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울릉도 우산국 역사 (죽도,관음도/괭이갈매기,깍새섬)

by 365 ^^ 2020. 9. 22.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46회]


오늘의 탐사지: 울릉도 헬기 착륙장->사자바위->관음도 

주제: 울릉도 침략의 역사

출연자: 설민석 




2020년 6월 기준 울릉도 인구 9239명 약 1만 명에 달하는 인구 수로 울릉도의 면적은 서울의 1/8 서울시 면적  605Km2 울릉도 면적 약 73KM2 로 서울 25개 구를 합쳐 놓은 크기로 생각보다 크고 넓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켜 강원도에 편입
1906년 울도군을 경상남도에 편입
1914년 경상북도 울릉군 편입
1915년 군제가 폐지되면서 울도군->울릉도로 개편

울릉도를 가리켜 3무 도에 5다 도라고 하는데 3가지는 없고 5가지는 많다. 

3무  공해, 도둑, 뱀
5다  돌,여자,바람,물,향나무



맑은 기후와 풍족한 자원으로 울릉도가 곧 무릉도원이다 해서 무릉도라 불렀다.

울릉도의 위치 

위도.경도 동경132 북위37

1982년도 <독도는 우리땅>노래가 2012년도에 개사가 많이 되었다.  



2012년 개사 된 <독도는 우리땅>

→울릉도 동 남쪽 뱃길 따라 87k (현재 사용하는 단위로 바뀜)
평균 기온 13도 강수량은 1800 (평균 기온이 1도 오름)
→오징어 꼴두기 대구 명태 거북이-->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특산물이 바뀜)
→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주민등록 최종덕 이장 김성도(첫 주민 등록 주민과 이장의 이름으로 바뀜)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 줄 ->>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우산국 
 
사자바위와 투구봉 


풍화 작용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옛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라 사자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처음 사자 바위로 이름을 지었을 때는 사자 모양이었다고 한다. 


사자바위와 투구봉에 얽힌 설화 

당시 울릉도 우산국을 통치하던 우해 왕은 대마도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 풍미녀를 부인으로 맞았는데 그 이후 여색에 빠져 정사는 뒷전 풍미녀에게 빠져 살았다. 심지어 우해왕은 동해안의 신라땅을 약탈하여 왕비의 사치를 위해 사용했다. 결국 폭발한 신라의 지증왕이 이사부 장군을 불러 우산국 토벌을 명령했으나 토벌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 놓은 묘책으로 이사부 장군은 나무사자를 만들어 배에 싣고 간 후 항복하지 않으면 섬에 맹수를 풀겠다. 생전 처음 보는 맹수의 모습에 겁을 먹은 우산국 주민들은 결국 우산국은 신라에 항복, 항복한 우해왕은 투구를 벗어두고 자결해 벗어둔 투구는 투구봉이 되었고 나무사자는 사자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도 나와 있는 내용


지증 마립간 13년 (512) 여름 6월 우산국이 항복해와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신라는 우산국을 속국으로 만들어 매년 공물을 받았다. 



신라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한 이유

울릉도에는 질 좋은 나무들이 많아 자연 자원을 얻기 위해
우산국에 군사적 위협을 느꼈다.
당시에는 고구려와 일본의 교역 중심지로

 


신라 입장에서는 동해안을 장악하기 위해 우산국을 점령해 북쪽의 고구려와 남쪽의 왜를 견제하기 위해

이사부 장군의 성은? 

김 이사부로 성이 김씨고 이름이 이사부  또는 박씨 
원래 신라의 시조는 박혁거세가 세운나라에 김알지,석탈해의 세 부족이 모인 신라라 초창기 박씨,김씨,석씨가 번갈아 왕위에 올랐고 후에 김씨 왕조로 굳어진 신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자리에 있던 이사부는 왕족인 김씨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울릉도라고 부른 시기 

우산국이 산라의 속국이 된 것은 6세기 지증왕때 부터 신라가 장악한 땅이다. 

