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 미사일, 백곰 미사일 / 미사일 지침 협정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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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현무 미사일, 백곰 미사일 / 미사일 지침 협정 역사

by 365 ^^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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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일본을 제외한 대만, 중국, 러시아,북한 등 미사일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이다.  1979년 한국과 미국이 탄도미사일 개발 규제 지침을 체결하여 사거리 몇 km이상 금지, 탄두 중량 제한, 등 42년간 미사일 성능을 미국에 의해 제한된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에 2021년 5월22일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를 발표하며 우리나라는 미사일 주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백곰’ 대한민국 최초의 미사일 이름


백곰 미사일 개발 역사

 

박정희 대통령 시기 한국은 미사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미사일 개발은 맨탕에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본 사람이 국내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KIST 출신의 국방과학 연구소장 심문택 박사가 미사일 전문가 MIT 출신의 이경서 박사를 데려와서 미사일 개발 계획을 짜는 팀을 만들었다. 이경수 박사를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로 팀이 꾸려져 개발 계획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각종 잡지를 통해 미사일 모양부터 공부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다. 1973년~1975년까지 미사일 개발 계획 및 준비하는 단계였고 1976년부터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당시는 여의도에 아파트를 막 지를 때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제 1호 백곰 미사일이다. 

외형은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 외형을 따온 것이나 백곰 미사일 내부는 국내에서 고안되었고 미사일 핵심 기술 180KM를 정확히 날아가게 하는 유도 조종 기술이 핵심인데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했다.

 



그 이후 미국 무기 제조회사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미사일 생산중단이 예정되어 있어서 한국의 미사일 설계를 2천만 달러=약 238억 원에 기술이전을 요구했다. 그래서 1단계 계약에서 180만불로 미사일 설계 기술 전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료를 도면으로 주지 않고 오로지 면대면 구전, 말로만 얘기하는 것을 필기만 허용해 받아적었던 것이다. 

백곰 미사일의 이름 유래 
백곰 이름은 1974년 1월부터 충남 태안 안흥에서 실험했는데 당시 안흥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는데 눈 맞으며 걸어가던 연구원의 모습이 백곰같아서 백곰이라고 지었다.  

1971년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한 대통령이 최초의 미사일 개발을 지시하고 1978년 9월에 충남 안흥시험장에 백곰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백곰 미사일 탄생비화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외형을 모방한 백곰미사일이다. 80km란 뜻은 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고려해 만든 미사일이다.

 

 

미사일 빙하기 (한.미 미사일 지침(협정))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며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전두환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형 미사일 개발 소식에 놀란 나라는 미국이었다. 이에 미국의 국방장관 존 워컴(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항의 서안을 우리나라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보내고 노재현 장관의 각서에 사거리 180km, 탄두 500kg 이상의 미사일 개발은 하지 않겠다고 국방 장관의 각서를 미국에 보내지면서 이것이 한.미 미사일 지침(협정)이 된 것이다. 편지 한통으로 42년간 잃어버린 대한민국 미사일 주권이다.

 

각서의 내용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개발을 차단한 이유는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미사일 개발 금지 ,민간 Rocket 개발 금지 , 군병력 장비 전략 자산 통제, 작전권도 미국에 있는 상태이다.

 

5공 신군부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만 급급해 국산 미사일 자료 패기 국방 과학 연구소 조직개편(연구원 1700여명 강제 퇴직), 미사일 관련자 전원 해고 등으로 우리나라의 미사일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빙하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현무 미사일 탄생

백곰 2 개발 완성

1983년 8월 KAL 007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소련 전투기가 민간 여객기를 공격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두달 뒤인 1983년 10월 미얀마 순방 중인 전두환 대통령을 노린 암살 기도 사건 아웅산테러 사건이 북한에 의해 발생하면서 대통령 수행원과 보도진 등 17명 사망, 10여 명 중경상을 당하고 도심 곳곳에서 북한 규탄 시위가 벌어졌던 시기로 이를 계기로 백곰-2 미사일을 개발할 것을 구상회 박사에게 지시한다.

 

현무 미사일 개발(백곰 미사일 개량형)

그리고 1984년 9월 미사일 1차 시험이 완료되고 85년 5월 2차 시험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미사일인 현무 미사일이 탄생한다.

 


1983년 여객기 격추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위성항법시스템 GPS를 민간에 공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등 오늘날의 GPS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백곰 미시일과 현무 미사일의 차이점 
백곰 미사일은 실전에 배치가 안됐지만 현무-1은 실전에 배치된다. 백곰은 엔진이 점화속도가 늦는 등 하나만 이상해도 추력이 불안정하면 미사일이 삐뚤게 흔들리는데 현무는 단일 추진기관을 사용해 안정성을 더했다. 이 현무 미사일을 1987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최초로 공개하면서 북한을 견제하고 추가도발을 경고했다.

