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46회]
오늘의 탐사지: 독도
주제: 독도는 우리 땅
울릉도 근처 많은 섬들 중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섬이 있는데 바로 관음도,죽도,그리고 맑은 날에 보이는 독도가 있다.
우리가 모두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은 역사 왜곡 뿐이 없다.
수많은 사료들이 증명하는
독도는 우리땅
조선시대 <태종실록> 기록에 보면 우릉,무릉,울릉도라는 이름으로 정착됨을 알 수 있고
무릉도와 구분하여 기록한 우산도는 독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수많은 증거 중 실록에 나와 있는 명확한 증거 중 하나이다. 조선은 울릉도와 독도를 구분해 관할하고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
가장 대표적인 사료는 세종실록지리지로 유네스코도 인정 세계 기록 유산이다.
우산무릉이도:우산과 무릉은 두 개의 섬이다
현정동해중 : 동해에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개의 섬이 있다.
조선 시대의 울릉도,무릉도,우릉도=울릉도였고 독도의 명칭이 우산도였다.
일본 주장
세종실록지리지라는 명확한 사료가 있음에도 반박할 증거를 찾아 나선 일본은 신증동국여지승랑이라는 지리서에 포함된 팔도총도에 우산도(독도)가 왼쪽에 그려져 있다.
일본 주장: 독도를 인지하지 못한 거다. 영토 끝이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
일본이 물고 늘어지는 근거가 된 팔도총도 속 우산도의 위치
동국전도
15세기 후반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팔도총도 속 잘못표기 된 우산도 위치를 인지하고 그 이후 지도에는 이를 바로잡아 명확하게 을릉도 동쪽 & 동남쪽으로 표시된 우산도의 위치다.
아국총도
18세기 후반 또 다른 지도 아국총도
해좌전도
19세기 중반 해좌전도
일본주장
우리나라는 이런 자료를 제시한 후 일본은 침묵하고 그 후 다시 찾은 꼬투리는 죽도가 우산국이라고 제시한다.
이에 우리가 내놓은 반박 자료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맑을 때만 보이는 우산도를 언급, 흐린 날 심지어 태풍이 오는 날에도 보이는 죽도와 달리 흐린 날만 보이는 독도라고 실록에 언급되어 있었던 것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가장 큰 증거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2008년 7월~2009년 12월 1년 6개월 동안 동북아 역사 재단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찰한 결과 한 달에 3일 정도만 보인다는 걸 알아냈다. 죽도가 우산도였다면 맑아야 보인다는 설명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 사학계의 주류였던 실증주의 사학으로 실제 증명된 객관적 사실만을 역사로 인정하는 역사연구방법론이다. 그래서 실증주의에 맞춰 데이터가 증명했으나 또 침묵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일본의 <돗토리 번 답변서>
숙종 때 안용복 피랍사건으로 시작된 조선과 일본의 외교분쟁((=울릉도 쟁계))으로 울릉도가 어느 나라 섬 인지를 놓고 다투게 되는데 그때 일본이 남긴 기록에 울릉도는 조선 땅임을 명시한 내용이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독도가 크게 거론되지 않은 이유는 당시 독도는 울릉도에 속한 섬 임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다케시마 도해금지령
또한 1695년 돗토리 번 답변서 이후 1696년 1월 28일 일본 정부에서 다케시마(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린다. 도해 금지령 자체가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인정하는 셈인 것이다.
2부 계속
독도는 우리땅 관련 내용들▼
☞안용복과 울릉도 쟁계 in 안용복 기념관/대마도는 조선땅! (2부)
☞(독도 박물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들과 일본 독도 편입과정 (3부)
☞독도는 우리 땅 역사 in 독도/스캐핀문서 677호/독도 삽살개(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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