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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세종 ! 단종 죽음에 책임이 있다?

by 365 ^^ 2021. 9. 3.

세종은 일찍이 문종(맏아들)- 손자(단종)를 왕세자-왕세손으로 지정해 놨었다. 그러나 문종이 일찍 승하하며 홀로 남게 된 단종은 자신의 삼촌이자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에게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빼앗긴 후 죽임을 당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죽고 단종의 옆에는 오로지 삼촌들 이외에는 단종의 정치적 후견인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세종은 수양대군의 야심을 몰랐을까? 역사적으로 고려 때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된 공민왕부터 삼촌이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된 케이스는 비일비재했으나 세종은 이를 방기 했었던 것 같다. 

 

 

 

세종의 '만기친람'

세종은 모든 일을 자신의 손을 거쳐가야 했던 왕이었다. 이런 성격을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의 아들들 혼인생활을 지나치게 직접 주도했던 경향이 있었다. 문종(맏아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넛째 아들 임영대군, 여덟째 영응대군까지 총 5번 이혼시킨다. (문종 2번) (영응대군 2번) (임영대군 1번) 총 5번 이혼시킴. 영응대군은 세종 사후 전처와 재결합한다. 세종은 '만기친람'이라 하여 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폈던 임금이다. 

 

'종친 불사' 원칙을 어긴 세종

세종은 종친 불사의 원칙을 어기고 수많은 관리들이 반대하는 데도 아들들(대군들)에게 왕실의 중요한 많은 업무를 부담케 했다.  * 종친 불사란? 종친은 (정치) 나라일에 관여할 수 없다. 

 

세종 가계도

 (세종은 1명의 왕비와 5명의 후궁을 두었고 총 18남 4녀의 자녀를 뒀는데 그 중에 8남 2녀는 소헌왕후 심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종이 신뢰한 수양대군, 양평대군 

수양 대군 명나라 사신 접대, 왕의 전지(왕의 명령)를 각 관서나 신료에게 전달, 여러 관서의 제조를 임명, 집현전 편찬 작업을 감독, 양평대군 조정의 불사 등 왕실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 집현전 편찬 작업 감독케 했다. 

 

세종이 공법(세종이 실시한 토지에 대한 세금 제도)을 만들고 공법 담당 관청인 전제 상정소 책임자로 수양대군에게 맡겼다. 또한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집현전 편찬 작업에 참여한다. 이것은 세종은 두 아들을 굉장히 신뢰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수양대군은 집현전 학자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훗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고 발판이 되는 중요한 인맥이 된다. 

 

 

 

 

세종이 대군들을 정사에 등용시킨 이유

대군들의 정사 참여는 세종의 건강 악화 때문이었다. 건강이 안 좋았던 세종은 재위 말까지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기 때문에 자신의 분신을 통해 일처리를 효율적이고 빠르게 하길 원했던 것이다. 조선에는 업무를 처리하는 관청이 있지만 관료들은 한 번에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신하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적극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재위 후반(세종 26년)에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이 사망, 세종 27년에 평원 대군(일곱째 아들)이 사망하면서 심신이 괴로웠던 세종이고 이를 달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며 신하들과 대립하게 된다. 이에 세종이 원했던 불사를 대신 진행해주었던 것이 대군들이었다. 경복궁 궁궐 안에 불당 건립을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추진했다. 

 

세종의 고기사랑

아들을 지극해 사랑했던 태종 이방헌은 아들 세종이 고기를 좋아하다는 것을 알아 세종에게 꼭 고기를 먹이도록 유언을 남길 만큼 세종대왕은 고기 사랑은 대단했다. 그러나 아버지 태종이 돌아가시고 세종은 고기를 먹지 않았고 그로 인해 몸이 축나는 '허손병'에 걸린 세종이었다. 세종은 육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했다. 건강을 염려했던 태종은 세종을 사냥을 갈 때 데려가려고 노력했었다. 세종의 이런 식습관으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세종의 몸 상태는 점점 좋지 않았다. 

 

세종의 건강 기록부: 풍질(감기와 같이 외부 감염으로 인해 생기는 질환) 소갈(당뇨병) 다리수종(당뇨합병증)  임질(전립선염) 풍증(반신불수) 

 멘탈 갑 세종대왕 

속된 말로 죽지 못해 산다고 할 정도로 세종 재위 말에 각종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했는데 병증이 너무 악화되어 궐 밖에서 관을 짜서 준비하고 있을 만큼 건강상태가 안 좋은 와중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던 세종이다. 

 

세종의 실수

수많은 관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친 불사의 원칙을 어긴 것은 세종의 독선이 이렇게 제도를 무너뜨리고 그 상황에서 수양대군과 같은 권력욕을 가진 종친이 등장한다면 그런 비극은 예고된 것이다. 또한 왕정 시스템에서는 어떠한 안전장치를 하더라도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단종의 비극을 통해 알 수 있다. 

 

 

계유정난 단종 이야기(황표정사)영월 단종 유배지 (청령포,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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