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방송 리뷰/차이나는 클라스

한국 반도체 역사

by 365 ^^ 2024. 9. 20.

한국 반도체의 시작 

한국은 1974년 반도체 처음 시작했다. 그때는 미국이 반도체 강국이었고 미국을 추격하는 신흥강국이 일본이었다. 당시 한국 기술로 만든 첫 반도체 제품은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을 개발했다. 70년대 후반 수출 효자 상품으로 반도체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10년정도 큰 발전 없이 있었다. 1983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미래 산업 후보인 여러 분야 중 반도체를 주목했고 반도체가 산업을 쌀이다 라고 선언한다.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

 

80년 이전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그러다 1980년 초반에 스티브 잡스가 맥킨토시를 만들고 인텔이 IBM를 개발하면서 개인용 컴퓨터 반도체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은 1983년 처음으로 기흥에 첫 반도체 공장을 준공한다.  

 

첫 D램 기흥 공장

 

기업의 이익금을 전부 올인해 만든 한국의 첫 반도체였다. 그리고 6개월 만에 64K D램 출시에 성공하지만 현실은 후발주자였다. 미국, 일본 제품에 밀려 시장에서 한국은 외면당하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 계속 적자였다. 그러나 고용량 반도체 생산을 위해 추가로 공장을 지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1년만에 새 공장을 지었다. 

 

최초의 반도체는? D램이란?

 

최초의 반도체는? D램이란?

최초의 반도체 그레이엄 벨이 1876년 전화를 처음 발명했다. 그것은 미 대륙을 하나로 연결한 신기술이었다. 당시 전화는 전선을 통해 소리 보이스 신호를 전달하는 유선 전화기였다. 거리가 멀

wissue.net

 

 

1차 치킨게임

이때 미국과 일본은 D램 전쟁 중이었고 미국이 최초의 D램 회사였고 일본 반도체가 맹추격 중이었다. 한국은 신경도 쓰지 않는 상황이었다. 두 나라 모두 앞다퉈 낮은 가격에 물량 공세를 했고 1차 치킨게임 결과 만들어내면 더 적자인 상황에 미국 반도체는 D램 사업을 철수하면서 일본이 우승이었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공적자금으로 보조를 해주고 있던 상황이었고 반면 미국은 기업이 홀로 경쟁했던 것이다. 이때 우리나라도 D램을 생산하고 있었으나 규모가 작아 적자는 봤지만 생존은 가능했다. 이때 삼성뿐 아니라 현대, 금성(지금의 LG)도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철수를 보고 우리정부는 3사 공동 개발을 제안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1986년의 반도체연구조합 결성이었다. 879억 원을 투입해 88년도 4M D램 공동 개발을 했고 이후 각 회사로 흩어져 독자 기술 개발을 했다. 당시 반도체 기술은 전 세계가 반도체 전력 보관에 대한 스택과 트렌치 기술 두 개로 나눠졌는데 스택은 쌓는 기술, 트렌치 기술은 아래로 보관하는 것이었다. 

 

스택, 트렌치 기술

 

그래서 우리나라 삼성과 LG는 스택기술, 현대 전자는 트렌치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1989년도 쌓는 기술로 세계 최초 16M D램 개발에 성공한다. 트렌치 기술을 택한 회사들은 기술 개발에 실패했다. 이때부터 한국이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전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를 쟁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적자가 한번에 해결되었다. 

 

 

세계D램 시장 점유율.

 

10년 만에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게 된다. 1997년 11월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30대 대기업 중 17개 그룹이 퇴출되었고 5개 은행이 정리, 1만개 기업이 부도처리되었다. 그렇게 한국 돈의 가치가 반 토막이 났다. 반도체 재료의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외환 위기로 가격이 10배 100배 계속 폭등하게 되는 상황으로 신기술 투자가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적자를 봤어도 한번도 월급이 깍이거나 직원이 해고된 적이 없었는데 이 시기 많은 직원이 해고처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세 회사 중 두 회사를 합병하기로 결정, 현대 전자와 금성 반도체가 합병을 해서 하이닉스라는 회사가 된다. 합병 후에도 여전히 투자금은 부족했다. 이제 하이닉스를 외국기업에 팔려고 했으나 국민들의 반대로 위기의 반도체 회사를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인수하게 된다. 

 

2차 치킨게임

IMF를 맞은 한국의 위기는 미국, 일본의 기회였다. 한국에 추격당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통합을 하게 되고 그것이 엘피다라는 회사이다. 이때 대만 사람들이 한국이 10년 만에 일본을 따라잡는 것을 보고 대만도 이때 7개의 D램 회사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대만의 개입으로 엄청난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90% 이상 폭락하게 되었고 이에 일본도 공적자금이 투입되게 된다. 

 

 

 

2차 치킨게임 결과는 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론이었으나 대만은 굴하지 않고 2010년 일본과 대만이 3차 치킨게임을 시작했다. 3차 때는 한국도 공격적으로 물량 공세를 했다. 그렇게 2012년 극으로 치달은 출혈경쟁의 결과 대만과 일본은 D램 생산을 포기한다. 이렇게 3차에 걸친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한국만이 살아남았다. 치킨게임에서는 경쟁자보다 앞선 기술력을 가져야 살아남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자금회수가 불발되었는데 이때 애플의 스마트폰 출시로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모든 스마트폰의 필수 부품,D램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가게 되고 한국 반도체 효자 제품 D램만 성장했었으나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으로 낸드 플래시도 동반 성장하게 된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그렇게 반도체 시장의 초호황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입 중 반도체가 8.3%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크기인 것이다. 

 

[다음글] 중국 반도체 시장 전략에 위협받는 한국 시장: 한국의 전략은?

 

중국 반도체 시장 전략에 위협받는 한국 시장: 한국의 전략은?

반도체 산업 중국전략은 무엇 ? 중국제조 2025 반도체 최대 수출지는 중국이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반도체의 52%를 한국에 의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그동안 수

jangane.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