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잔 다르크 이야기(100년 전쟁 속 성녀에서 마녀로 화형 당한 이유)

by 365 ^^ 2022. 4. 18.

이전 내용 [42-1]

백년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42회 )

잔다르크 이야기 

 

잔다르크가 활동했던 무대는 프랑스의 100년 전쟁이다.

 


오를레앙은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맞닿아 있는 접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오를레앙을 장악하려는 잉글랜드는 이곳을 공격하고 프랑스는 오를레앙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잔 다르크는 누구인가?

반년 넘게 공성전이 이어지면서 지쳐가고 있었는데 이때 17세 소녀 잔 다르크가 등장한다. 잔다르크는 각종 소문과 전설이 쌓이고 쌓여서 전설인지 사실인지 알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잔 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 동부의 시골 마을 동레미에 태어났다. 

 

 

 

신의 계시를 받은 잔 다르크

 

농부인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게 지내던 시골 소녀였는데 글을 배우지도 않았고 교회만 열심히 다녔던 소녀였다. 1424년 여름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듣고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동레미 인근 보쿨뢰르의 수비대장을 찾아가 신의 계시를 전한다. 그러나 수비대장에게 쫓겨나게 되지만 끈질기게 다시 찾아가 반복하고 결국 잔 다르크의 요청을 샤를 7세에게 전한다.

 

 

잔 다르크의 첫 전투

 

잔 다르크는 왕의 만나기 전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기사의 갑옷으로 무장한다.  이렇게 남장을 한 상태로 약 500km를 이동해 왕세자 샤를 7세가 있는 쉬농성에 도착한다. 왕세자 샤를 7세는 처음 잔다르크를 믿지 않았으나 프랑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설령 신의 계시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마침내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받아들이고 당시 가장 치열하고 중요한 전장 오를레앙 전투에 투입시킨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참전한 첫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부터 프랑스 군은 연전연승을 거두게 되고 잔 다르크가 투입된 9일째 되는 날 반년 넘게 포위하고 있던 오를레앙 성을 잉글랜드군이 철수하게 된다. 

 

성녀 잔 다르크


오를레앙 전투의 승리는 프랑스군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준다. 프랑스 인들은 잔 다르크가 잔짜로 신의 계시를 받은 존재라고 믿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오를레앙의 성녀로 인정했고 남녀노소 모두가 깊은 애정을 같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잔다르크

잔 다르크는 오를레앙 전투 이후 잉글랜드에 뺏긴 여러 도시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 오를레앙에서 약 300KM 떨어진 도시 랭스였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대관식을 해야만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 왕은 정통성과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1명을 제외하고 프랑스의 거의 모든 왕이 팩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래서 잔 다르크는 샤를 7세와 함께 랭스로 가야했다.  그러나 랭스는 부르고뉴 파의 영토로 오를레앙에서 랭스까지 적진 한 가운데로 뚫고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1429년 6월에 샤를 7세와 함께 랭스로 향하던 잔 다르크는 출발한지 20여일 만에 도착한다. 

잉글랜드에 빼앗긴 여러도시가 싸우지 않고 샤를 7세 편으로 돌아선다. 잔 다르크의 존재로 인해 이들은 문을 활짝 열고 프랑스군을 맞이했고 그곳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치른 샤를 7세였다.

 


잔 다르크는 대관식 내내 성녀로써 깃발을 들고 샤를 7세를 지켰고 성 녀로서 대관식의 증인이자 수호자를 자처했던 것이다. 이로써 샤를 7세는 왕세자에서 정식 왕이 된 것이다. 


잔 다르크의 첫번째 패배
이때 왕을 인도한 잔 다르크의 명성도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헨리 6세를 왕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에 잔다르크 는 샤를 7세의 왕위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잉글랜드가 차지한 프랑스 수도 파리 를 공격한다. 그러나 군대를 이끌로 파리로 돌진했으나 다리에 화살을 맞아 부상만 당한 채 파리에서 퇴각하게 된다. 

