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2회]
오늘의 탐사지: 서오릉 - 경릉 -명릉
주제: 서오릉 속 경릉 관련 이야기
서오릉
서오릉: 경릉, 익릉, 명릉, 홍릉, 창릉
인수대비 한씨는 당시 수양대군의 첫째 아들 도원군(=덕종)과 혼인한다. 인수대비는 결혼 직후 첫째 아들 월산대군과 명숙공주를 낳았고 남편인 덕종(= 의경세자)이 죽기 전(출산 약한 달 후 남편을 잃음) 둘째 아들이 태어난다. 그가 바로 훗날 성종(연산군의 아버지)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남편 의경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2년 3개월 만에 사가로 물러났다.
※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아들 성종은 어떻게 왕위에 올랐나?
성종의 업적 4가지
경국대전 편찬
동국여지승람
조선의 예법을 기록한 국조오례의 편찬
악학궤범
또 다른 업적은 젊은 인재를 대거 등용해서 개혁 정치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중심에 있던 기구가 삼사(사헌부,사간원, 홍문관)로 젊은 관리들의 집합소이다. 삼사의 역할은 대신을 견제, 개혁을 추구하던 기구였다.
성종은 삼사를 왜 밀어줬을까?
제7대 왕 세조때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세조 편에 서서 득세한 훈구파 대신이 성종까지 이어지고 이를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인수대비는 강인한 성격이 많이 부각되어 있지만 사실 학식도 깊은 여성 교육서를 만든 지식인이기도 했다. 아들이 왕이 된 후 <내훈> 이라는 책을 만들어 궁중의 비빈과 부녀자들에게 유교적 덕목을 교육시켜 조선 시대 여성 교육에 이바지한다.
조선의 9대 왕 성종의 어머니이자 의경 세자의 부인, 인수대비(=소혜왕후)는 장수하다가 이곳 능에 묻힌다.
인수대비는 남편인 덕종과 함께 경릉에 묻혔고 간소한 덕종의 묘보다 크고 화려한 인수대비의 무덤은 우상좌하라는 왕릉 조성 원칙을 깨고 유일한 여성 상위 무덤이 인수대비 무덤이다.
조선 시대 능을 만들 때는 우상좌하 원칙에 따라 왕이 오른쪽 왕비의 능을 왼쪽에 만든다. 그러나 인수대비 능은 왕의 자리 오른쪽에 있는 것이 특징인데 왕이 되지 못하고 세자로 죽은 남편(덕종)보다는 왕의 어머니(성종의 모)이자 왕의 할머니(연산군)인 인수대비를 왕의 자리에 모신 경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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