호하지 않으며 중국이 또한 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와 러시아
현재 미얀마 군부 무기의 16%가 러시아산으로 중국에 이어 2위의 무기 수출국이 러시아이다. 또한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국군의 날에 러시아만 차관급 인사를 파견했다.
UN 입장
UN의 R2P 미얀마가 요청하는 보호책임원칙 : 특정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일시적으로 개입할수 있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UN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안전보장 이사회(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은 만장일치제인데 중국과 러시아는 안건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미얀마 국내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미얀마 상황
미얀마 군부 권력의 장악을 할수 있는 이유는 2008년 군부 헌법 개정으로 선거와 상관없이 주 의회 의석수가 25% 군부 할당되어 있다. 이렇게 헌법으로 권력을 장악 유지하고 있다. 헌번 개정을 위해서는 의회의 75%가 동의해야 가능한데 현재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에 새 연방헌법을 연구하던 헌법학자 코니는 군부 권한을 축소하는 헌법 개정안을 연구 중 공항에서 암살당했다.
현재 좋은 소식은 '국민통합정부'인 일종의 임시정부를 구성(NUG:National Unity Governmnet)했다. 처음으로 소수민족과 미얀마 민주진영이 손을 잡은 것이다. 다음 목표는 연방군 창설이 다음 목표이다. 이들이 통합을 하면 연방헌법과 연방부대를 갖추게 되고 정부로서 군부와 맞서 싸울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 NUG를 인정해달라고 요청 중이다.
[출처 : 이슈 픽 쌤 37회, 차이나는클라스208]
▼ 아웅산 수 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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