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청나라는 일본과의 싸움은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19세기 후반 이홍장 등 양무파의 주도하에 청나라의 부국강병을 목표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양무운동을 추진하면서 해군력 강화에 힘썼다.

황해해전
각 함대의 주요기지에 서양식 함대가 갖춰졌다. 북양함대를 필두로 동아시아 최고의 해군 함대를 구축하게 되었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더 큰 세력을 키울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894년 9월 17일 압록강 앞바다에서 황해해전이 벌어진다. 청나라 북양함대를 내세운 주력 함대 12대와 일본 연합 함대 10척이 맞붙었고 청나라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속도가 빠른 쾌속함이 동원된 일본이었다.
청나라와 일본 함대 전력 비교

청나라 주력함대


일본의 주력 함대


그러나 빠른 일본 함대를 이기지 못하고 청나라는 황해해전에서 대패했다.

결과: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전쟁배상금은 약 2억3150만냥으로 청나라 1년예산의 약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고 아편전쟁 배상금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결국 청나라 제정은 파산직전에 이르렀고 영국, 러시아, 독일은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된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청나라 이권을 챙겨갔다. 영국은 위해, 독일은 청도를 차지하고 러시아는 여순을 얻으면서 대규모의 군함과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헸다.


중국 칭따오 맥주 기원
중국에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맥주가 있다. 칭다오 맥주인데 우리가 잘 아는 칭따오 맥주도 이때 청도를 손에 넣은 독일 회사가 만든 맥주이다. 청도를 빼앗은 독일이 이곳에서 지하수를 발견하고 1903년 영국인들과 함께 합작해서 독일의 양조법으로 맥주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1903년 독일 맥주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 팔린 맥주(1위는 중국 맥주인 설화맥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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