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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원인, 피해 그 후 ~

by 365 ^^ 2021. 6. 2.

Chernobyl Nuclear Disaster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해 막대한 방사능 물질이 유출이 된다. 체르노빌 원자로는 4개의 원자로가 가동중이었으나 4번째 원자로 폭발 이후에도 3개는 계속 가동하다가 2원자로는 1991년 화재로 중단, 1996년 1원자로는 국제협약에 따라 폐쇄, 3원자로는 2000년 12월 15일 G7 에 31억달러를 원조받고 폐쇄했다.  체르노빌 원자로 해체작업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에 있다.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원인 

원자력 발전소는 핵연료를 이용해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로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은 인재에 의한 폭발로 기술자의 작동미숙이 원인이었다.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정전시 외부 비상전력 공급 시간동안 원자로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원자로의 출력량을 30%까지 낮추려는 계획이었으나 그 과정에 무리한 제어봉 조작으로 정지상태까지 이르게 되어 재가동에 문제가 생긴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급하게 출력을 올리다가 원자로의 온도가 급속도로 치솟아 결국 원자로 내의 냉각수가 증발로 인한 1차 증기폭발이 일어났고 당시 흑연이 (원자 핵분열의 속도 조절하는) 감속재로 사용되었는데 흑연(RBMK 방식)이 고열로 수소가스를 생성해 폭발이 일어나 원자로의 콘크리트 천장이 날아가며 2차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그후 수차례 폭발이 일어났는데 사고현장에 있던 직원은 원자로 폭발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수습자들은 방사능 방호 장비나 방사능 측정 장비도 없었다. [미드 체르노빌 5부에서 폭발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고증이 철저히 된 미드 체르노빌 추천]

 

당시 소련만 가지고 있던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한 원자로 RBMK 방식 검정색부분이 흑연, 비용절감이 되어 감속재로 사용되었다고한다.

 

사고 수습을 위해 28인의 결사대를 보낸다. 28명 모두 유서를 쓰고 죽음을 각오하고 사고를 수습했던 사람들은 원자로로 들어가 모래와 콘크리트 5천톤으로 지하수와 접촉을 막고 지붕을 씌워서 방사능이 유출되는 원자로를 봉인, 단시간에 사고수습을 했지만 28인의 결사대는 방사능에 노출되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순직했다. 

 

28인 체르노빌 결사대 모두 순직

 

우크라이나 당국은 36시간이 지나서야 임시적인 조치로 인근 주민 5만 명의 대피 명령을 내렸고 수도 체르노빌에서 남방130km 떨어진 수도 키예프에서는 당시 노동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

원전사고 후 폭발 반경 30km 모두 강제 이주, 6년간 해체작업에 투입된 노동자 5722명 사망,  지역 주민 2510명 사망  폐쇄 마을은 우크라이나 16개, 벨라루스 485개에 이른다. 

 

체르노빌 30km 반경의 나무상태 
체르노빌에서 가까운 붉은 숲에는 자연계 평균 방사능 수치의 100배가 넘는 수치가 여전히 측정되고 있다. 
원전사고이후 폐쇄된 마을 이름을 새긴 표지판들 161개
체르노빌 박물관에는 사고수습때 사망한 소방관과 군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체르노빌 사고이후 원일모를 병에 걸려 사망한 아이들의 사진(체르노비 반경 30km 이내 거주자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방사능에 의한 유전자 질병

 

체르노빌 사고의 최대 피해국은 벨라루스이다. 체르노빌 사고당시 바람을 타고 온 방사능물질이 전국토의 23%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바람을 타고 온 방사능물질이 전국토의 23%를 오염
색이 짙은 지역이 오염된 지역으로 색깔이 짙을수록 오염도가 높다. 이 지역들은 사람이 살지 못한다. 현재 방사능에 오염된 산림구역으로 지정되어 됐고 농사를 지을수도 없다. 

 

 

※ 왜 사람들은 핵의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는지? 

 

194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방사능 물질에 대해 무지했다. 사람들은 1945년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원자력으로 폭탄을 만들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폭탄이 터진 다음에서 방사선이 계속 나오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아프고 죽는다는 것을 일부 정부 관리들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경쟁을 하기 시작하며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의 세금이 필요했기때문에 핵의 위험성보다는 원자력 발전소는 석탄 발전소를 대체하는 미래 친환경 기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핵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철저히 은폐했다.  

 

 

 

 

 

실제로 1970년대 말에 미국에서 방사전 유출사고가 일어났지만 이 유출 사고를 미국조차도 은폐를 했기 때문에  각국가들이 핵을 개발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최대한 국민들에게 위험성에 은폐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 왜 방사능 유출 현장에 소방관들이 투입될까? (왜 글로벌 공조가 되지 않는 걸까?) 

 

1980년대 후반 역사을 살펴보면 그 당시 미국은 2만개의 핵을 보유, 러시아는 만개정도의 핵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 전쟁 중이었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주도권을 갖게 되므로 국가별로 과다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체르노빌과 같이 핵시설의 구조와 설계가 들어나는 것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것이었다.  다른 나라의 전문가들이와서 자신들의 핵무기 기술을 평가,결함이 들어나는 것은 국가적 주도권을 빼앗기는 문제였다.  그러므로 국가적인 자존심으로 인해 국민들이 생명을 잃은 것이다. 

 

 

 

 

체르노빌은 현재 모습 

 

지금도 200톤의 핵물질이 남아있는 원전4호기는 콘크리트로 봉합되어 있으나 현재 사고원전 외벽에 균열이 생겨 자칫하면 대규모 방사능 누출이 될 가능성이 있어 균열을 메우는 일이 시급한 상태였고 결국 국제기구의 도움을 통해 대형돔으로 사고원전을 2조원을 들여 덮었으나 그 안의 상황은 확인이 안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원전 4호기
현재 4호기 상태 

 

체르노빌 주변 마을의 흙을 모두 거둬내고 현재 여러 조치들로 방사능의 양이 많이 줄기는 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현재 체르노빌은 동물의 왕국이 되고 있고 숲도 겉으로 보면 예전과 비슷해보인다. 드라마 체르노빌이 인기를 끌면서 체르노빌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심지어 체르노빌에서 보드카가 나와 특산품으로 팔리는 등 체르노빌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체르노빌 보드카 

아토믹 보드카 : 체르노빌의 지역 경제 회복을 위하여 체르노빌에서 자란 곡물과 물로 만든 보드카이다. 

 

 

[출처 이슈픽 쌤, 조승현의 탐구생활,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미드 체르노빌,kbs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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