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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방구석1열

탈레반 역사 (형성 이전상황~현재까지: 읽기 쉬운 버전)

by 365 ^^ 2021. 9. 27.

탈레반 정권 이전 상황

아프가니스탄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해 온 나라로 먼 옛날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시아와 서방 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거점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 문화가 공존하며 지내던 나라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이 자국의 편의대로 국경선을 설정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인들이 생이별, 강제합병에 다툼이 빈발하며 내전이 발생하게 된것이다. 부족 중심 문화에 국가 특성에 대한 몰이해가 부른 비극이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려졌다.

 

 

 

그러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번 갈등이 심화된 후 쿠테타로 망하게 된다. 이때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을 차지하면 부동항(얼지 않는 부두)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1980년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10년 동안 점령한다.

 

 

탈레반의 성장 

아프간 내의 군벌들이 저항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냉전체제의 있었던 미국은 소련을 몰아내기 위해 반군들에게 물자를 적극 지원해 주었다.

 

 

그 수혜의 중심에는 탈레반이 있었다. 탈레반은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사와 연계된 거대 조직이었고 군벌 중 압도적으로 세력이 컸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이 철수했지만 그 후에도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소련이 떠난 뒤 군벌들의 내전이 본격화되었다. 이때가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암흑기로 무고한 시민들만 죽어나가던 시기였고 이때 시민들은 누구든 아무나 이겨 전쟁이 끝나길 바랬었다.

 

탈레반 정권 수립

이때 1996년 긴 내전을 끝낸 정권이 바로 탈레반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국민들을 가혹하게 억압하는 억압 장치를 시작한다.

 

 

탈레반 정권 시절 분위기

1996~2001년 탈레반 집권 당시 분위기는 '나라 전체가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와 같았다. '고 말한다. 국가 통치를 처음 해보는 탈레반은 태어나서 보고 배운 것은 마드라사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생활 방식을 마드라사 방식으로 강요했고 탈마드라사는 세속화되었다=범죄자라고 규정한다. 탈레반에게 마드라사만이 절대 진리였다. 

 

이슬람 율법상 흥청거리면 노는 것도 금기 되었기 때문에 설날도 폐지되었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웃는 것조차 불허했다. 전면적으로 오락거리를 원천 차단했다. 그래서 탈레반 정권 시절에는 아프간에 극장이라는 것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사실 과거에는 중앙아시아 국가 중 영화산업의 선봉에 있었던 아프카니스탄이었는데 탈레반 집권으로 문화 사업은 완전히 퇴보하게 된다.  

 

 

탈레반의 문화유적 파괴 

아프가니스탄도 바미안 석불인 약 6세기경 새긴 불교유적이 있는데 아프카니스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최대 크기의 석불이여서 더 희귀한 문화였으나 2001년 이교도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탈레반이 파괴를 했다. 이 때문에 탈레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나게 거센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다.  

 

종교나 이념과는 별개로 세계 문화유산은 지켜야 할 인류의 자산인 것이다.   
탈레반 문화유적 폭파 모습 / IS도 시리아의 팔미라 유적을 같은 방법으로 파괴했다.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관계 형성과정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간 후 탈레반 지원 동기가 사라지게 된 미국이었다. 그때부터 탈레반과 미국의 관계는 소원해지게 시작하였으며 탈레반은 오직 신학교에 대한 경험만 있어서 경제활동을 기부금으로만 자금을 충당했었고 그 중에 가장 큰 지원국이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사람이 바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탈레반 정권에는 오사바 빈 라덴은 돈줄이었고 사우디에서 돈이 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탈레반은 빈 라덴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도 수용하게 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계기

탈레반이 숨겨준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알 카에다는 활동을 이어나가며 성장을 했고 9.11 테러가 알 카에다에 의해 발생한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유착에 위협감을 느낀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길 것을 탈레반 정권에게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한 탈레반 정권이었다. 이를 빌미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 아프가니스탄의 서막이었다. 약 1~2달 소요되었으나 전쟁 시작 후 바로 탈레반 정권은 무너지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수립

탈레반이 축출된 후 미국의 주도로 군벌들 중심의 지도부가 생성되었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의 시발점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아프카니스탄 국가만의 외세와는 완전히 다른 부족 개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정권 재탈환

2021년 5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선언했고 미군철수 선언 이후 탈레반은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고 주요 도시를 모두 점검하게 되면서 2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게 된다.

 

2021년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 대통령 궁까지 점령하게 됐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했고 도주 당시 2천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오랜 빈곤에 시달리는 동안 호화 사치를 누렸던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미국 등 밀접한 서방국들도 미처 몰랐던 아프간 지도부의 병폐였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궁

 

이 말은 아프가니스탄을 20년 동안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중에 미국의 패착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바라기 보다는 자국의 이권만 생각했던 미국와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가 맞물려 기나긴 고통을 초래한 최악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 탈레반 정권 달라졌나? 

2021.8.17일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존과 다른 포용적 정부 체계를 갖출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다.

 

무장한 탈레반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뉴스 방송,

 

아프간의 국민 코미디언 나자르 모함마드 카샤는 sns를 통해 탈레반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결국 탈레반에 의해 피살되었다.

 

탈레반 점령 후 아프간 국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

탈레반은 여성들의 참여을 허용하고 여성들을 존중할 것이라 발표한 것과 달리 부르카 미착용 여성을 처형 및 여성의 활동 금지를 선언

 

 

탈레반의 현재의 목표는?

현재 탈레반은 돈이 필요하다. 재정의 90% 이상을 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원조를 멈춘 국제사회로부터 합법 정부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어제의 테러 집단이 오늘날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텔레반이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므로 지금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볼수 있다.  

 

원래 아프가니스탄은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양상을 보면 아이들과 함께 탈출하는 가족이 많았고 이것으로 볼 때 20년간 아프간 인권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탈레반 내각 구성 

탈레반 정권의 변화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는 정부구성이었다. 국제사회가 요구했던 것은 탈레반만으로 구성되지 않는 통합정부를 구성하길 바랬다.

 그러나 2021년 9월 7일 내각 구성을 발표했는데 대부분이 탈레반으로 구성되었고 33명 중 여성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전 정부의 지도자들도 제외되었고 33명 중 14명이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지정한 테러리스트였다. 

 

내무부 장관의 시라주딘 하카니는 2008년 미국인 포함 6명이 사망한 수도 카불 호텔 테러를 조직, 2017년 카불 차량 폭탄 테러로 약 150만 사망한 테러를 조직한 사람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현상금 1000만 달러를 건 사람이다. 

 

 

 

 

 [174 회 일부 내용]

 

아프가니스탄 역사 속 탈레반 형성 과정 알아보기

 

아프가니스탄 역사 속 탈레반 형성 과정 알아보기

5000여 년 전 문명이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은 여러 국가와 국경을 맞댄 문명의 교차로였다. 고대 페르시아부터 아프가니스탄은 정복자가 모두 거쳐가는 국가였고 19세기 들어 영국은 아프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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