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 7회 후반 리뷰]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위해 독일과 점령지 전역에 수용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독일에 거주하던 90%의 유대인이 학살당했고 유대인 최대 거주지였던 폴란드에는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대량 학살함으로 폴란드는 유대인 최대 학살지가 되었다.
작센 하우젠 수용소
위치
작센 하우젠 수용소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하고 있는 수용소이다. 처음에는 히틀러의 반대 세력을 가두기 위해 세워졌으나 이후에는 유대인, 동성애자, 장애인 등을 강제 수용하는 곳이 된다. 20만 명 이상이 수용되어 강제 노동과 생체실험, 가스실 등이 모두 있는 수용소이다. 역사학자들은 아우슈비츠보다 더 가혹하고 잔인했던 수용소라고 말한다.
유대인 수용소는 두가지 형태로 존재했는데 징용 수용소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같은 절멸 수용소가 있다. 작센하우젠은 징용수용소에 가깝지만 이곳에서 징용뿐만 아니라 생체실험도 이루어졌었다.
수용소 정문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수용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끔찍한 반어법의 글짜를 새겨 놓았다.
시계의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자유를 되찾은 시간인 수용소가 해방된 시간을 상징적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수용소 외부 모습
수용소의 형태는 감시에 용이한 반원형 구조로 되어 있고 현재는 모두 불타서 사라졌지만 그림의 네모칸은 실제 수용소 건물이 있던 자리를 의미한다.
수용소 식당
수용자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식당으로 250명을 수용했던 공간이다.
천장의 그을음은 네오나치들이 92년도에 저지른 방화의 흔적이라고 한다. 네오나치란? 스스로를 '나치의 후계자'로 칭하며 히틀러를 숭배하는 자들을 말한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과격한 극우주의 자들로 그들은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다.
수용소 침대
성인 남자 셋을 한 침대에 몰아넣은 구조로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겪은 극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학살, 사형의 공간 <스테이션Z>
수용소의 시작인 정문 A이고 , Z는 알파벳에서 마지막 글자로 마지막, 죽음을 상징하는 z로 스테이션 Z는 사형과 학살의 공간이었다.
독가스실
더 이상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곳인 가스실이 있고 옆에는 화장터가 위치해 있다. 시간과 비용 등 총살 처형에 한계를 느꼈던 나치는 가스실을 만들어 대량 학살을 저지른다.
시간과 비용 절약을 위해 가스실을 만들고 살충제 독가스 치클론-B를 사용해 20분 정도면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가스 학살로 사망한 유대인만 약 300만 명에 이른다.
시신을 소각하던 곳
생체실험실
이곳에서 생체실험도 자행되었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실험 대상이었다. 약물에 따른 간의 변화를 관찰하기도 하는 등 나치가 저지른 수많은 만행 중 하나로 나치는 열등하다고 생각한 인종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인종주의 정책을 펼쳤다.
일본의 마루타 실험 731부대와 같이 일본의 실험에 대한 초기 연구를 보면 독일과 비슷한 방식으로 무자비하게 실험 대상자들을 다루었고 잔인한 정도가 독일과 일본이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피실험자들은 환자들이 아니라 건강한 일반인을 아프게 만들어 치료가 되는지를 관찰했던 것이다. 당시 나치가 했던 일들이 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져 아직까지도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 생명을 함부로 했던 실험이 오늘날 생명을 살리고 있는 아이러니로 수용자들의 목숨과 맞바꿔 얻은 의학적 성취들이다.
※ 뉘른베르크 강령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 재판에서 의학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살인과 생체실험, 고문 등을 자행한 나치에 가담한 의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 중에 7명은 교수형을 당했다. 뉘른베르크 강령에는 과학자들이 지켜야 할 강령이 담겨 있다. 가장 핵심 내용은 피실험자의 자발적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추모공원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홀로 코스트 추모공원은 축구장 3배 크기의 광장에 2711개의 기둥이 빼곡하게 채워져 당시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고자 만든 곳이자 독일의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공간의 공원이다.
백비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
우리나라 제주 4.3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곳에도 백비가 있는데 아직까지도 성격 규정이 안된 미완의 역사의 의미로 비워놓았다고 한다.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한 유대인만 6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확인되지 않은 많은 이들을 위해 백비를 세운 것을 아닐지..
구성
중앙으로 갈수록 땅이 꺼지는 구조는 가스실로 들어가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암흑 속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독일 점령지에 세워졌던 수용소만 2만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지하 추모관
지하에는 추모관이 있고 그곳에는 유대인을 추모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을 남긴 기록물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유대인들이 죽어가면서 공포 속에서도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15살 유대인 안내가 남긴 인류의 기록 <안네의 일기> 1941년 홀로코스트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 네덜란드의 은신처로 피신했던 안네 가족들은 숨어 지낸 2년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을 일기장에 낱낱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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