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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소말리아 내전 역사 (시아드 바레 ~ 아이디드 )

by 짱신나^^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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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50 여개가 넘는 나라 3000 여개 이상의 종족이 공존하는 땅이다.  소말리아 내전을 그린 모가디슈 영화가 있다. 오늘은 이 영화 모가디슈의 배경지인 소말리아 이야기이다. 아프리카의 동쪽 끝 ,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고 곳 소말리아에는 약 3,300km 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 있고 거대한 사막과 초원 지대가 있는 소말리아이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이고 모가디슈 인기 명소 인도양의 푸른바다 리도 해변이 있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오랜시간 계속 된 내전으로 시내 대부분의 건물에는 총탄이 즐비하고 세계 최대 난민 수용소 다다브 난민 캠프에 약 20만 명의 난민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폭탄테러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소말리아 내전 역사 

 

소말리아는 왜 계속 전쟁이 일어날까? 30년 넘게 이어지는 소말리아는 내전으로 세계 기아 위험 1위 국가로 인구 10만 명 중 6명이 영양 결핍 상태이다. 

 

소말리아 갈등의 역사 시작점

소말리아는 전통적으로 유목민의 나라로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로 씨족 중심의 사회이다. 약 200개가 넘는 하위 씨족들(다로드, 하위예 ,이사크, 디르, 라한웨인 주요 5개 씨족)이 공존하면서 살아왔다. 


강대국들은 1880년대에 아프리카 땅에 들어와서 서로 땅을 가지기 위해 싸우다가 전쟁 대신 회의를 통해 아프리카 땅을 나누기로 하고 유럽의 강대국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그리고 미국과 오스만 제국까지 14개국 서구 국가가 모인 베를린 회의를 열어 아프리카 대륙을 수천 개 종족과 왕국을 무시하고 국경선을 임의로 그어버린다. 1880년대부터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로 쪼개지게 된다. 강대국들은 소말리아를 쉽게 통치하기 위해 분열시켰다.

 

 

국경선이 강대국에 의해 그어지면서 하나의 민족이 살아오던 땅이 여러나라로 조각나거나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하나의 국민이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갈등의 씨앗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수 있다. 소말리아는 약 80년간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아프리카 바로알기 (오해와 편견들)

 

소말리아의 독립

이런 상황에도 아프리카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고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의 바람이 아프리카에도 영향을 주게 되면서 1960년 7월 1일 소말리아는 독립, 1960년대를 아프리카의 해로 부르게 되고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독립을 맞이한다. 

 

 

사아드 바레의 쿠데타 

소말리아를 망친 내전의 단초가 된 사람으로 시아드 바레 장군이 있다.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1910~1995) 
소말리아의 군인이자 정치가 1969년에 무혈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여 대통령 취임 후 2년간 소말리아를 장기 독재 했다. 소말리아의 비극은 모하메드 시 야드 바래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모하메드는 1969년 경호원을 사주해 대통령을 암살한 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22년간 소말리아를 장기 독재한 최악의 독재자이다. 

 

시야드 바래의 정책
시아드 바레가 소말리아를 장악할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가 소말리아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식민지 시기에 뿌려진 혼란의 해결없이 독립이 되었고 수많은 집단간의 권력을 쟁취하려는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시야드 바래가 정권을 장악 국가 주도의 다양한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한다. 

 


씨족과의 전쟁 
시야드 바래는 씨족이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하여 씨족으로 뭉치는 문화를 없애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마레한 씨족에게는 정부 요직을 몰아줬고 군 장교의 60%이상을 자기 씨족으로 발탁했다. 시아드 바레 집권이후 경제 상황은 더욱 안좋아지고 다른 씨족들의 땅을 사회주의라는 미명 아래 몰수해 버렸다. 

이로 인해 다른 씨족간의 적대감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 또한 극심했다. 국민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시아드 바레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국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전쟁을 일으킨다. 그 지역은 소말리아와 국경이 닿아있는 에디오피아의 오가덴지역이었다. 

오가덴 전쟁 
오가덴 지역은 대대로 소말리아인들이 거주하던 땅으로 에티오피아와 전쟁의 승리로 정권을 다지고 싶었던 시야드 바레였다. 시야드 바레는 막강한 무기를 소련으로 부터 지원을 받아 오가덴 전쟁을 1997~1998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시야드 바레의 예상과는 달리 소말리아는 처절하게 패배한다.

