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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벌거벗은 세계사 39회 유대민족 탄생 박해 대학살 역사

by 365 ^^ 202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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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0일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습이 쏟아지고 열흘간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로 약 4300대 이상의 로켓포를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또 보복 공격을 했고 이스라엘이 전투기로 폭격을 가하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중요한 시설은 다 파괴됐다. 양측의 사망자는 약 300여 명 부상자 2천여 명 발생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현재 진행형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상황이다. 


예루살렘의 뜻, 의미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아랍어로는 성스러운 도시를 의미한다. 에 그 성수로 없고 평화로운 도시이지만 삶은 그렇게 이름 같지 않다.

 

이곳 분쟁의 핵심은 종교가 아니라 땅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을 차지하기 위한 유대인과 아랍 민족의 싸움이다. 

 

유대민족의 탄생 박해 역사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이야기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땅에 구약 성경에 따르면 유대민족의 지도자였던 아브라함이 이주했다. 원래 아브라함은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에 살았는데 '가나안'( =팔레스타인)이라 일컬어지는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때 와서 팔레스타인에 대흉년이 들면서 야곱은 유대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이주한다.  그러나 이곳에 유대민족의 번영을 견제한 이집트인들에 의해 약 400년간 유대인들은 이집트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참다못한 모세가 박해받던 유대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고 유대인들이 원래 살던 땅인 가나안에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곳에는 이미 다른 민족(=블레셋인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모세의 계승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고 이후 기원전 약 1000년경 초대 왕 사울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지정(다윗 왕)-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솔로몬 왕) 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유대인들의 왕국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분열된다. 

기원전 8세기 북쪽의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해 포로가 되어 강제로 끌려간다. 남쪽의 유다 왕국도 기원전 586년 비빌로니아에게 멸망 후 포로로 전락하게 된다. 그 후에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 황제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훨씬 지나... 


통곡의 벽(서쪽 성벽)이 생긴 이유 

 

페르시아, 그리스의 지배 후 유대인들은 또다시 왕조를 세웠지만 기원전 63년에 정복 전쟁을 벌이던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점령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두 차례에 걸쳐 로마의 저항하게 된다. 기원 후 66년~70년 제 1차 유대 독립전쟁에서 폐하게 되고 화가 난 로마가 성전을 파괴하게 되고 이때 로마는 유일하게 성전의 서쪽 벽만 남기게 된다. 그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통곡의 벽

 

디아스포라 뜻

 

그리고 다시 132~135년 다시 반란을 일으키니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을 진압한 후 도시 이름을 예루살렘에서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변경 지역 이름도 유대주에서 시아-팔라이스티나주로 변경한 후 이들을 모두 쫓아낸다. 그 후에 수백 년간 로마가 지배하다가 7세기 638년 이슬람 세력 무슬림이 점령하게 되고 1차 세계대전에 패배하기 전 1917년까지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아랍인들이 살게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슬픈 유랑생활이 시작된다.


특정 사람들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을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며 유대인을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유대인의 돈 욕심 이미지 어떻게 생겼나? 

 

이렇게 흩어진 유대인들은 유럽에 정착한다.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을 '아슈케나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럽으로 간 유대인들을 유럽인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 기독교를 믿었던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차별과 핍박을 당하며 살았다.

 

이때 유럽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고 유대인들 아기들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거나 흑사병이 돌 때 이들이 병균을 퍼뜨려 사람을 죽게 했다거나 나쁜 일은 무조건 유대인 탓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당시 유럽에서 직업 때문에 생긴 유대인에 대한 인식은 유대인은 돈 욕심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에서 이자를 통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모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땅을 가질 수 없어 농사도 못 짓고 길드(수공업자 조합)에 가입시켜 주지 않아서 물건을 만들어 팔 수도 없었고 유대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한번 쥔 돈은 절대 놓지 않는다는 'tight fisted' 말이 있었고 지금도 영국에는 유대인은 돈 욕심이 많다는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다.

 

 


유대인 대학살 역사

 

러시아 포그롬
유대인의 박해가 심해지자 유럽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또다시 이주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바로 러시아와 동유럽으로 이주하게 된다.  19세기 말 이 지역 유대인이 전 세계 유대인의 80% 육박하게 되지만 이곳에서 전대미문의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게 된다.

 

러시아 동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


1855~1881년 러시아 혁명가들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2세가 암살하게 되고 황제 암살사건의 유대인이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고 19~20세기에 걸쳐 러시아에서 잔혹한 포그롬이 일어나게 된다.  수백 개의 유대인 마을을 공격해 죽이고 집과 상점을 닥치는 대로 불태웠다.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유대인 학살내용

 

유대인 드레퓌스 사건 (프랑스)
1880년대 초에 시작한 포그롬은 약 40년간 지속되었고 약 15만 명 이상의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절망시킨 사건이 있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름 단 하나만으로 프랑스의 유대인 장교가 군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게 된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이로 인해 이스라엘 건국의 불씨가 된다.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에 들어간  프랑스의 군사기밀이 독일쪽에 들어가게 되고 이때 프랑스 정보국에서 일하던 유대인 프랑스 장교인 뒤레피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로 체포되고 당시 프랑스 최고형인 종신 유배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유대인 드레퓌스를 두고 반유대인 시위가 확산되었다. 


시온주의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취재한 유대인 기자 헤르츨은 프랑스처럼 계몽된 나라에서 유대인이 살 수 없다면 유대인은 어디에도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 1896년 헤르츨은 <유대국가>라는 책을 집필한다. 내용은 조상들이 살던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탄 비른바움'의 시온주의라는 개념을 최초로 실행한 '테오도로 헤르츨'이었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뜻하고 유대인들이 조상이 살던 땅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시온주의 핵심이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3 일간 일정으로 열린 제일의 시온주의 총회에서 이스라엘 국기와 애국가가까지 만들면서 유대 국가 건설을 선포한다. 이렇게 그는 현대판 모세로 불리게 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온주의자의 노력

 

그러나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아랍 민족이 살고 있었으나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유대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곳을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땅을 산 게 아니라 1901년 유대민족 기금을 만들어 돈을 모금했고 여기에 전 세계 유대인들이 매년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이 돈으로 팔레스타인 지주들에게서 땅을 매입한다. 

이렇게 시온주의 유대인들은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고 유대인들의 초기 정착촌 중 한 곳이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히브리어:봄의 언덕)이다. 

 

파란색&nbsp;점들이&nbsp;유대인&nbsp;정착촌

 

[벌거벗은 세계사 39-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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