 

현무 미사일 실전 배치됨
현무는 엔진을 하나로 합쳐 안정성을 높임

 

미사일 지침 협정 역사 

1998년 북한이 대포동에서 정체불명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3000 KM 를 날아가니 대한민국에서 미리 선제타격을 해서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할수 있다는 명분으로 미사일 지침 개정을 김대중 대통령이 시도.

 

1차 미사일 지침 개정 (2001년)

클린턴이 사거리 300KM~탄두 중량 500KG 로 조금 늘어났다.

 

북한의 미사일 기지 

 

2차 미사일지침개정(2012)

 

현무 2 시리즈
계속되는 북한의 무력 도발로 인해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 대포동 2호, 무수단 등등 계속해서 미사일을 쏘니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2차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사거리 800KM , 탄두 중량 500KG으로 변경되면서 2차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탄생한 현무-2 시리즈이다. (한반도 전역 커버 가능 거리) 

 

국군의 날 최초 공개

미국의 관심사는 핵탄두 장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trade-off 방식으로 사거리를 줄이면 탄두 중량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절대 500kg 이상은 늘리수 없는 것이다. 

현무-2C 사거리가 800KM 로 늘어났는데 탄두 중량은 오히려 작아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핵탄두 장착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미국의 속내다. 전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거리와 상관없이 탄두 중량이 중요하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없는 것이다. 

 

현무 2 시리즈 (한반도 전역 커버) 

 

3차 미사일 지침개정 (2017년)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시절 북한의 6차 핵실험은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폭발력이 플루토늄 우라늄과의 다른 강도의 지진파가 감지된 것이다.  5차 핵실험의 5배 폭발 위력 최소 50kt 로 예상되는 위력이었다. 이에 미국과 다시 협의 사거리 800km 탄두 중량 무제한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을 하게 된다.  

 
현무 4
이에 현무-4가 개발이 되었지만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현무-2, 현무-3, 현무-4 모두 비공개로 국가기밀이다. 중량이 2~4톤 중량으로 예상되는 것으로 이 정도의 중량은 지하 100~150M를 뚫고 들어가는 수준인 것이다. 북한 전역에 지하시설을 5분 이내에 타격 가능하다. ‘ 일명 벙커버스터’ 이다. 현무-4는 지상에서 발사하는 버전과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버전이 있다.  

 

북한의 고체연료 사용 
또한 액체 연료 미사일과 고체연료 미사일이 차이가 크다. 고체연료 미사일은 오랜 준비 과정이 필요 없이 상시 발사 가능하므로 군사 무기로 효용이 높아 북한이 고체연료 미사일을 당시 보여주고 있고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sLBM)에도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4차 지침이 이루어진다.

 

고체연료는 상시 발사 가능 

 

4차 미사일 지침 협정 

2020년 7월 우리도 미국으로부터 고체연료 개발에 승인을 얻어 이로서 민간 우주로켓 고체연료 제한까지 해제되면서 중견 로켓 국가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미사일 보유 정책 변경

이 조치로 인해 중국과 일본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국보다 일본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일본 헌법 제9조에 전쟁 포기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일본 평화 헌법에 근간으로 인해 평화적 목적의 로켓 개발만 했다.

 

2020년 6월 일본도 일본 자위대 중거리 미사일 보유를 물밑 협의하면서 미사일 보유국으로 정책이 변경을 시도하다가 아베가 퇴임했다. 

 
2021년 5월 21일  미사일 지침 해제
작년 11월에 한미 미시일 지침 자체를 해제 약속하면서 2021년 5월 미사일 지침 종료 선언을 하게 된다. 이는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다. 지침이 해제되면서 미사일 개발과 더불어 항공우주 산업 개발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평화 국가로써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는 신중한 면모를 보여줘야 하며 그래야 주권 국가로 주변국에서 인정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사일 주권을 전쟁과 침략으로 이용한다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중장거리 미사일은 1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영역이다.

 

군사항법 기술이 없으면 미사일을 발사해도 표적을 찾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군사 항법의 기술을 80%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아직도 첨단기술, 정밀한 궤도 운행이 가능해지려면 러시아와 미국의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말 기술의 문제인 것이다.  

미사일 기술 인공 위성 발사체 및 우주 개발의 핵심기술을 통해 항공우주 분야에서 대등한 경쟁을 펼치게 된 우리나라이다. 현재 50개국이 우주개발에 뛰어들고 있고 22개 국가가 우주청(우리나라는 없음) 을 운영 중이다.

 

 

2021년 6월 과학기술정보 통신부는 국가 우주 위원회 개최 계획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의 나로호 위성은 미사일 협정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만든 발사체를 빌려 대신 발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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