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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조선 왕세자 교육 하루 일과 (벌거벗은 한국사 40회)

by 365 ^^ 2023. 2. 8.

조선 최초의 왕세자 교육은 조선의 3대왕 태종 이방원때 부터였다. 태종 즉위 전까지는 제대로 된 왕세자 교육이 이루어질 틈이 없었다. 태조부터 태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왕위 계승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조선 왕실 태교

조선 왕실 태교는 임신 3개월 부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중궁전을 떠나 한적한 별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왕도 접근이 금지가 되고 편지로 의사를 주고받았다. 7개월 이후 절대 먹을 수 없는 것이 고기 반찬이었다. 당시 조선사회는 고기는 깨끗하지 못하고 정갈하지 못한 음식으로 인식되었다. 당시에 고기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위험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한 왕실에서 식전에 반드시 먹었던 것이 순두부를 먹어 단백질을 보충했다고 한다.  출산에 임박하면 왕비의 출산을 위해 국가 기관 산실청이 설치된다. 산실청에서는 각 분야 최고의 어의와 의녀를 소집하고 산실청 최고 책임자 현 총리급의 현임 정승이 직책을 맡았다. 왕실의 후사를 낳는 것은 조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나랏일이었다.  

 

출산일
출산일에는 백마의 가죽을 놓은 이유는 양기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왕비가 아이를 출산하면 아기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왕이 직접 구리종을 쳤다.  

출산일 침대
출산일 침대

 


그리고 아이가 입는 첫옷은 고위관리 중 무병장수한 사람의 무명옷을 입힌다. 고위 관리의 건강하고 똑똑한 기운이 아이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체온 조절의 기능도 있었다.  

 

원자 교육

왕비의 첫 아들을 원자라 부르고 원자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져 지냈다. 육아 경험이 풍부한 유모에게 맡겨졌다.  5살이 된 원자는 본격적으로 스승을 만난다. 이때 만들어지는 교육기관 강학청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원자가 읽었던 책은 유교 입문서 소학과 효의 원칙과 규범을 수록한 유교 경전인 효경이었다. 이때 원자의 수업은 책을 통째로 외워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 45분씩 공부를 했고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좋은 집안의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 원자의 또래 친구 배동을 붙여준다. 배동은 나중에 원자가 커서 최측근 세력이 될수 있기에 배우 중요했다.  이들과 투호놀이를 했는데 투호는 집중력을 키워주는데 좋은 놀이였다.  

 

 

왕세자 교육  

8살을 전후로 왕세자로 책봉이 되고 자신만의 궁궐인 동궁을 갖게 된다. 왕의 집무를 보는 곳, 희정당,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대조전의 동쪽에 위치해서 붙여진 동궁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동궁 침소 옆에는 시강원이라는 왕세자 전담 교육기관이 설치된다. 강학청이 유교의 입문과정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시강원은 심화된 유교 교육을 했던 곳으로 왕세자의 생활 공간과 교육시설이 함께 있던 동궁은 일종의 기숙학교였다.  

 

왕세자의 하루
조선의 왕세자는 매일 성적표를 받았고 새벽 3~밤 9시까지 공부를 숨쉴틈 없이 보내야 했다.   

왕세자 일과
왕세자 일과

 

일어나자 마자 왕의 처소로 아침 문안인사와 함께 왕의 음식을 살피는 시선을 했다.  문안과 시선은 글로 배운 효를 실천하는 것으로 이를 못하면 왕세자의 자실 문제로 거론될 정도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매일 진행되는 정규 수업 법강은 총 3번, 오전에 하는 보충수업 소대, 밤에 하는 보충 수업 야대까지 하루에 12시간을 공부해야 했던 왕세자였다. 왕세자는 사서 오경을 배웠다.  

사서오경 유교 교육 필수 기본 교제
사서오경 유교 교육 필수 기본 교제

 


 거기다 교양수업으로 예술, 말타기, 활쏘기, 그림, 붓글씨, 수학 의 6가지 교양과목도 익혀야 했다.  침소로 돌아간 왕세자는 다음 날 암기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왕세자 이외의 왕자들은 따로 모아서 종학에서 4명의 선생님이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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