 

오가덴 지역

오가덴 전쟁 전에 소련은 전쟁 직전 에티오피아에도 무기를 지원해주면서 소말리아군은 전쟁에서 크게 패하게 된다.  에티오피아는 친미 정부였으나 전쟁전에 사회주의로 돌아서게 된다.  소련은 이 틈을 타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것이다. 무엇보다도 약 15000명의 쿠바 군대의 지원으로 전세는 에티오피아로 기울게 되어 소말리아가 패한것이다. 

이때 시야드 바레를 지원했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소말리아를 친미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원한 것이다. 미국은 91년까지 소말리아에 각종 무기를 지원하게 되고 소련과 미국이 남긴 수많은 무기가 소말리아에 남게 된다. 

 

이사크 학살 사건 
시야드 바레는 정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 씨족에 공중 폭격을 가해 자국민을 학살하게 된다. 이때  소말리아 대표 씨족인 이사크 족을 약 5만명이상이 학살하는 이사크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디드의 쿠데타

이런 상황에서 소말리아에 또 한번의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고 시야드 바레에게 불만이 쌓여있던 각 씨족 군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때 군벌을 통합한 장군 파라 아이디드가 등장한다. 소말리아 군벌의 지도자로 한때 시야드 바레의 수하였으나 통일 소말리아 회의를 조직한 뒤 군 수장의 자리에 오르고 1998년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씨야드 바레를 추출했다. 

 


파라 아이디드는 의장 마흐디와 함께 통일 소말리아 회의(USC)를 조직하고 수도 모가디슈가 전쟁터가 된다. 현실은 영화 속 모가디슈보다 훨씬 심각했고 거리에는 무기가 넘쳐났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고 시신을 묻지를 못해 거리 자체가 무덤이었다.  개가 시신을 먹기도 하고 모가디슈의 해변이 시신들이 넘쳐났다.

 

 

 

모가디슈 내전
파라 아이디드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22년간의 시야드 바레 정권이 무너진다. 그러나 파라 아이디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조력자 마흐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또다시 내전이 시작된다. 이후에 수많은 씨족 중심으로 결집한 군벌들이 일어나면서 모가디슈의 내전은 소말리아 곳곳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내전 속 모가디슈 강신성 대사 탈출기

 

소말리아 내전 속 모가디슈 강신성 대사 탈출기 [꼬꼬무 4회]

우리나라에서 만 이천 킬로 떨어진 '아프리카의 뿔' 이라 불리는 곳에 소말리아가 있다. 소말리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건은 아덴만 여명작전(2011.01.21)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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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의 대기근 (1991~1992)
내전으로 고통받던 소말리아에 전세계적으로 충격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1991년 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인해 대기근이 소말리아를 덮치면서 1991~1992년 기근과 내전으로 약 30만 명이 사망하게 된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 450만 명이 아사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2021년 세계기아지수 1위 소말리아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농사짓기 기가 어려워 밀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항구에 배만 대면 약탈 을 일삼게 되고 잦은 약탈로 인해 식량 수입이 불과하게 되었다. 

 

 

UN군 소말리아 입성
1992년 소말리아에 보내진 원조 물자는 약 20만 톤의 식량 지원을 했고 이 양은 약 140만 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러나 파라 아이디드를 비롯한 여러 군벌 세력이 구호물자를 강탈해가게 되니 UN은 소말리아 구호를 위해 평화유지군 병력을 보충하게 되고 약 4000명이 넘는 UN군이 소말리아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자 아이디드는 un군을 쫓아내려고 했고 아이디드쪽에서 un군을 공격해 사상자까지 나오게 된다.  

미국의 군대파견
정권 안정을 위해 미국은 군대를 보낸다. 미국이 파병을 결정한 이유는 소말리아 실태를 미국 언론들이 연일 보도했기 때문이다. 여론에 밀려 미국은 군대를 파견한 것이다.

 

CNN 효과 (CNN effect)

조지부시 대통령은 희망회복작전(Operation Restore Hope) 이라 불리는 인도적 군사작전을 결정한다. 미국  독일 등 24개국의 다국적 군대가 결정되고 미국 약 2만 5천 명 포함해서 총 4만여명이 투입하게 된다.. 

