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동상 철거는 미국의 도시들에서 지속적으로 제기 되고 있다.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가 심할 때 콜럼버스 동상의 목을 자른 모습니다.
콜럼버스의 날-> 원주민 추모의 날로.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콜럼버스는 학살자였다. 그가 도착했을 때 신대륙의 인구는 약 6000만정도 되었으나 100년 뒤에는 1/10로 감소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각지에서 동상을 세우고 그를 치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콜럼버스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도 없다. 요즘은 10월 21 국경일 콜럼버스의 날을 추모일인 원주민의 날로 지정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1차 항해에서 신대륙을 찾아 돌아온 콜럼버스로 인해 스페인 국왕은 포르투갈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를 기대했고 2차 항해를 떠난다고 했을때는 적극적으로 지원을 했다. 1492년 1차 항해에서는 3척의 배가 떠났으나 2차 1493년 17척의 배가 떠난다. 선원도 90명에서 1500명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신대륙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태양 빛 금
그 당시의 사람들은 금은 태양 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더운 지역에서 저절로 만들어 진다고 생각했고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적도 부근이 금의 주요 생산지라고 믿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거짓말이 부른 화
콜럼버스는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2번째 항해에서 금을 열심히 찾지만 금이 보이지 않아 쿠바, 자메이카까지 원정을 가보지만 여전히 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토레스 보고서에 그곳에는 향신료가 많이 생산되고 금광에 금이 많이 산출되어 광부가 필요하다고 광부를 요청하기까지 한다.
그 후에 1498년 아메리카 대륙의 세번째 항해를 나섰는데 포르투갈의 배가 인도 항해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왕실은 충격에 빠지고 콜럼버스는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원주민 노동력을 활용한다. 원주민을 이용해 뭔가를 생산을 하고 그들을 노예로 팔 생각까지 한다. 그리고 1503년 스페인에서는 원주민 강제노역을 합법화한다. 그 이후 7년간 사금 19톤을 생산했다. 그러나 1500년 10월 콜럼버스는 쇠사슬에 묶여 스페인으로 압송된다. 이후에 제 2, 제3의 콜럼버스가 계속 등장하면서 아메리카의 원주민 비극은 본격화된다.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본 아메리카 대륙
이 대륙은 스페인, 프랑스 등 라틴 계통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서 앵글로,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중남미는 멕시코, 카리브해 섬 등 총 33개국의 나라가 있지만 지배국가가 달라 언어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중남미는 다양한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했나?
우리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 발견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16,000년전 이미 시베리아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몽골로이드'라는 원주민이 아메리카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볼수 있다. 그렇다면 서양인 중에서도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한것이 콜럼버스였나? 그것도 아니였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캐나다 뉴펀드랜드에서 서기 11세기 바이킹 유적이 발견되었다. 또한 이들이 원시적으로 살았던 것도 아니였다. 아메리카 밀림에서 잉카, 마야, 아스테카 유적 등 문명과 도시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다.
아메리카의 비극
콜롬버스 죽음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정복 전쟁이 벌어진다.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 모두 스페인에 의해 멸망당한다.
아스테카 문명 멸망
by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아스텍 문명(=아스테카) 템플로 마요르 (인신공양이 잔인했던 이유)
마야 문명 멸망
마야 문명을 악마의 언어로 쓰여있다고 생각해 모두 불태워서 마야 문헌은 단 3점만 남아있다.
잉카문명 멸망
스페인 식민지 정복자 프란시스코피사로에 의해
다름을 인정하는 것
프랑스 몽테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야말로 모든 야만스러움에서 원주민을 능가한다.” 야만스러움을 핑계로 원주민 정복을 정당화했던 유럽인들이야 말로 진짜로 야만스러웠다고 말한 것이다.
“So we can indeed call those folk barbarians by the rules of reason but not in comparison with ourselves(=Europeans), who surpass them in every kind of barbarism.”
2015년 7월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볼리비아를 방문해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가해진 죄를 사과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저지른 일의 근원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다름을 인정 할때 비로소 더물어 살아 갈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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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버스(=콜럼버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과정,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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