통일신라가 되어서도 계속 관리를 받다가 통일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 되고 고려가 되어서도 계속 관리를 받던 우산국은 이름이 바뀐다. 우산국->우릉도.무릉도.울릉도로 바뀐다. 



울릉도 침략의 역사 

11세기 여진족이 북방에서 내려와 동해안을 약탈한다. 말 탄 북방 민족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바다에서도 무시무시했다. 


고려의 행정구역 
5도양계

5개 도는 행정 구역 2개의 계는 군사 지역으로 거란족과 여진족을 막기 위한 2개의 계를 만들었다. 


여진족의 침입
문제는 여진족이 육로가 아닌 수로를 이용해 동해안 침범했던 것이다. 동계는 동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진 모양인데 동쪽 해안을 공격하는 여진족을 막기 위함이었다. 결국 여진족의 침략에 울릉도 주민들은 본토(지금의 영덕)로 피란을 온다. 


여진족은 정착을 하지 않는 유목 민족의 특성상 문화유산의 개념이 없어서 사람을 보이는 대로 죽이고 섬에 있는 석불 등 문화유산을 모두 불태워 버려 신라 때부터 존속해온 우산국은 사실상 멸망한 것이다. 

원나라의 침입
시간이 흘러 13세기 칭기즈칸의 후예 원나라의 침공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이번에는 주민들이 반대로 울릉도로 피란을 간다. 


왜구의 침입
조선시대에는 왜구가 쳐들어온다.


쇄환 정책 시행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도 계속된 왜구의 약탈로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에 의한 피해를 막고 도망자들이 울릉도에 숨지 못하도록 주민들을 모두 육지로 데리고 나오는 쇄환 정책을 시행한다. 


수토정책 
쇄환 정책 이후 섬을 수색하고 토벌하는 '수토관'을 3년마다 파견 지속적인 관리를 해왔던 울릉도와 독도다. 


쇄환정책에도
울릉도로 향했던 사람들 

→생계유지를 위해 울릉도까지 어업을 나간 사람들 
→사형 선고 받은 사람들 (셋에 둘은 풍랑 때문에 죽었다)
→신분을 초월한 금지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



대나무가 많이 자라서 죽도 혹은 대섬이라고 불리고 죽도에 한 가구가 살고 있다 .

 

김유곤 이윤정 부부  아들 민준 단 3명만 거주 중으로 더덕 농사를 지으시며 살고 있다. 





괭이갈매기
(천연기념물 제336호)


고양이의 줄임말 괭이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성 신호가 매우 발달된 괭이 갈매기는 울음 소리로 부모와 형제를 구분하고 갓 태어난 새끼도 울음소리로 엄마를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괭이갈매기 

전국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갈매기 보호 도로표지판


괭이갈매기의 로드킬을 방지하고자 군수에게 갈매기를 지켜 달라는 손 편지를 보낸 아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표지판이다. 

괭이갈매기는 서로 다투다 가도 적이 공격하면 똘똘 뭉친다고 한다. 예로 다른 갈매기들이 알이라도 훔쳐가면 똘똘 뭉쳐 똥으로 적들을 응징 했다고 한다. 


이들의 최대 서식지는 독도로 독도는 괭이갈매기를 비롯한 슴새,바다제비의 번식지로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음도 

관음도는 울릉도 3대 비경 중의 하나이다.


연도교
관음도와 울릉도를 잇는 다리로 다리가 없었을 때는 약 100M의 거리에 배를 타거나 로프를 이용해 관음도를 방문했다. 



관음도의 또 다른 이름
깍새섬 


울릉도 개척 당시 경주에서 온 월성 김씨가 고기를 잡다가 태풍을 만나 이곳까지 떠밀려왔다. 언제 구조 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깍새(=슴새) 천국인 이곳에 불을 피웠더니 몰려 들었던 깍새를 잡아먹으며 버텼다고 한다. 그렇게 깍새가 많은 섬이여서 관음도를 깍새섬 OR 깍개섬으로 불리고 있다.

울릉도 .독도 명칭 정리


울릉도 나리분지 





독도는 우리땅 관련 내용▼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