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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아들 성종은 어떻게 왕위에 올랐나?

by 365 ^^ 2020. 8. 11.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2회]

 

오늘의 탐사지: 서오릉 - 경릉 -명릉

주제: 서오릉 속 경릉 관련 이야기

 

서오릉
고양시 서오릉(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5개의 릉 )

 

서오릉: 경릉, 익릉, 명릉, 홍릉, 창릉 

01234
 
경릉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1437~1504)

 

죽어서 왕이 된 덕종 그 이유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세조가 덕종의 아버지이다. 
덕종의 아버지 세조

 

 
세조의 맏아들이었던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됐다. 세조의 맏아들,의경 세자는 19세에 단명한다.  세조는 하루 아침에 적장자를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되고 그리고 한 달 뒤 영월에 유배된 노산군(단종)에게 사약을 내린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는 죽은 후 덕종으로 추존 된다. 
 
 
세조가 만든 서오릉  
서오릉을 만든 왕이 세조이다. 세조가 늙고 병들어 한 없이 쇠약해지니 종교에 의지하게 되고 불교에 심취해서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세우기도 하고 불교에 이어 풍수지리에도 집착해서 직접 의경 세자의 능 자리를 찾아다니다 최고의 명당자리 서오릉 속 경릉을 찾게 된다.          
 
 
 
 
 
 
덕종의 비
소혜왕후(=인수대비)    

 

인수대비 한씨는 당시 수양대군의 첫째 아들 도원군(=덕종)과 혼인한다. 인수대비는 결혼 직후 첫째 아들 월산대군과 명숙공주를 낳았고 남편인 덕종(= 의경세자)이 죽기 전(출산 약한 달 후 남편을 잃음) 둘째 아들이 태어난다. 그가 바로 훗날 성종(연산군의 아버지)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남편 의경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2년 3개월 만에 사가로 물러났다. 

※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아들 성종은 어떻게 왕위에 올랐나?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 세자가 죽고 세조도 세상을 떠난다. 그 후 세조의 둘째 아들이 왕이 된다. 그가 예종이다. 그러나 예종은 20살쯤 재위 약 1년 뒤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 가계도 
 
모두들 저주라고 수근거렸고 예종이 후사 없이 떠나서 그 뒤를 잇게 된 왕이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아들 성종이다. 서열상으로는 월산대군이 왕위에 올라야 했으나 월산군은 잔병치레가 많고 왕의 자질을 동생인 자을산군(=성종)이 더 있다고 정희왕후가 판단해 둘째가 왕이 된것이다. 1469년 인수대비의 둘째 아들 성종이 왕에 오르자 인수대비는 다시 궁궐로 돌아왔다. 
 

성종의 업적 4가지

경국대전 편찬

동국여지승람

조선의 예법을 기록한 국조오례의 편찬

악학궤범

 

또 다른 업적은 젊은 인재를 대거 등용해서 개혁 정치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중심에 있던 기구가 삼사(사헌부,사간원, 홍문관)로 젊은 관리들의 집합소이다. 삼사의 역할은 대신을 견제, 개혁을 추구하던 기구였다.

 

성종은 삼사를 왜 밀어줬을까?

제7대 왕 세조때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세조 편에 서서 득세한 훈구파 대신이 성종까지 이어지고 이를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인수대비는 강인한 성격이 많이 부각되어 있지만 사실 학식도 깊은 여성 교육서를 만든 지식인이기도 했다. 아들이 왕이 된 후 <내훈> 이라는 책을 만들어 궁중의 비빈과 부녀자들에게 유교적 덕목을 교육시켜 조선 시대 여성 교육에 이바지한다.

조선의 9대 왕 성종의 어머니이자 의경 세자의 부인, 인수대비(=소혜왕후)는 장수하다가 이곳 능에 묻힌다.

경릉: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왕의 자리에 위치한 인수대비 능

인수대비는 남편인 덕종과 함께 경릉에 묻혔고 간소한 덕종의 묘보다 크고 화려한 인수대비의 무덤은 우상좌하라는 왕릉 조성 원칙을 깨고 유일한 여성 상위 무덤이 인수대비 무덤이다.

 

덕종의 묘보다 훨씬 화려한 인수대비 묘

 

조선 시대 능을 만들 때는 우상좌하 원칙에 따라 왕이 오른쪽 왕비의 능을 왼쪽에 만든다. 그러나 인수대비 능은 왕의 자리 오른쪽에 있는 것이 특징인데  왕이 되지 못하고 세자로 죽은 남편(덕종)보다는 왕의 어머니(성종의 모)이자 왕의 할머니(연산군)인 인수대비를 왕의 자리에 모신 경릉이다.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갈등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갈등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은 첫째 부인인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여러 후궁 중에서 중전으로 연산군의 어머니 후궁 윤씨를 낙점한다. 윤씨가 중전으로 간택된 이유가 성종이 맘에 들어했고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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