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선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프랑스 유학생으로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후 19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길에 오를때 그녀의 스승(이병도 선생)이 당부한 말이 있다. 병인양요때 약탈해 간 우리문화재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1967년부터 13년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우리문화재 찾기에 몰두하게 된다.
박병선 박사의 업적
세계 최초 금속활자 직지 발견
박병선 박사는 책벌레답게 틈만나면 도서관에 머물던 그녀를 눈여겨 본 프랑스 국립 도서관 측은 그녀에게 동양 서적을 전시 하는 일을 맡긴다. 그녀는 이것은 의궤를 마음껏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967년부터 프랑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당시만 해도 추측뿐인 의궤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 고서점 등을 직접 뛰어다니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다.
국립 도서관 서고를 거의 다 정리 할 즈음 먼저 발견 된 책 한권 바로 '직지심체요철'이었다. 1377년에 금속활자로 인세된 가장 오래된 한국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 ,이 직지에는 1377년 7월에 청주 외각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은 독일에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였다. 여기에 적힌 글이 사실이라면 직지는 무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보다 78 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 된다.
직지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임을 증명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고하지만 단지 그 문장만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고 이 내용을 무시하게 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금속활자의 특징을 5년간 연구하고 마침내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에 열린 전시회에서 <직지> 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임을 증명해 낸다.
외규장각 의궤 발견
그 이후에 그녀는 계속 의궤를 찾아 도서관에서 일을 했고 의궤에 관한 기록을 따라 다다른 곳은 베르사유 국립 도서관 별관의 파손된 고문서를 모아둔 창고에 푸른천으로 담겨진 책을 발견한다. 1975년 20년간 찾아 헤매던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 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페지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대원군의 카톨릭 탄압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를 침범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프랑스 군대는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의궤를 약탈해 갔다.
그녀는 즉시 고국으로 메세지를 보낸다. 지금 우리의 외규장각 의궤가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창고에서 파기할 책으로 취급 되여 페기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지금이 반환을 요청할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프랑스 도서관에서 박병선 박사를 해고했지만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사서가 아닌 도서관 이용객으로서 10년을 매일 같이 출입했다. 그 이후 그녀는 13년 동안 의궤의 내용을 홀로 연구한다. 그 동안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은 ...
외규장각 의궤 반환
그녀는 계속해서 우리의 의궤를 되찾아야 한다고 외쳤고 마침내 외규장각 의궤 반환운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4월 14일 마침내 297권의 의궤가 되돌아왔다. 그녀는 그때 이미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궤를 반환받고 잠시 뒤인 그해에 그녀는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난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심체요절을 먼저 발견하고 우리의 금속활자가 가장 오래된 것임으로 스스로 학계에 직지의 역사성을 증명하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데 크게 공헌하시고 박병선 박사의 한평생을 받친 노력끝에 비록 임대 형식이지만 145년 만에 외규장각 의궤 279권도 돌아왔다. 의궤 환영 행사때 고국을 찾아 이모습을 지켜본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타계 직전까지 연구에 매진한 고 박영선 박사이다.
[출처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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