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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이중섭 화가 그림 위작 논란에 대해..

by 짱신나^^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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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생애 

 

이중섭은 대한 민국을 대표하는 근대 화가로 <흰소>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간 예술가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은 인물로 1956년 41세로 돌아가셨다. 

 

 

그림 유학 중 만난 일본인과 결혼을 했고 고향은 평안남도 평원군으로 북한이었는데 6.25때 전쟁을 피해 평안남도-> 부산-> 제주도로 오게 된다. 제주도는 1년 반 정도 짧게 생활했다. 제주도 생활에서의 생활은 어려운 시기였으나 가족과 함께한 행복한 시기였다. 그 이후 너무 살기 힘들어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일본 친정으로 건너갔고 이중섭화가는 이후에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쓸쓸하게 혼자 세상을 떠난다. 

 

이중섭의 그림들은 엽서만한 크기의 그림들이 많은데 혼란스러운 시기에 재료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담배값에 그린 그림이 미국 moma 에 전시되기도 했다. 

 

(좌)개구리와 어린이/달밤/너를숨쉬고(우)

 

그러나 1953년 부산에서 난 화재로 그의 작품이 대부분 소실되어 공백이 길어져서 어느 시점 이전에 그의 작품이 거의 없다. 

 

이중섭 작품 위작 논란 이유

2005년도에 이중섭 화가의 아들 이태성씨가 고 이중섭 화백의 미발표작 8점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위작논란이 시작되었다. 4점이 고가에 낙찰되면서 논란은 더 거세졌다. 이씨는 50년 넘게 소장한 작품이라며 위작논란을 부인했다. 이태성은 8점 중 4점을 고가에 판매했다. 

 

논란이 됐던 작품들/총 5억 4백만원에 판매

 

그즈음 한국에 김용수, 박수근 씨라는 분이 사실 자신은 이중섭의 작품을 천점이상 가지고 있다고 충격 발표를 한다. 그래서 김 씨의 소장품 일부를 가지고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겨지고 전문가의 판단으로 위작으로 감정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각각 자신들의 소장품을 감정한 전문가를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이 커지자 검찰에서는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2800여점을 국제미술과학연구소에 감정 의뢰하면서 아들 이씨와 김씨 소장품은 모두 위작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근거는 작품 수가 너무 많고, 사용된 물감이 펄 물감으로 이중섭 사후 1960년대 말 처음 쓰이기 시작한 물감이었다.  결정적 증거가 물감이었고  남아있는 작품이 똑같이 베낀 듯한 이중섭의 유작을 조합한 흔적의 작품이 너무 많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2년 형에 3년 집행 유예 , 이태성은 기소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중섭 작가의 중요한 모티브 중에 하나는 가족이다. 그래서 그림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데 그러한 가족이 벌인 범죄여서 안타까움이 더했던 일이다. 

 

 

이중섭의 제주 생가

 

비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았던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출처 알쓸범잡 4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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