유엔 다국적 연합군의 목표는 안정적인 구호활동과 소말리아 치안 확보였다. 연합군은 처음 계획대로 소말리아 곳곳에. 구호 활동에 주력을 했고 소말리아 치안을 일부 회복했으나 미국의 대통령이 빌 클린턴으로 넘어가면서 희망회복작전에 변수가 생긴다. 클린턴은 경제적으로 소말리아 파병이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해 반대를 하게 되고 1100여 명만 후방에 남고 모두 철수하게 된다. 

 

 



유엔은 또 다시 열의안을 채택하고 다시 20여개의 연합국 3만 명을 다시 보냈고 이때 한국도 UN 가입 후 (1991년) 첫 파병을 250여명정도 했다. 한국군의 임무는 도로 및 수로 건설,식량보급 및 주민 지원 활동을 했다.

 

한국의 상록수부대도 소말리아 파병

 

아이디드의 UN군 공격
UN군이 소말리아 정치 안정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에 아이디드는 크게 반발해 유엔군을 습격한다. 1993년 6월 5일 파키스탄에서 파병한 un군 24명이 사망하게 되고 50여 명이 부상당하게 된다. 이때 아이디드는 파키스탄에서 파병한 un군의 시신을 훼손해 그 장면을 미국에 보내기까지 한다.

 

미국 특수부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패배
UN평화유지군 사상 최악의 사건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un군은 아이디드 반군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미국은 아이디드를 체포하기 위해 미국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레인저를 투입한다.

 

블랙호크 다운 1993년 미국 특수부대 사상 최악의 전투로 기록된 모가디슈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 속 로켓포로 블랙 호크 헬기를 격추시켰다. 


미국은 초반에 소말리아 민병대를 앝봐서 작전이 30분이면 끝날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블랙호크(UH-60) 전투 헬기 두 대가 소말리아 민병대 로켓포로 격추되었다. 첫 번째 블랙호크 조종사들은 즉사, 두 번째 블랙 호크 미국 특수부대원 2명은 간신히 생존했으나 1명은 민병대의 총에 맞고 사망한다. 한 명의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다시 투입되면서 18시간 동안 160여명의 미군이 투입되고 18명이 전사하게 된다. 미국 특수부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패배였다.

실제 전투에 참전한 미국 레인저대원과 델타포스 대원들

 

이때 민간인 약 1000여 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당한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추락한 블랙 호크에서 꺼낸 미국 조종사의 시신을 발가벗겨서 모가디슈 시내를 끌고 다녔고 이 모든 과정이 미국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되었다. 결국 이것은 미군 철수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아이디드 사망후 내전 
연합군이 잡으려 했던 아이디드는 1996년 여름 군벌 싸움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고 마흐디의 평화 지지 선언으로 휴식기를 가지게 된 소말리아 내전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 든다. 2004년 과도 정부를 세우고 군벌들은 대통령을 추대하지만 새로운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군vs 군벌 vs 군벌의 또 다른 내전이 이어진다. 

먹고 살기 위해 민병대에 들어가게 되고 살기 위해 아이들 마져 정부군, 반군으로 들어가 총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은 일명 총알받이로 전장에서 선두에 소년병을 세웠다.

 



소말리아에 총이 많은 이유
소말리아는 총을 시장에서 구입할수 있고 총 한자루의 가격이 닭한마리 가격과 같다. 가끔 1+1 할인도 한다. 냉전시대에 소련과 미국이 엄청난 양의 무기지원을 해줬고 계속된 내전으로 정부의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무기에 대한 규제가 없어지게 되고 시중에 수많은 총기가 나오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불법 무기 거래상이 소말리아에서 무기를 판매했다. 소말리마 바카라 시장에는 활발하게 무기가 거래가 되고 있다.

 


소말리아 내부의 전쟁은 결국 해적까지 등장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말리아 해적은 어떻게 생겨났나? (벌거벗은 세계사 31회)

소말리아 앞바다에서는 참치, 랍스터같은 고급어종이 많이 잡혔던 곳이다.  그러나 시아드 바래의 정부가 무너지고 해군도 사라지게 되면서 세계 여러나라의 불법어선들이 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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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회 아프리카 자문 위원회  정치 분쟁 전문가 황규득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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