 그런데 잔다르크의 패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는 대관식 이후 프랑스 왕 샤를 7세는 전투를 계속할 의지가 없었다.  원래 유악하기도했고 다른 전략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잔 다르크에 소규모의 군대만 지원했던 것이다. 

 

 

 

포로가 된 잔 다르크 
1430년 5월 잔 다르크에 비극이 닥친다. 사건의 발단은 콩피에뉴에서 발생한다. 이곳이 적에게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잔 다르크는 소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콩피에뉴로 출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잔 다르크는 적들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때 잔 다르크를 잡은 것은 잉글랜드와 동맹관계에 있던 부르고뉴군이었다.

 


그러나 샤를 7세는 이때 잔 다르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손절해버린 것이다. 당시 샤를 7세는 잉글랜드와 손잡고 있던 부르고뉴파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샤를 7세는 왕세자때부터 정통성을 의심받던 왕이었기때문에 성녀로 추앙받고 인기가 많은 잔 다르크의 존재가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잔다르크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잉글랜드는 자신들이 몸값을 지불할 테니 잔다르크를 넘기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잔다르크는 잉글랜드에 넘어갔고 잉글랜드는 그녀를 교회에 넘겨 이단 재판을 받게한 후 악마의 추종자를 만들어버린다. 

 

마녀가 된 잔다르크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잔 다르크는 달가운 인물이 아니였기 때문에 잔다르크를 '저주를 내리는 치명적인 마녀'로 묘사했다.

 


중세시대는 과학이 발전하지 않아 악마, 마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신이 성녀 잔 다르크를 보내서  프랑스를 지킨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믿음 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실제 로는 잔다르크가 프랑스 군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전투 지휘를 했던 것도 아니지만 대신 잔 다르크는 전투에서 깃발을 들고 선봉에 서서 병사들의 사기를 복돋으며 적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기적의 소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잔 다르크 화형

이에 잉글랜드는 70여개의 죄를 만들어 잔 다르크에게 씌우고 1431년 5월 30일 잔 다르크는 루앙의 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진다.  시신의 잔해가 남아있으면 그 남은 재가 숭배의 대상으로 추앙받을까 두려워 3차례나 화형을 진행했다.

 

화형대의 불길 속에 죽음을 맞이한 잔 다르크

불이 꺼지고 나서 남아있던 것은 작은 뼛조각과 재뿐이었고 남아 있는 작은 뼛조각은 센강에 뿌려버렸다. 그래서 잔 다르크는 제대로 된 묘조차 남지 않았다.  프랑스를 구해낸 영웅 잔다르크는 19살의 뜨겁지만 짧은 생애를 마쳤다. 잔다르크가 죽은 지 100년 전쟁은 1453년 카스티용 전투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11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잔 다르크의 죽음 이후
전쟁의 발단이 되었던 프랑스의 보르도와 아키텐을 비롯한 칼레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프랑스는 돌려받는다. 100년 전쟁이 끝난 후 샤를 7 세는 후에 잔다르크를 복권 시켰다. 잔 다르크의 이단 재판은 무효선언을 했다. 이유는 이단으로 화형에 처해진 잔 다르크기 때문에 이단에 의해 왕위에 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이를 무효화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잔 다르크는 죽은 후에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나라, 여러집단의 아이콘이 된다.  제 1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 중이던 프랑스에서는 잔 다르크에 대한 전국민들의 숭배 열기가 고조되었고  미국 재무부가 전쟁자금을 기부받기 위해 잔 다르크를 이용했었다.

 


또한 잔 다르크는 한반도로 넘어와 1907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던 시점에 애국지사 장지연 선생이 번역한 전 다르크의 전기 소설<애국부인전>을 번역했는데 유관순 열사가 3.1운동때 이 소설을 읽고 잔다르크 소설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백년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42회 )

 

백년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42회 )

백년 전쟁 시기 100년 전쟁은 프랑스와 영국이 1337년~ 1453년까지 113년간 오랫동안 전쟁을 했다. 100년 전쟁의 서막은 1328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 카페 왕조 마지막 왕인 샤를 4세

jangane.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