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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인조반정->이괄의 난->정묘호란

by 365 ^^ 2020. 8. 7.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0회 후반]

 

오늘의 탐사지: 창의문-남한산성
주제: 인조반정, 정묘호란

출연자:  김강훈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유

 
인조반정의 시작은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에서 시작된다고 볼수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가 질투하던 이순신도 죽고 류성룡은 파직 시켰는데 아직 한 사람이 남아았었다. 그는 바로 전쟁 때 의병을 이끌고 큰 공을 세운 사람 아들 광해군이었다. 선조는 조선 최초 방계 출신 임금이었다. 
 

 

조선시대는 적장자(=정실부인의 첫째 아들을 의미)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관례였기에 선조에게 자신의 방계 출신 신분은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선조는 다음 왕위는 무조건 적장자에게 주려고 했으나 중전이 아이가 없었다. 후궁 공빈 김씨만 두 아들을 출산해 첫째가 임해군 둘째가 광해군이었다. 후궁의 자식만 두명이었다. 

 

 

 

 

 

 


선조는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를 주기 싫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는 명나라로 피신 갈 계획을 세우고 급하게 광해군을 세자 책봉 한후 18세 광해군에게 나라를 맡기고 선조는 명나라 행을 택했다. 그렇게 선조 대신 나라를 지킨 광해군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당시 선조 나이 51세에 19세 부인과 결혼한다. 아들 광해보다 9살 어린 새 엄마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였다.

 


그때부터 광해군은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만약 새엄마 인목왕후가 아들을 낳게 되면 적장자가 되는데 세자의 자리에 위태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마침 명나라에서 광해군는 적장자가 아니라서 세자로 인정 하지 않겠다고 한다. 당시 세자 책봉시에 명나라의 승인도 필요했다. 

 

 

선조는 명나라를 핑계로 세자 자리를 다시 뺏으려 했다. 명나라에서도 아버지 선조에게서도 인정 받지 못했던 광해군은 살얼음판으로 16년동안 세자 시절을 보낸다. 그 와중에 광해군의 새엄마 인목왕후가 아이를 가진다.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영창 대군이다.

 

 

 

 

영창대군이 태어나자마자 불안에 떨던 광해군은 그때부터 성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조가 승하하게 되고 권력을 잡은 인목대비는 자신의 아들 영창 대군이 아니라 광해를 왕으로 지목한다. 당시 영창 대군은 3살이었다.  

 

 

 

 

 


광해가 왕이 된 이후 뒤바뀐 서열로 이번에는 인목대비가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

 

 

어렵게 얻은 왕위에 심한 집착을 가졌던 광해군은 특히 역모에 대한 고변이 들어오면 광해가 직접 나서서 죄인을 추국했는데 죄가 없을 경우 앞으로 고변을 하지 않을까 우려해 계속 고변을 할 수 있도록 고변한 사람에게 무고죄를 묻지 않았다.그 이후 서로 서로 역적이라고 모함을 하며 피바람이 분다. 무럭무럭 자라서 8살이 된 영창대군은 왕위에 가장 위협이 되는 적장자였다.

 

 

그래서 광해군은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을 제거한다. 영창 대군을 추대,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내린다. 김제남의 아들과 사위들 영창대군의 남자 외삼촌들도 죽인다. 그 후 영창 대군은 8세 때 역모죄로 강화도로 유배를 가서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한다. 

 

 

 

집에 가둔 채 곡식을 끊어버리고 방에 불을 지펴 증살시켜 죽였다. 아들의 죽음을 그냥 넘어 갈리 없는 인목대비를 (예전에는) 경운궁이라 불렀던 덕수궁에 인목대비를 유폐시킨다.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광해군에게 온다.

 

인조반정의 가장 큰 명분 폐모 살제  

폐모: 어머니를 유폐시키고

살제: 형제를 죽였다. 

 

 
직접적인 명령은 없었으나 친형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 대군을 죽게하고 어머니를 유폐 시키므로 광해군을 지지한 대북 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뭉치게 된 계기가 된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와 조선은 황폐해졌고 그 틈을 타 후금이 명나라를 침공한다. 이에 명나라는 조선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광해군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해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 이것은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을 시켰다고 해서 실리 외교, 중립외교라 부른다.
 

