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해 임시정부를 시작해서 윤봉길 의사의 일왕 폭탄 테러로 일본의 집중적 타깃이 되면서 상해(1919.4)로 이동 후 중일 전쟁 영향으로 다시 임시정부는 항저우(1932.5)-전장(1935.11)- 창사(1937.11)-광저우(1938.7)-류저우(1938.10)-치장(1939.4)-충칭(1940.9)에 이르게 된다.
8년간의 임시정부 로드는 너무도 고달프고 힘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충칭에 1940년 임시정부를 다시 세우고 광복까지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나간다. 충칭에서의 독립활동이 임시정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에 비해 규모가 크고 접대실, 비서실, 집무실, 외빈숙소 등으로 사용된 총 5채로 이루어진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이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되는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많은 독립운동을 진행했다.
1호 건물
이 계단은 교과서에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하면 나오는 너무 유명한 장소이다. 광복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그 계단이다.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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