 

그러나 임진 왜란 때 도와준 명을 돕지 않는다고 하여 광해의 중립 외교는 조정 대신들에게 비난을 받고 인목 대비를 유폐 시키며 반정의 빌미를 주게 된다. 
 

인조반정 

 
광해군에게 역적으로 몰린 이들 중 하나인 배다른 동생 정원군의 아들이 역모죄로 죽게 된다. 
 

 

그 충격으로 정원군 또한 사망한다. 정원군의 또다른 아들인 능양군(훗날 인조)은 본디 유약했으나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충격에 180도 변하게 된다. 

 

 
복수를 위해 사람을 모으기 시작한 능양군은  반정에 앞장설 무인들을 모으고 이후 내각을 구성할 문인들까지 모집한다. 그러나 반정 당일 아침에 발각이 된다. 
 
 
그러나 그때 광해군은 술을 먹고 있었고 견제 상이던 인목 대비까지 유폐한 상황이라 광해군은 고변의 내용을 흘려듣는다. 능양군을 중심으로 모인 1400여 명의 반정군들이 밤에 창의문을 거쳐 창덕궁으로 쳐들어갔다. 이렇게 1623년 인조 반정은 성공을 한다. 광해군은 체포돼서 서인으로 강등이 되고 18년의 유배 생활 끝에 67세에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다.

 

인조반정 뒤 

 

 공신들의 명단을 써 놓은 창의문 문루 
1등부터 3등까지로 나누어진 52명의 이름 중 현판의 앞자리에 위치한

 7명의 일등 공신들 김유, 이귀, 신경진, 이서, 최명길, 구굉 ,심명재

 

이괄의 난 

 
최명길 포함 반정을 주도한 7명의 일등 공신이 문루에 적혀있고 이  과정에서 불만을 가진자가 있었으니 인조 반정의 또 다른 공신 이괄이었다. 인조 반정에 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2등 공신으로 책봉되고 거기다 변방으로 전출 명령을 내린다. 이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니 이를 본 1등 공신들은 역모라 고변하지만 선조는 1등 공신들의 말을 믿지 않자 대신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이괄의 장남을 끌고와서 추국을 하고 분노가 치민 이괄은 결국 한양으로 군을 이끌고 쳐들어간다.   
1624년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인조는 공주로 몽진을 간다.  
 

총 3번 몽진을 간 인조

 

 

 

  • 1624년 이괄의 난때 공주로
  • 1627년 정묘호란때는 강화도로 
  • 1636년 병자호란때는 남한산성으로 
 
난을 일으켰지만 관군에게 패하자 이괄의 부하들은 이괄의 목을 먼저 베어 바친다.이로써 이괄의 난은 진압된다. 
 
 
 
 

정묘호란 (1627년)

남은 이괄의 잔당들이 후금쪽으로 도망을 가서 자신들을 죽이려 한 인조를 내쫓아 달라고 요청한다. 마침 그때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후금과 전투 중 후금에 밀려 평안도 가도로 들어와서는 나가지 않고 조선인들을 약탈하며 그대로 눌러 앉은 모문룡을 후금에서 내보내라고 인조에게 압력을 넣는다. 그러나 후금보다 명나라의  눈치를 더 봤던 인조였다.

 

 
광해군과 반대로 친명배금 정책이었던 것이다. 이괄의 잔당+퇴출 요구 거절로 때가 됐다고 판단한 후금은 결국 조선으로 쳐들어오게된다.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후금의 요구는 조선이 명나라를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후금과는 형제를 맺자고 한다. 거절할 시 계속될 후금의 공격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후금의 제안을 수락한다. 형제에 대한 의식으로 검은 소와 하얀 말을 잡아서 피를 나눠 마시자고 하나 인조는 피 마시는 것을 거부한다.
 

 

피는 신하들이 대신 나가서 마시는 걸로 합의를 본 것이 정묘호란의 마무리다. 이렇게 정묘호란은 큰 전투는 없었다. 그러나 후금으로 돌아가면서 조선 백성들을 약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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